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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번째 편지 - 정의, 여러분도 고민해보셨나요.

            정의, 여러분도 고민해보셨나요.

  검찰의 미션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너무나도 많이 들어 익숙한 표현인 ‘인권과 정의의 수호’가 검찰의 존재이유, 미션입니다. 이 미션은 검찰총장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그런데 수년전 검찰 교육혁신을 담당하던 컨설턴트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검사와 검찰 직원들은 검찰의 미션중 하나인 ‘정의’에 대해 통일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션을 수행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각자에게 정의에 대해 적어보라고 하였더니 대부분 적지 못하거나 적더라도 서로간의 의미가 달랐습니다.”

  머리를 꽝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저 역시 ‘정의’라는 표현을 수없이 입에 올렸지만 한 번도 정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법조인으로 살면서 서로 정의에 대해 잘 알려니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에 이상 열풍이 생겨났습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정의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하버드 대학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10만권이상 팔렸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은 분들이 저에게 정의에 대해 물어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에 이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례 중심으로 설명을 해나가 평이하게 느껴졌지만 후반부의 칸트와 존 롤스의 정의론 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법을 전공한 저도 쉽게 읽혀지지 않는 이 책을 비법조인인 일반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끝까지 읽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대한민국 식자층의 내공이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의에 대한 해석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정의는 ‘자유와 권리’라는 칸트의 정의론(1785년)은 프랑스혁명이후 인권 개념의 기초가 되었고, 정의를 ‘공정’으로 해석한 존 롤스의 정의론(1971년)은 자본주의 모순을 수정하는 기부문화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으며, 정의를 시민의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는 ‘공동선’으로 이해하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2005년)은 다원화 사회인 미국을 통합하는 구심점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관심을 끈 것은 마이클 샌델의 주장이 아니라 존 론스의 주장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소하여야 할 단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이 있는 자본주의에서 재능이 뛰어나거나 노력을 한 사람에게 합당한 대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존 롤스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시장에서 얻은 대가를 그들만이 가지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 대가를 공동체에 돌아가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차등원칙’이라고 명명합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볼까요.

  “차등원칙은 사람들의 재능을 공동자산으로 여기고 그 재능을 활용해 어떤 이익이 생기든 그것을 공유하자는데 사실상 동의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태어나면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단지 재능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이득을 얻어서는 안 되며, 그들을 훈련하고 교육하는데 들어간 비용을 갚고,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그러한 행운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애초에 뛰어난 능력을 타고날 자격이 있거나 사회에서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설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검찰에 근무하고 있는 우리는 정도 차이는 있을망정 다른 사람들보다 유리한 출발선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얻은 이익을 그런 행운을 얻지 못한 분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라고 존 롤스는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항변할 수 있습니다. “출발선은 똑같았지만 나는 더 노력하여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으니 그 대가는 내가 혼자 누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이에 대해 존 롤스는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노력하고 도전하는 의지조차도 행복한 가정과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다.”라고 말입니다.

  미국의 기부문화는 차등원칙이라는 이론적 토대위에서 탄생한 것 같습니다. 기부문화의 상징인 워렌 버핏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숫자에 대한 감이 남들보다 우수한 재능을 타고 났고, 이 시대에 나의 재능이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원시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형편없는 사냥꾼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행운을 준 사회에 감사하고 내가 얻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존 롤스의 차등원칙 주장과 똑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성공을 거둔 사람을 바라보고 삽니다. 사회에 대한 봉사와 나눔은 그들의 몫이고 나도 그런 위치에 가면 그렇게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며 그 이익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으며 얻은 교훈입니다.

  지금 ‘공정사회’가 시대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공정의 의미가 존 롤스가 주장하는 정의론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정의론에 관한한 존 롤스(1921-2002년)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의론에 관해 어떤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정의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정의’를 존재이유의 하나로 삼는 검찰이라는 기관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정의’에 대해 공부하고 자기 나름의 견해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이제 독서의 계절 가을이 시작됩니다. 이 가을 무겁지만 피할 수 없는 주제, 정의를 다룬 ‘정의란 무엇인가.’와 만나 보시면 어떨까요. 힘들지만 유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0.9.13.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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