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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번째 편지 - 검찰공무원의 인간관계,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검찰공무원의 인간관계,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지난주 금요일 부산경남 향응의혹사건에 대한 검찰의 고강도 개혁안이 발표되었습니다. 특히 검찰문화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상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제한이 가해졌습니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이유를 불문하고 접대를 받으면 징계하기로 한 것입니다. 고육지책이지만 일각에서는 심하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서구에서는 인간관계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더치페이(각자 먹은 것을 각자 계산하는 생활방식)가 이제 한국 검찰에 상륙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5월3일자 편지에서 말씀 드린대로 주중 약속, 주말 약속, 외부강의 등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칩거하였습니다. 점심은 간부들과만 먹고 저녁은 관사에 들어가 해결하였습니다. 주말에도 가급적 부산에 머물렀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단식도 하고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였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매우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 한두 주는 개인시간이 많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적막감이 밀려왔습니다. 사회와 단절된 듯한 기분이 들고 삶이 무미건조한 단계를 넘어 별의미가 없는 듯이 느껴지곤 하였습니다.  

  대문호 빅톨 위고는 행복의 주된 원천은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행복의 필수요소로 들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50여 일간 강제적으로 인간관계 없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실험 결과 그런 삶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인간관계는 우리 인생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일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인간관계에서 병폐가 생겨 검찰 전체가 큰 홍역을 치렀습니다. 그래서 이번의 검찰개혁안에서는 개인적 차원의 인간관계에 대해 조직차원에서 통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검찰공무원의 회식에는 외부인사가 동석하면 안 된다. 검찰공무원끼리의 회식도 경제적 범위 내에서 건전하게 하여야 한다. 검찰공무원이 인간관계를 맺을 때에는 반드시 자신이 먹고 마신 비용은 자신이 지불하여야 한다. 사건관계로 만난 사람은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면 안 된다.”는 등이 그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올바른 상대와 올바른 방법으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 Schmidt와 Sermat는 인간이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서는 네 가지 종류의 동반자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가족동반자입니다. 부모, 형제자매 등과 같이 가족애를 나눌 수 있는 혈연적 동반자를 의미합니다. 둘째 낭만적 동반자입니다.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배우자나 애인을 말합니다. 셋째 사교적 동반자입니다. 교우관계를 통해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친구를 뜻합니다. 넷째는 작업적 동반자, 즉 일을 함께 하는 동료를 말합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사교적 동반자 영역입니다. 원래 사교적 동반자는 동향친구나 동문친구처럼 지연 또는 학연에 근거한 일차적 교유관계와 개인의 성격, 가치관, 신념, 취미, 관심사와 같은 개인적 기호의 공통성에 근거한 이차적 교유관계가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이 부분은 처음에는 순수하게 시작하다가 이해관계가 개재되면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검찰공무원의 경우 우리가 가진 권한 때문에 변질되거나 왜곡된 사교적 동반자 관계가 왕왕 존재합니다. 우리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잘 가늠하여도 이용되고 맙니다.  

  우리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금전 문제와 사건 부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뇌물을 받지 않는 소극적 태도에서 나아가 더치페이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하고, 동료들에게 단순히 사건진행상황을 알아보거나 억울하다고 하니 기록을 잘 검토해 달라고 하는 것들도 징계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여야 합니다. 세상에 공짜 식사는 없습니다. 

  이같이 앞으로의 사교적 동반자 관계는 매우 어려운 처신이 필요하게 되어 점차 위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가족, 부부, 직장동료들과의 관계가 중시될 것입니다. 검찰공무원의 인간관계에 큰 변화가 몰려 올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미 이렇게 살고 계신 분들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았던 분들은 사회생활의 재정립이 필요한 순간이 도래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선택은 여러분 몫입니다. 

  이번 한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0.6.1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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