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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번째 편지 - "저 아세요"


지난주 목요일 그러니까 11월20일 일입니다. 오전에 의왕에 있는 서울구치소에 들렀다가 오후에 충남 지역을 갈 일이 있어 점심을 의왕 부근에 있는 백운저수지에서 먹고 커피를 한잔하러 전망이 좋은 커피숍에 들어갔습니다. 2층에서 커피를 시켜 먹고 일행들과 같이 1층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크레딧 카드를 주고 종업원이 계산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마침 카운터 오른쪽에 있는 CD 한 장이 눈에 들어와 그것을 집어 들고 누구의 CD인지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카운터에서 제 카드로 결제를 하던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 종업원이 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딴 짓을 하고 있어 못 들었기에 “예”하고 반문을 하였습니다. “영수증을 끊어드릴까요?” 그 말에 저는 아무런 생각 없이 “됐어요.”라고 답변하고 다시 제 눈은 그 CD로 옮겨갔습니다. 카드로 결제하는 과정은 매일 몇 번씩 일어나는 너무나도 익숙한 상황인 지라 그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였습니다. 이제 제 카드만 돌려받으면 끝이 나는 너무도 쉬운 일만 남았습니다. 그때 그 젊은이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 아세요.” 당연히 모르지요. 제가 어떻게 초면인 그 젊은이를 알겠습니까? 질문 자체가 의아하여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반말 하세요.” 이 황당한 말에 저도 모르게 “예에” 라는 반문이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지?’ 순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젊은이와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CD를 보는 일에 정신을 쏟고 있을 때 “영수증을 끊어 드릴까요?” 라고 물어 그저 반사적으로 “됐어요.”한 것 뿐입니다. 사실 저는 그 젊은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정도로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반말을 하였다구요. ‘저는 그저 됐어요.’라고 한 것 뿐인데.”  “반말 하셨잖아요.” “허허 이런 일이 내가 왜 반말을 하겠어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됐어요’가 반말이에요.” “반말하셨잖아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커피숍 주인이 나서 그 젊은이를 나무라고 끌고 가고 저에게 사과를 하였습니다. 저도 일행이 있어 그 커피숍을 나와 차에 탔습니다. 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는 내내 이 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먼저 드는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사람이 서비스 정신이 저렇게 없어서야. 가사 내가 자신에게 반말을 하였다고 하자 그래도 그게 손님에게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저 아세요. 왜 반말하세요.’라고 할 일이야. 나 원 일진이 사나우려니까.” 
생각은 다시 요동쳤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따져야겠어. 누가 잘못했는지 잘잘못도 따지지 않고 상대방에게 사과도 받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어.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아들 벌 밖에 안되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수 만은 없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동승한 일행에게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그곳에 다시 갈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저 말 뿐이지요. 그런데 1시간 쯤 지나고 나니 생각이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왜 그 젊은이가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혹시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 아닐까? ‘됐어요.’라고 답변할 때 혹시 마지막 ‘요’자를 상대방이 잘 안 들리게 발음하는 바람에 그가 자신에게 반말을 하는 것으로 오해 한 것 아닐까? 나는 ‘됐어요’라고 답변한다고 생각하고 답변했지만 오랜 검사 생활에서 몸에 밴 반말 투가 아직도 바뀌지 않아 그저 ‘됐어.’라고 튀어 나온 것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앞으로 말을 할 때 이런 오해를 받지 않도록 세심한 신경을 써야겠네.”
남 탓으로 돌리는 데서 내 탓으로 돌리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도 화가 풀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됐어.’라고 반말을 했다고 치자 도대체 서비스맨인 종업원이 손님이 잘못하기 만을 기다렸다가 ‘너 잘 걸렸다’는 식으로 따지고 들어오는 것이 할 짓이야.”
생각은 남 탓, 내 탓, 남 탓을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어느 검찰청에서 전화 걸 일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직원에게 통화가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보고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여직원에게 제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편한 시간에 리콜을 부탁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자 옆에 타고 있던 일행이 ‘여직원에게 극존칭을 쓰시네요.하고 웃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커피숍 사건이 저의 어투를 바꿔 놓은 것입니다. 검사에서 변호사로 변신한 지 3년. 그간의 세월이 저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생각하였지만 오늘 같은 일이 생기고 만 것입니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젊은이가 제 대답을 기분 나쁘게 들은 것 만은 틀림없었으니까요? 
제가 그에게 크레딧 카드를 주면서 “이곳 경치가 참 아름답네요. 장사 잘 되세요.”라고 인삿말을 건넸더라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에게 집중하고 있다가 “영수증 끊어 드릴까요?”라고 물었을 때 딴 전 피우지 말고 단번에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였더라면 최소한 이런 다툼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상대방이 기분 좋게 대답하여 기분 좋은 순간이 연출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커피숍에서 일하는 종업원도 사람입니다. 그가 어떤 까닭에 종업원 일을 하는 지는 알지 못하지만 사정이 넉넉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식 같은 또래의 젊은이가 많지 않은 일당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을 보고 그 친구가 ‘내 딸이라고,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였더라면 크레딧 카드 결제하는 순간에 그를 무시하고 CD를 뒤적거리는 딴 짓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저는 그가 비난하는 것처럼 그에게 반말하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그를 바라보지 않고 미소 짓지 않고 마치 그를 투명 인간처럼 무시하는 행동을 한 것 만큼은 비난 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가 저에게 폭발한 근본적인 이유는 ‘반말’이 아니라 ‘무시’였는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하이패스를 사용하여 고속도로 매표소에서 표를 결제할 일이 줄어들었지만 고속도로 매표소에서 여직원이 결제를 해주던 시절, 제 친구 오희범은 그 여직원에게 열 번이면 열 번 모두 반가운 미소를 띠며 ‘수고하십니다.’를 외쳤습니다. “저 조그마한 통 속에서 하루종일 표를 결제해주는 단순한 일을 하고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 나겠냐. 내가 미소 짓고 인사해주면 그 순간 만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저는 오랜만에 그 친구의 말이 머리에 떠 올랐습니다. 이 단순한 이치를 저는 왜 잊고 살았을까요? 
여러분은 커피숍에 가면 종업원에게 인사하시나요? 종업원이 인사하면 받아 주시나요? 꼭 한번 해보세요. 세상이 달라집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4.11.2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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