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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번째 편지 - 낯섦을 익숙함으로 바꾸는 시간의 축적

 

몇 년 전 가족 여행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침잠이 없는 저는 6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여행 왔으니 실컷 잠 한번 자보자며 저를 밖으로 내밀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호텔의 아침 뷔페식당을 찾았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가져다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두세 접시 가져다 먹고 디저트에 커피까지 먹었지만 고작 30분 남짓 지났습니다.

이제 7시 반 가족들은 언제 올지 알 수 없고 시간을 때워야만 했습니다. 가지고 간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잔잔한 음악은 일렁이는 아침 파도에 실려 가슴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책을 보다 음악을 듣다 하늘을 보다 파도를 보다 점점 시간이 쌓여 갔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시큰둥해지면 뷔페로 가서 열대 과일을 몇 가지 가져다 놓고 먹곤 했습니다. 두 시간쯤 지나자 웨이터들도 알아보고 눈인사를 합니다. 아침 식사를 하는 손님들이 점점 줄기 시작합니다. 10시에 아침 뷔페 시간이 마감되었습니다. 저는 옆에 편한 자리로 옮겨 본격적으로 독서와 음악 감상에 들어갔습니다.

한 11시쯤 되었을까요. 7시부터 4시간을 그 식당에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그 식당을 가로질러 갔다 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편안하다. 이 식당은 오랫동안 다닌 곳 같다. 나아가 내가 이 식당의 주인 같다." 정말 뜻하지 않은 느낌이 든 것입니다. 생전 처음 간 식당에 고작 4시간 앉아 있었을 뿐인데 내 집 같은 느낌이 든 것입니다.

낯섦과 익숙함의 구별은 공간에만 있는 개념입니다. 반면 시간은 늘 낯설지요. 지금 맞이하는 이 순간은 제가 처음 살아보는 새로운 시간이니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낯선 공간을 익숙한 공간으로 바꿔 주는 것은 낯선 시간들의 축적입니다. 그것도 고작 4시간이면 낯선 이국의 낯선 식당을 집처럼 익숙한 공간으로 만드는 데 충분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얻은 교훈을 삶에 적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약속을 하면 15분 전에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때 길이 안 막히면 30분 전에 도착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면 불편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 낯선 장소를 익숙한 장소로 바꾸는데 필요한 시간을 축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메뉴도 보고 식당 분위기도 살피고 오늘의 만남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기도 합니다. 늘 다니는 식당도 만나는 사람과 나눌 주제는 늘 다르니까요.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요즘은 핸드폰에 볼거리들이 너무 많아 자투리 시간을 보내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습니다. 재미난 볼거리를 만나면 약속 상대방이 늦게 와 주었으면 하며 은근히 기대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투리 시간에 읽은 책도 꽤 될 것입니다. 유튜브도 적잖이 보았고요.

이렇게 약속 장소에 일찍 가니 대부분 제가 먼저 도착하게 됩니다. 상대방은 5분 전에 도착하면서도 미안해합니다. 제가 여유가 있는 셈입니다. 만약 큰 비즈니스 건이라도 있는 만남이면 제가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이지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일찍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낯섦을 익숙함으로 바꾸고 싶을 뿐입니다.

해외여행 가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집니다. 가이드를 따라 이곳저곳 다녀오고 나면 여행을 다녀와서도 어디를 다녀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곳을 몇 번 들러 보면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뀝니다.

몇 년 전 베를린에 처음 갔을 때의 일입니다. 호텔 부근에 멋진 공원이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그 공원을 산책하였습니다. 혼자도 가고 일행 몇몇하고도 같이 갔습니다. 나중에는 주민처럼 느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지금도 다른 장소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공원에서 만난 나무의 피톤치드 향, 연못의 고요함, 새들의 재잘거림, 부슬비의 촉촉함 등은 또렷이 기억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비슷한 것을 느낍니다. 영화를 많이 보니 예전에 본 영화인데 본 줄 모르고 다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한참 보아도 줄거리가 잘 생각나지 않고 익숙한 장면 몇몇으로 예전에 본 영화임을 기억해 냅니다. 그 영화는 그저 낯섦에 머물고 만 것입니다.

영화가 익숙함의 대상이 되려면 서너 번은 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운드 오브 뮤직]은 여러번 보았을 것입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영화를 처음 보았던 학창시절에는 낯섦이 주는 충격이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더 좋습니다.

얼마 전 보헤미안 랩소디를 두 번 보았습니다. 앞으로 그런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한두 번 더 보면 보헤미안 랩소디도 저에게 익숙함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또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낯섦과 익숙함이 교차하는 공간은 역시 사람과 사람의 만남입니다. 낯섦에 머무는 사이는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친구가 좋은 것은 시간의 축적이 가져다주는 익숙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익숙함에서 편안함을 느껴 지겹도록 또 만나는 것이지요. 만나면 지난번 만남과 패턴이 똑같이 반복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익숙함이 편안함과 동의어가 됩니다.

낯섦과 익숙함의 문제는 아이러니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익숙함이 지루해집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지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여행입니다. 낯섦과의 만남. 여행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그 낯섦이 무한히 이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정신분열증에 걸릴지 모릅니다.

익숙함이 지루해질 때면 낯섦을 찾아 나서고, 그렇게 만난 낯섦과도 충분한 시간을 가져 익숙함으로 전환하여야만 편안해지는 모순, 그 모순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요. 인생이란 이처럼 늘 익숙함과 낯섦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봅니다.

그런데 저는 [시간의 축적]에 주목하렵니다. 낯섦을 익숙함으로 바꾸는 마법이니까요. 바닷가 식당에서 4시간을 보내면서 깨달은 그 마법. 그 마법에 인생의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낯섦을 찾아 나서시나요. 아니면 낯섦을 익숙함으로 바꾸기 위해 시간을 축적하고 계시나요.

오늘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3.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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