본문

63번째 편지 - 혹시 데블스 애드버킷을 아시나요.

           혹시 데블스 애드버킷을 아시나요.

  여러분 혹시 데블스 에드버킷(Devil''s Advocate)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어 그 영화를 연상하시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다른 이야기입니다. 카톨릭 교회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저는 카톨릭 신자는 아니나 한번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라 소개하고자 합니다.

  카톨릭 교회에는 성인(Saint)으로 시성되는 과정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잔 다르크는 시성되기까지 5세기가 걸렸고 테레사 수녀님은 1997년 돌아가셨는데 현재 시성절차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매우 엄격하고 세밀한 조사과정을 거쳐 성인으로 시성합니다. 그런데 성인으로 추천되는 분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라 조사자들이 자칫 우호적인 편견을 가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황청은 시성 조사과정에 데블스 애드버킷, 이름하여 ‘악마의 변호인’이라는 직책을 두어 그 위험성을 사전에 방지하도록 하였습니다. 데블스 애드버킷의 임무는 성인 후보자에게 불리한 정황과 증거를 수집 조사하는 것입니다. 후보자가 생전에 카톨릭 규율을 위반한 적이 없었는지, 신에 대한 불경스러운 일을 한 적이 없었는지 등을 소위 ‘악마’의 관점에서 조사하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리하여 후보자가 이러한 데블스 애드버킷의 무자비한 공격을 무사히 통과하면 절차를 거쳐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데블스 애드버킷 제도가 현대사회에서 위기관리 시스템의 일환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1995년 1월 멕시코 외환위기 당시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부도위기에 몰린 멕시코에 250억 달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결정하여야 하였습니다. 결정을 위한 토론이 열리자 루빈 장관은 참석자 중 한 사람에게 데블스 애드버킷의 역할을 맡겨 지원 프로그램의 부당성을 지적하도록 하였습니다. 주류 의견에 대해 의무적으로 반대의견을 가진 데블스 애드버킷을 정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고자 한 것입니다. 즉, 데블스 애드버킷이 미래의 위험에 대처하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기 위한 위기관리시스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제도가 의미있는 것은 의사결정 주체가 의도적으로 이 시스템을 허용하였다는 것입니다. 반대의 목소리는 이런 저런 과정을 통해 많이 제기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의사결정 주체는 반대의 목소리에 대해 방어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데블스 애드버킷은 반대의 목소리를 시스템 안에 그것도 의도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사를 하면 변호인들께서 찾아오셔서 이런 저런 주장을 하십니다. 우리로서는 그분들의 주장에 정성껏 귀 기울이지만 그 분들은 검사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변호사들의 견해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그 분들이 검찰 조직 밖에서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시는 사선 변호인 

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검사들의 판단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제제도가 존재하여 검사결정과정의 오류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저는 데블스 애드버킷 제도를 이야기 들으면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검찰 수사과정에 데블스 애드버킷 제도를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대형 사건을 수사할 경우 수사검사나 부장, 차장, 검사장 모두 수사의 성공에 대해 관심이 높아 수사의 헛점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때 검사장이 수사라인에 없는 중간간부 한 사람을 데블스 애드버킷으로 임명하여 의무적으로 그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게 하는 것입니다. 데블스 애드버킷으로 지정된 검사는 모든 것을 의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검사의 의문점을 모두 해소한 이후 사건 결정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사건 결정이 탄탄해 질 것입니다.

  물론 이 제도를 현실에 시행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문제점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정치권, 언론 등에서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요즘, 이런 현상이 수십 년간 반복되는 것을 바라 본 한 사람으로서 답답한 나머지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0.11.22. 조근호 드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처음글 목록으로 마지막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