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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번째 편지 - 늙으신 부모님의 하루하루를 생각해 보셨나요.

          늙으신 부모님의 하루하루를 생각해 보셨나요.


  오늘은 홍영녀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홍 할머니는 일흔에 한글을 깨치시고 일기를 시작하셔서 아흔 넷인 지금까지 계속 해서 매일 일기를 쓰고 계신 할머니입니다.

  홍 할머니께서 팔순이던 1995년 그간의 일기를 모아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는 할머니의 일기 몇 대목을 읽어 봅니다.

  “오늘도 흰 머리카락 날리면서 햇님은 어김없이 산마을로 너머 가시네. 나는 쓸쓸해. 가슴이 허전해. 가슴이 서러워.”

  “인생은 바다위에 떠있는 배가 아닐까. 흘러 흘러 저 배는 어디로 가는 배냐. 앞쪽으로 타는 사람은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뒤쪽으로 타는 사람은 그 누구를 기다리네.”

  홍 할머니는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한 시골마을에서 300평 남짓한 텃밭을 일구며 무, 배추, 호박, 가지 등을 자식삼아 키우며 살아가십니다. 자식이 6남매나 되어 서로 모시려고 하나 할머니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혼자 사신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변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자식들의 걱정에 할머니는 ‘그렇게 죽는 게 복’이라고 대답하시며 혼자이기를 고집하십니다.

  할머니는 1994년 8월 18일자 일기에서 왜 일기를 쓰시는지 처절한 심정으로 피 토하듯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내 글은 남들이 읽으려면 말을 만들어 가며 읽어야 한다. 공부를 못해서 아무 방식도 모르고 허방지방 순서도 없이 글귀가 엉망이다. 내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꽉 찼다. 그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연필을 들면 가슴이 답답하다. 말은 철철 넘치는데 연필 끝은 나가지 않는다. 글씨 한 자 한 자를 꿰맞춰 쓰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모른다. 그때마다 자식을 눈 뜬 장님으로 만들어 놓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내가 국민학교 문턱에라도 가 봤으면 글 쓰는 방식이라도 알았으련만 아주 일자무식이니 말이다. 엉터리로라도 쓰는 것은 손주들 학교 다닐 때 어깨 너머로 몇 자 익힌 덕분이다. 나는 텔레비젼을 보며 메모도 가끔 한다. 딸들이 가끔 메모한 것을 보며 저희들끼리 죽어라 웃어댄다. 멸치는‘메룻찌’로, 고등어는‘고동아’로, 오만원은‘오마넌’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나마 쓰게 되니까 잠 안 오는 밤에 끄적 끄적 몇 마디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말벗이 없어도 공책에다 내 생각을 옮기니 너무 좋다.”

  저는 이 글을 읽다말고 여든 셋이신 어머님이 생각났습니다. 어머님은 어떤 낙으로 살아가시나 어떤 의미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계실까. 내가 그런 것을 생각해 보기나 하였던가.

  홍 할머니는 일흔에 한글을 배워 새로운 세상을 만나 자신의 가슴 속에 꽉 찬 이야기 거리를 일기에 토해내며 하루하루 의미있게 사시는데 말입니다.

  저는 어머님에게도 새로운 세상을 알려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홍 할머니보다 열 살이 젊으신 어머님께서 이제라도 새로운 세상과 접하신다면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지내실 수 있으시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선택한 것은 ‘인터넷’이었습니다. 어머님께 컴퓨터, 특히 인터넷을 가르쳐 드려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곧 바로 아래층에 사시는 어머님께 달려가 한 시간 가량 인터넷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처음에는 이 나이에 무슨 인터넷이냐고 하시더니 검색창에 아들 이름을 넣고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시고는 신기해하시며 배우고자 하시는 의욕을 보이셨습니다. ‘더 젊었을 때 시작할 것을...’ 아쉬워 하시는 어머님께 ‘지금도 늦지 않으셨다며’ 용기를 불러 넣어 드렸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고향에 계신 연로한 부모님께서 하루하루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계시는지 혹시 생각해 보셨나요. 그분들의 하루도 젊은 우리의 하루만큼 소중합니다. 어쩌면 얼마 남지 않으셔서 더 소중하고 안타까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분들이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사실 수 있게 해드리는 것 그것이 효도 아닐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0.9.2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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