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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번째 편지 - 축구는 승부인가요, 축제인가요.

                      축구는 승부인가요, 축제인가요

  여러분 토요일 저녁 한국과 우루과이의 축구경기를 보고난 소감이 어떠셨나요. 너무 속상하셨나요. 화가 나셨나요. 아니면 졌지만 잘 싸웠다고 칭찬해주셨나요. 

  다 큰 어른 22명이 공 하나를 가지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다가 작은 골문에 공을 집어넣고는 서로 좋아라 하는 정말 이상한 게임, 이것이 우주인이 있다면 지구상의 축구를 보고 느끼는 생각이 아닐까요. 그러나 지구인들은 그 축구에 목숨을 겁니다. 축구 경기 끝에 전쟁이 난 경우도 있고 축구경기에 실수를 하였다고 암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축구는 무엇일까요. 게임일까요. 운동일까요. 승부일까요.  

  여러분 지난 나이지리아 전을 보고 어떠셨나요. 저는 우리나라 축구팀이 실력에 비해 운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반전 마지막 20분 동안 한국은 압도적으로 밀렸지요. 골문 앞에서 들어갈 뻔한 경우가 최소한 두 번은 되었으니까요. 20분간 축구를 보면서 즐기기는 커녕 어느 아나운서 말처럼 1분이 1년처럼 느껴졌습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물론 16강에 올라가 온 국민과 함께 즐거웠지만 솔직히 내용면에서는 진 게임 같았습니다. 

  그래서 국민 모두 우루과이 전이 걱정 되었고 저는 사실 우루과이 전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수비가 워낙 불안하였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시작하자마자 한국팀은 수아레스를 놓쳐 어처구니없이 한 골을 먹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무슨 8강이야. 그런데 그 이후 한국팀은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 그라운드를 누볐습니다. 골 점유율 6:4, 수많은 찬스와 슈팅, 기존의 한국 축구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여러 패턴의 과감한 공격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국팀이 대견스러웠고 참 잘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드디어 이청용이 헤딩으로 만회골을 뽑았습니다. 당연한 결과이었습니다. 예선전 3게임에서 한골도 내주지 않았다던 우루과이 수비팀이 드디어 한골을 먹은 것입니다. 한국팀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진정 자랑스러운 것은 중원을 호령하며 압도적으로 경기 주도한 그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이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구는 승부가 아니라 축제이구나. 한국축구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보는 듯 신들린 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팀의 약점은 여전히 약점이었습니다. 우루과이는 단 한번의 코너킥에서 수아레스가 수비수를 젖히고 기가 막힌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적이지만 잘하였습니다. 우리의 수비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축구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골을 더 넣지 못해 지고 말았지만 2:1의 상황에서 끝날 때까지 한국 축구는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공격을 펼친 것 같았습니다. 주심이 휘슬을 부는 순간에도 저는 1분만 더 있었으면 동점골을 터트렸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졌지만 너무도 이번 축구 경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저만의 생각인가요. 저는 이날 경기에서 축구는 잔인한 승부의 세계가 아니라 재미난 축제의 세계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았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선수들에게 재미나게 즐기라고 하였다더군요. 팬들인 우리 시청자들도 즐기는 축구, 축구 경기의 이상이 아닐까요. 승부만 관심 있으면 경기를 보지 않고 다음날 뉴스로 결과만 알면 되지요. 그런데 우리가 열심히 길거리 응원을 하는 이유는 즐기기 위해서이지요.  

  곧 검찰인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사를 경기의 결과로 여기곤 합니다. 1년간 열심히 경기를 한 결과로 말입니다.  

  그런데 1년간 열심히 일하지 않았는데 그저 우연히 좋은 곳으로 발령이 난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런 인생이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인생일까요. 물론 1년간 열심히 일하고 그 대가로 인사도 원하는 곳으로 발령이 나면 좋겠지만 모두가 그러기는 어렵습니다. 마치 축구 경기에서 모든 팀이 이길 수 없듯이 말입니다. 반드시 지는 팀이 있지요. 우리가 우루과이에게 이겼어도 우승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졌을 것입니다.  

  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좋은 보직으로 가면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 보직으로 가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1년간 어떤 경기를 펼쳤는가 입니다. 간신히 비겼지만 위태위태하였던 나이지리아 전 같은 인생이 있는가 하면, 졌지만 너무도 잘 싸운 우루과이 전 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 결과는 대개 자신이 결정하기 보다는 다른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경기에 해당하는 하루하루의 삶은 자신의 노력으로 좌우되지요. 

  저는 우루과이 전을 보면서 인생은 축구와 마찬가지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승부로만 여기면 하루하루가 힘들고 무미건조합니다. 그러나 인생을 축제로 생각하는 순간 하루하루가 너무도 재미있고 흥분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승부인가요. 축제인가요. 

  저도 젊은 날은 인생을 승부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지난 주말처럼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날은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초조하지 않았습니다. 맑고 화창한 날은 늘 열심히 공부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습니다. 너무도 불쌍한 인생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세상을 좀 더 많이 알게 되면서부터 인생의 참 맛은 승부가 아닌 축제에 있음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인생이 승부라면 어느 개그 프로처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오늘은 승부인가요. 축제인가요. 

  이번 한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0.6.2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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