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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번째 편지 - 매일 만나는 수사대상자, 그들은 주권자입니다.

            매일 만나는 수사대상자, 그들은 주권자입니다. 

  어느 여자 분이 교통사고 사건으로 경찰서를 가게 되었습니다. 조사에 앞서 겁도 나고 걱정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만난 경찰관은 옆집 아저씨처럼 친절하였습니다. 편안한 말씨에 차가 많이 부서진 것에 비해 아무도 많이 다치지 않은 것은 천운이라며 걱정해 주었고 긴장하고 있는 그녀에게 커피까지 타주며 편안하게 조사받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일선 경찰이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들어 왔는데 정말 그렇구나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검찰은 어떨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청을 다녀온 그녀는 검찰도 상상이상으로 친절하였다며 경찰과 검찰이 막상막하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검사가 그녀를 맞이하며 ‘시간에 맞춰 나와 주셔서 고맙다.’고 예상 밖의 인사를 하였고 검사가 직접 조사를 하면서 그녀가 하는 말을 다 받아주었으며 마지막에 그녀가 신호체계에 억울한 점이 있다고 하자 종이를 주며 써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자술서를 써서 내자 ‘자술서를 정성껏 써주셔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는 조사를 마친 후에는 다시 한번 ‘어려운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까지 하였습니다. 그녀는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너무 친절하여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제 아내입니다.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내고 최근에 조사를 받았습니다. 물론 경찰이나 검찰은 제 아내가 검찰간부의 부인인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일선 경찰과 검찰은 그사이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경찰관과 검사는 무슨 생각으로 피의자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한 것일까요. 상부에서 친절을 강조하고 사회분위기도 수사기관의 대국민 서비스를 주목하기 때문이었을까요.  

  며칠 전 차를 타고 관사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데 새로 온 아파트 관리소장과 직원들이 서서 부임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들의 친절한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파트 주민이 주인이니까요. 

  수사기관의 공무원과 조사를 받는 국민과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검찰에서 오랫동안 펼치고 있는 대친절운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운동에서 친절은 언뜻 검찰공무원들이 조사대상자들에게 베푸는 시혜적 조치라는 의미로 이해되곤 하였습니다. 그 원류에는 전제군주제 하의 원님재판에서 원님이 백성들에게 보이는 시혜적 친절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국민주권시대의 오늘날에는 비록 범죄를 저질러 조사를 받는 국민도 주권자입니다. 우리는 헌법과 법률이 준 권한에 따라 주인인 국민을 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사기관의 친절은 시혜적인 것이 아니라 주인에 대한 당연한 예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공감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국민주권에 있어서 주인은 개별 국민이 아니라 개념적 통합체인 국민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저는 법리 논쟁을 벌이려는 것이 아니라 최근 변화되고 있는 수사기관의 친절한 수사행태의 법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긍정적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어 최근의 검찰을 둘러싼 우울한 환경에 신선한 빛을 주는 기분이었습니다. 

  얼마 전 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유권자들이 표로 자신의 주인 됨을 행사하였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우리는 국민주권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이념적으로 확실히 깨닫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의식이 희미해지고 국민주권은 다시 헌법교과서라는 지면의 감옥에 갇히고 말지요.
검찰이 국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여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의 출발은 바로 ‘국민주권’에서 시작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검찰권 역시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임을 매순간 깨달으며 행사할 때 국민에게 다가가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지 않을까요. 

  검찰공무원이 만나는 주권자인 국민은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국민과 같은 국민임에도 수사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서는 당당하기 보다는 위축되고 왜소해지게 됩니다. 그 모습에서 때로 우리는 그들이 주권자임을 잊게 되는 것 아닐까요.이런 점에서 늘 우리는 스스로를 경계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0.6.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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