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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번째 편지 - 딸아이, 마라톤 풀코스 도전기


마라톤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몇년 전 5Km 단축 마라톤을 하고 발목이 나간 적이 있어 마라톤 하면 10리만큼 도망가곤 합니다. 저를 닮아 저희 집안에는 누구도 마라톤 같은 위험한 운동에는 발을 내딛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주전 딸아이 윤아가 3월29일 제주에서 열리는 MBC 제주 국제 평화 마라톤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자신의 표현대로 평소 2m 반경 안에서 움직이기를 즐겨하고, 어디를 가든 문 앞에 주차를 하고 올라가는 달리기를 참 싫어 하는 아이가 느닷없이 마라톤에 도전한 것입니다. 그것도 풀코스를.

윤아가 마라톤을 뛰는 동기는 단 한 가지, 자신의 롤 모델인 선배의 권유 때문이었다나, 아마도 아빠인 제가 마라톤을 하자고 하였으면 저보고 미쳤다고 하였을텐데, 아무튼 누군가의 꼬임(?)에 빠져 고생을 자처한 것입니다. 저는 반신반의 하였습니다. 과연 해낼까?

윤아는 그 당시의 사정을 이렇게 글로 남겼습니다.

"신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복과 선수 번호가 집으로 배달되었을 때 이미 포기하기에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이라 준비 운동과 연습도 많이 해야 하는데 정신없는 스케줄에 많이 준비하지 못하고 한번의 연습과 자세 정도를 트레이닝하고 제주도로 출발했다. 마라톤 출발 전까지 내가 준비 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 전 배운 마라톤 기본 자세를 계속 머리 속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드디어 마라톤 당일 날, 우리 팀 일행과 함께 출발선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탕! 소리와 함께 5Km, 10Km Half, Full 코스 모두 같이 출발하였다. 하프인 22Km를 돌았을 때 풀코스 팀들만 남아 뛰고 있었다. 우리 팀도 각자의 페이스 대로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 뛰는 내 옆에는 페이스 메이킹을 해주는 선배가 있었다. 선수 생활을 하던 선배는 처음부터 계속 같은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며 자세를 봐주고 저와 같은 페이스로 함께 뛰었다. 우리는 개수대에서 목을 축이고 가끔 초코파이로 배를 채우고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30Km까지는 자세를 신경 쓰면서 힘들었지만 견딜만했는데 그 후부터 다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그 통증은 자연스러운 증상인데 계속 쉬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거친 숨소리와 절박한 목소리로 '선배님! 선배님!' 이렇게 외쳤지만 선배는 못들었는지 아니면 의도적인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내 힘으로 기어서라도 갈 수 밖에 없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의 힘든 싸움 속에 다리를 기계적으로 옮기다 보니 결승점이 눈앞에 들어왔다. 결승선에 들어 설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생애 첫 풀코스 마라톤 도전에서 성공한 것이다. 6시간 7분, 그러나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늘 마라톤 이야기를 할 때면 기록보다 완주에 의미가 있다고 들 하였는데 그 뜻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준 선배에게 따지듯 물었다. '선배님, 왜 달릴 때 제가 그토록 여러 번 선배님을 불렀는데 왜 제 얼굴을 안보셨어요?' '마라톤을 하면 누구나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지. 그때 옆에서 위로하면 마음과 함께 몸이 무너져 내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지. 그래서 포기하는 사람을 수없이 보았어. 윤아야! 아마 내가 너를 측은한 눈빛으로 보았으면 너는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을 꺼야?'

그 선배는 마라톤 풀코스 3시간 반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마라토너이다. 원래는 마라톤 동호회에서 활동을 하였는데 지금은 기록과 관계없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달리고 있다. 바로 우리팀 같은 생초보들과 함께 말이다. 동호회 사람들이 기록을 중요시한다면 우리는 완주와 팀웍을 중요시 한다. 아직도 선배가 소속했던 동호회 사람들은 선배의 기록이 아깝다며 왜 그런 초보자들과 같이 지내냐 며 핀잔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선배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달리는 이유는 하나야. 현재 하반신 마비로 누워있는 내 동생을 위해서. 어렸을 때는 기록도 욕심 냈지만 어느 순간 욕심이 부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지. 현재 동호회 사람들 반이 부상으로 달리지 못하지. 나는 70세, 80세가 되어도 걸어서라도 완주하고 싶어 그래서 기록이 아닌 평생 마라톤 완주가 나의 목표가 된 것이야.'

내가 같이 뛰지 않고 이 말을 들었다면 무슨 소린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번이지만 마라톤을 완주해 보니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마라톤도 기록이 아닌 완주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딸아이가 마라톤에서 많은 것을 배웠나 봅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마라톤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딸아이가 풀코스를 뛰겠다고 선언하고 그 선언이 완주로 이어진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아마도 금년 안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겠다고 목표를 세웠으면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목표를 먼저 내 건 무모한 행동이 성취를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너무 준비하고 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한번 마라톤 풀코스 뛰겠다고 신청하면 뛸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5.4.13.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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