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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번째 편지 - 내가 미술공부를 하는 이유

 

동호인들끼리 미술공부를 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저 그림이 좋아 매주 현대미술을 공부해 왔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할수록 현대미술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는 현대 미술 작품을 보면서 늘 그림 감상보다는 '그림값이 얼마나 하는지'에 관심이 더 많았고 추상적인 작품을 만날 때면 '나도 저 정도는 그릴 수 있다'는 농담을 하곤 하였습니다.

최근 어느 책을 보고 그림에 대한 생각을 체계적으로 재정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서양미술사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은 이미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저는 10년 공부를 새롭게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회화는 기본적으로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똑같이 그리는 능력이 중요했습니다. '정말 실물과 똑같이 그렸다'는 한 때 화가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습니다. 화가는 자신이 보았거나 상상한 아름다운 그 무엇을 그려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화가들은 [재현]의 대가들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면 하나님과 아담이 꼭 그렇게 생겼을 것 같습니다. 그 그림 이후 인류는 하나님을 흰 수염 난 남자 노인이라고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회화의 핵심은 [재현 representation]이었습니다.  

 

 

[재현]이 핵심 요소이던 서양미술에 엄청난 사건이 발생합니다. 1827년 프랑스에서 사진술이 발명된 것입니다. 어떻게 해도 회화가 사진보다 더 잘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재현의 역할은 사진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회화는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여야 했습니다. 그 무엇을 재현하던 화가들은 이제 그 무엇 자체가 아니라 그 무엇을 보고 감각으로 깨달은 '느낌'을 화폭에 옮기기로 결정합니다. 이 느낌은 [인상]이기도 합니다.

1872년 모네는 이것을 impression이라고 표현하면서 [인상 일출, impression, soleil levant]이라는 제목을 단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입니다. 인상파의 탄생입니다. 이처럼 인상파는 화가가 그 무엇을 보고 감각으로 깨달은 느낌, [인상]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서양미술은 똑같이 그리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화가의 독창적인 느낌, 즉 인상을 그리느냐가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관객들은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대상이 점점 흐릿해지고 느낌이 강하게 부각됩니다. 어떤 작품 앞에서는 '이것은 무엇을 그린 것이야'라는 궁금증이 유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점까지는 여전히 [무엇]을 그린다는 개념이 남아있습니다.

화가는 관객과 자신의 생각을 소통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사실 회화는 화가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회화는 소통의 매체입니다. 이런 전통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회화를 볼 때마다 화가가 [무엇]을 그렸는지를 알아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인상파 이전의 작품은 관객과의 소통은 잘 되지만 관객과의 감정 교류를 하는 데는 취약했습니다. 관객은 이성으로 작품을 이해합니다. '이 작품은 무엇을 그렸지. 그 역사적 배경은 무엇이지.' 이런 식으로 감상합니다. 너무 정확하게 그려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부족합니다.

인상파 이후에는 화가가 그 대상을 보고 느낀 감정을 관객이 읽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된 것은 [무엇]을 그렸느냐입니다. 그러다가 1,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의 지성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활성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데 생각을 같이합니다.

나치 부역자들은 한결같이 기계적으로 일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유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감각이 아예 마비되었거나 존재하지 않는 듯하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화가들은 무엇을 재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거나 무엇에 대한 인상을 그리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마크 로스코는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바뀌어야 하고 세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압적 강요와 지적 설득만으로는 세계가 바뀌지 않는다. 감성을 활성화하여야만 한다. 지성은 머리에만 머물지만 감성적 울림은 우리 실존 전체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

 

 

강신주의 책 [철학 vs 철학] 중 '그림은 우리를 어떻게 흔드는가'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러시아 출신 화가 마크 로스코는 이성적 소통이 아닌 감성적 소통을 위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에게 무엇을 재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무엇을 보고 깨달은 인상을 그리는 것도 한가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 감정을 타인에게 소통시키는 것이 절박하였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표현 expression이었습니다. 마음속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작업입니다. 이것이 마크 로스코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의 정신입니다.

관객은 그의 작품 앞에 서서 더 이상 화가가 '무엇을 그렸는지.' '잘 그렸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저 화가가 표현하려 한 그의 감정과 소통할 뿐입니다. 그래서 작품 앞에 한 시간 두 시간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슬픔에 관객의 슬픔이 보태지면 그들은 그림이라는 매체를 통해 감정을 소통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 단색화의 대가 박서보 선생님은 이를 일컬어 치유의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사회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림은 해독제이자 치료제입니다.

저는 서양미술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였습니다. 인상파 이전의 [재현]. 인상파 이후 1, 2차 세계대전까지의 [인상]. 그 이후의 [표현].

서양미술은 무엇을 그리는 [재현]에서 시작하여 무엇에 대한 느낌을 그리는 [인상]을 거쳐 이제는 무엇이 아닌 화가의 감정을 그리는 [표현]까지 다다랐습니다.

이번 공부를 통해 타인과 생각을 소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훈련에는 그림 감상이 최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왜 우리가 미술공부를 하여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 바꿔 말하면 새로운 가정, 직장, 사회 등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미술공부를 통해 타인의 감정을 잘 읽어내고 보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2.1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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