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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번째 편지 - 2014년을 다시 산다면 잘 살 수 있을까요?



오늘이 2014년11월17일입니다. 금년을 만족스럽게 사셨나요? 금년에 이룩한 일이 무엇인가요? 금년에 행복한 날이 많으셨나요? 이 질문에 쉽게 ‘예스’라고 대답할 분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2014년을 다시 산다면 더 잘 살 것 같은가요? 저를 포함하여 대부분 ‘예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인생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처음과는 달리 더 성실하고 더 열심히 그리고 더 멋지게 살 텐데.

저는 30일간 새로운 것 도전하기라는 것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도전에서 한 달간 매일 1시간 걷기를 여러 차례 도전하였습니다.
2011년1월15일 첫번째 도전을 하였습니다. 당시는 한겨울이었습니다. 날이 좋은 봄이나 여름에도 하기 힘든 일은 도전한 것입니다. 하루 이틀 힘겹게 걸었습니다. 완전 무장을 하고 스키 모자에 스키 고글까지 끼는 수선을 떨고 길을 걸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누가 상을 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지만 저 자신과의 약속이라 열심히 하였습니다. 10일, 20일, 30일 드디어 해냈습니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수없이 받았지만 어찌어찌 하여 해냈습니다. 해내고 나니 그 뿌듯함이란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달도 이어서 매일 1시간 걷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처음처럼 신이 나지는 않더군요. 30일간 매일 1시간 씩 걷기가 주는 결과를 체험한 뒤라 그 결과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져 추진력을 반 쯤 잃은 데다가 매일매일 걷는 그 반복의 지루함이 나머지 추진력 반을  갉아먹어 첫째 달 걷기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습니다. 결국 며칠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인생을 두 번 살면 더 잘 살 것 같은데 왜 두 번째 도전이 이리 힘든 것일까요? 
첫째 달에는 완벽주의가 힘을 발휘합니다. 한번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압니다. 그 힘이 다음날도 온몸에 무장을 하고 길로 나서게 합니다. 그러나 한 달을 걷고 나니 한 달을 걷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달 이런저런 핑계를 대어 하루를 빠져 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누가 나를 야단치는 것도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몸과 마음은 알아버립니다. “아하! 하루 걷지 않아도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구나. 그래 인생 뭐 그리 빡빡하게 살 것 있나. 완벽주의 그거 병이라더라. 오히려 인생 대충대충 사는 것이 더 행복하대. 완벽주의라는 말 대신 최적주의라는 말이 있잖아.” 자신이 아는 온갖 지식이 총 동원되어 자기 합리화를 시킵니다. 이렇게 하루 빠지고 이틀 빠지면 얼마 후 스스로 포기하고 맙니다.

제가 검사 초년병 시절 ‘3개월 미제’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배당받은 사건을 3개월 되는 달 말 일까지 처리하지 못하면 3개월 미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저희 초임검사들은 3개월 미제가 한 건이라도 생기면 무능한 검사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마 네다섯 건 쯤 생기면 사표 내야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전국에서 미제가 많은 검사 10명에게는 검찰총장님으로부터 빨간색 봉투의 경고장이 갔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돌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달 애를 썼지만 그만 3개월 미제가 1건 생기고 말았습니다. 31일 오후 6시경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부장검사님께 어떻게 이실직고하고 야단을 맞을 것인지 머리 속이 온통 그 생각 뿐입니다. 부장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어라, 그런데 야단의 강도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아하! 이것 아무것도 아니구나. 3개월 미제 남겨도 죽는 것이 아니었어. 다음 달에도 한 건, 그 다음 달에는 두 건, 야금야금 3개월 미제가 늘어 만 갑니다. 이러다가 한번 ‘꽝’하고 야단을 맞습니다. 그러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한 달은 미제를 줄여 제로로 만들었다가 다시 다음 달부터 야금야금 늘어갑니다. 
3개월 미제 증가 과정은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저도 매일 1시간 걷기를 한 달 성공하고 두 번째 달에 포기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몇 년을 살다가 2014년3월20일 ‘꽝’하고 한방 맞았습니다. 병원에서 검사한 모든 수치가 나빠진 것입니다. 의사는 이렇게 지내면 몇 년 안에 중풍이 온다고 경고하면서 걷기를 권했습니다. 다시 매일 1시간씩 걷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가족들과 6월말까지 체지방 4.5킬로그램 빼기를 같이 약속하였습니다. 매일 1시간씩 걷기가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잘 아는 터라 더 힘들었지만 의사 선생님의 경고와 새로운 목표가 저를 버티게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체중은 6.2킬로그램, 체지방은 5.3킬로그램 줄였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번 도전하여 성공하였던 일, 그러나 그 후 흐지부지된 일을 다시 도전해 성공한 것입니다. 이번 도전은 첫 번째 도전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도전의 전 과정을 이미 경험한 터라 그 경험이 오히려 성공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후 어찌 되었을까요? 여전히 30일간 새로운 것 도전하기의 목표는 매일 1시간씩 걷기이지만 주말에 골프 칠 때를 제외하고는 별반 걷지 않습니다. 인생이 이 같은 모양입니다. 6월말 목표를 달성하고는 매일 1시간씩 걷기가 평생의 습관이 될 것만 같았는데 다시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체중도 다시 2.5킬로그램 불었습니다.

다시 처음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2014년을 다시 산다면 더 잘 살 것 같으신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래서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다시 산다면 더 잘살 것 같다고 느끼는 자신의 잠재능력에 대한 믿음’에 대해 이렇게 냉혹하게 비판합니다. “잠재능력은 상황만 달랐더라면 어떤 일을 해 낼 수도 있었을 거란 착각을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거짓된 위안을 준다.” “인간이란 그의 행동의 총합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며 그가 살아온 삶이 곧 그 자신이다.”(줄리언 버지니 등이 쓴 책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31면에서 인용)
저는 사르트르의 말에 반기를 들고 싶습니다. 잠재능력을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자신에 대한 발전이 없을테니까요. 2014년을 다시 살 수는 없지만 2014년을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다시 도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보셨듯이 다시 도전해 또 성공하기 위해서는 처음의 성공보다 훨씬 힘든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다시 살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만 가지고 도전하기 때문에 두 번째 도전에서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꽝”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경영학에서 ‘위기감의 조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즉, 이번 도전에 성공하지 못하면 엄청난 불행이 초래될 것이라는 경고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첫 번째 도전과는 다른 목표가 또 하나 제시되면 달성률이 더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새로운 것이 열광하니까요? 저도 지난 3월 도전에는 매일 1시간씨 걷기에 100일만에 체지방 4.5킬로그램 줄이기라는 새로운 도전 목표를 추가하였습니다. 이 추가 목표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2014년이 불과 40여일 남았습니다.
2014년을 다시 살아도 지금 산 것 보다 더 잘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잘 살았던 그렇지 않건 2014년 11월16일까지 여러분이 살아 온 행동의 총합이 사르트르의 말 대로 여러분의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할 ‘희망’ ‘꿈’ ‘비전’이라는 것을 가슴에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그 도전이 처음보다 힘들다는 것 누누이 설명 드렸습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성공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 되지 못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오늘부터 다시 매일 1시간씩 걸으렵니다. 그리고 체중을 3킬로그램 줄이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4.11.1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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