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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번째 편지 - 당신의 행복채굴능력을 묻습니다

                        당신의 행복채굴능력을 묻습니다.


  저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두 달여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왔습니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지내는 삶이 그다지 녹녹하지는 않더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가운데에도 행복했던 순간들이 적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적지않이 놀랐습니다. 

  이른 아침 알람소리가 울리기 전에 저절로 눈이 떠졌을 때 느끼는 상쾌함은 행복한 하루의 시작을 예고한다. 열어젖힌 창문으로 들어오는 상큼한 해풍은 부산에서만 즐길 수 사치이다. 일렁이는 바닷물에 부딪쳐 금빛으로 조각난 햇살 파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모두 금도금되는 듯하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에 바닷가 길을 따라 동백섬까지 달리는 조깅코스는 생각만 해도 행복감에 젖어든다. 귓가를 스치는 바닷바람이 전해주는 초여름의 내음은 한여름 해운대 해수욕장의 작열하는 태양과 후끈하게 달궈진 모래를 연상시키며 아직 잠이 덜 깬 아침 기분을 상쾌하게 끌어올린다.

 

  동백나무 숲에서 전해지는 피톤치트는 해풍의 상쾌함을 극대화 시켜 저절로 호흡을 키워준다. 송글 송글 땀방울이 맺히고 다리가 힘들어지며 호흡이 가빠진다. 그러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약 1,000미터의 동백섬 산책로를 한바퀴를 돌고나면 오늘도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과 건강이 한 뼘만큼 좋아졌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열에 행복감이 전해진다.

  샤워기의 물줄기를 타고 온몸에 퍼지는 청결함과 신선함은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샤워 후 바르는 스킨의 이름모를 향기에서도 행복감은 묻어난다.

  아침은 먹지 않아도 좋을 만큼 이미 힘이 솟아 있다. 야채샐러드 위주의 가벼운 아침은 그 맛만큼이나 정신에 기쁨을 준다. 약간은 허기진 듯한 공복감이 주는 쾌감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짜릿함이 있다.

  출근길에 만나는 직원들의 밝은 인사에 함께 인사하며 그 인사 속에 서로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스며 있을 거라 확신해본다. 변함없이 성실한 모습으로 인사하는 박국현 방호장과 벌써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이야기로 아침을 시작한다.

  사무실에서 마시는 블랙커피의 진한 향은 오늘이 어제와는 다른 새로

운 하루가 될 것임을 예고해 준다. 아침회의에서 만나는 낯익은 얼굴들과의 회의도 밝은 주제로 시작된다.

  핸드폰이 울린다. 핸드폰에 뜬 이름이 반가운 옛 친구이다. 받기 전부터 설레이고 괜스레 큰 목소리로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이런 전화 한두 통이면 오후는 이유 없이 기분이 좋다.

  구내식당 점심식사 후 청사를 한바퀴 걷는 산책길에 좋은 분들과 좋은 여건에서 근무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곤 빙그레 미소가 떠오른다. 하루의 행복이 일상의 사소함에서 비롯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 데는 적지 않은 세월이 필요하지만 사소한 행복감을 느끼고 누리는 데는 단 몇 분이면 족하다.

  퇴근 후 절대적 자유가 주는 정신적 쾌감은 포기할 수 없는 행복감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자유. 인류가 염원하던 가치이다. 퇴근 후 수 시간은 인류 자유정신의 오랜 투쟁의 결과물을 누리는 시간이다.

  저녁식사 후 어제 읽다만‘법원과 검찰의 탄생’책자를 다시 읽기 시작한다. 갑오경장이후 1960년대까지의 법원 검찰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한 노작이다. 우리 검찰이 오늘날 겪고 있는 문제의 근원을 알게 되는 대목에서는 절로 무릎을 치며 혼자만의 희열에 들떠 저자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곤 한다.

  아내가 전화를 하여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궁금해 한다. 아내의 마음 씀에 고마워지며 늘 당연시되던 가족이 천상의 선물임을 문득 깨닫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님께 전화를 하기 위해 버튼을 누른다. 한 마디 한 마디 걱정 뿐이시지만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어머님이 계심이 무한한 기쁨이다. 

  일상의 사소함에서 행복을 캐내는 이 능력은 고독과 절제라는 숙련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분주하던 일상을 멀리하고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부터 다시 찾게 된 이 행복채굴능력을 잃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다시 세상으로 나가더라도 이 능력만큼은 항상 꺼내 녹슬지 않았는지 보고 또 보렵니다. 여러분의 행복채굴능력은 어떠신가요. 숙련이 필요하신가요. 

  이번 한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0.6.2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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