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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번째 편지 - 두 번째 서른 한 살

 

2019년의 두 번째 주가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 어느 해보다 침착하게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월요편지에서 말씀드린 대로 2019년은 육십갑자를 한 바퀴 다 돌아간 60년 인생을 다시 카운트하는 첫해이기 때문입니다. 금년 1년 내내 여러 가지를 공부하고 심사숙고하여 새로운 육십갑자를 살아갈 방편을 마련하려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지난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십 한 살로 살아간다는 것은 설레기보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육체적으로도 예전 같지 않고 은퇴 시기도 고민하여야 하며 매사 자신감이 떨어지는 때이니 불안한 마음에 걱정이 앞선다. 어떻게 하여야 이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끔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인생이 짐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가 된 기분입니다. 언제 이 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답답해하며 잠에서 깨어 한참을 잠 못 이룬 밤이 꽤 있었습니다. 해답도 없고 탈출구도 없는 그런 답답함이 2019년 벽두에 다시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작년 연말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뜻밖의 충고를 들었습니다. 교감신경은 매우 활성화되어 있는데 부교감신경이 그렇지 않아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여 이런 상태로 오래가면 공황장애가 일어날 수 있다고 걱정하셨습니다. 사실 제가 가벼운 폐소공포증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이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실 검찰을 퇴직하고 변호사를 하던 초기에 하도 불안감이 높아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도 있던 걸로 보아 의사 선생님 말씀이 그다지 새로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 나니 이를 어떻게 해결하나 하는 새로운 불안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명상과 멍때리기를 권하셨습니다.

저로서는 두 가지 불안감이 겹치고 있었습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부조화에서 오는 불안감에 새로운 육십갑자를 어떻게 잘 살아내는가에 대한 불안감이 더해져 2019년 연초가 그다지 편안하지만은 않은 상태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인드 셋을 바꾸어 보자.' 그러면 이 문제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 끝에 잠정적인 해답을 하나 찾았습니다. 실마리는 영화 두 번째 스물과 예능프로 두 번째 서른에서 찾았습니다. 2019년을 저의 [두 번째 서른 한 살]로 생각하기로 한 것입니다. [첫 번째 육십 한 살]이 아닌 [두 번째 서른 한 살] 말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머릿속이 환해졌습니다. 깜깜한 터널 속을 방향도 속도도 모른 채 한참을 달리다가 멀리서 한 줄기 빛을 만나니 바로 온 세상이 환해진 기분이었습니다. 무엇부터 생각할까요?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먼저 저의 첫 번째 서른 한 살을 회상하였습니다. 1990년이었습니다. 저는 7년 차 젊은 검사였고 아내는 28살 5년 차 초보 주부였습니다. 딸은 3살이었고 아들은 태어나기 4년 전이었습니다. 정말 풋풋한 젊은 날이었습니다. 첫 번째 서른 한 살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다음은 서른 한 살부터 마흔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32세에 법무부 송무과 검사가 되었고 33세에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정말 꿈같은 1년을 보냈었지요. 그해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36세에 영덕지청장이라는 작은 청의 책임자로 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해 대검 연구관이 되어 일하다가 38세에 대검 범죄정보과장이라는 보직을 맡아 전체 검찰 차원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대한민국은 IMF 경제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게 되었고 제 나이 39세에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이렇게 간단히 일별하여도 10년의 세월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서른 한살인 2019년부터 두 번째 마흔인 2028년까지도 이 못지않은 변화가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변화가 그렇게 낯설지 않게 여겨집니다. 첫 번째 삼십 대의 변화를 회상해 보아 두 번째 삼십 대의 변화도 예상되기 때문이지요. 그 형식과 내용은 다르지만 변화의 폭과 깊이가 어느 정도라는 것은 이미 살펴보았기 때문에 그리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그다음은 두 번째 서른 한 살부터 마흔까지 이 두 번째 삼십 대를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였습니다. 의외로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두번째 서른 한살은 물론 첫번째 서른 한살보다 체력도 약하고 몸놀림도 둔할 것이다. 즉, 속도도 느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한번 살아보지 않았는가.

자 이제 개미를 생각해보자. 개미는 먹잇감을 물고 자기 집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개미는 직선으로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갈지자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집을 찾아가고 있다. 어떤 때는 먹잇감을 잠시 입에서 내려놓고 다른 것을 집적이기도 하다가 다시 원래의 목적인 먹잇감을 물고 집으로 향한다.

나의 첫 번째 서른 한 살은 이 개미 같았으리라.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기웃거리느라 정작 중요한 것에 시간과 노력을 쏟지 못했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결국 별거 아님을 알게 되지도 않았는가? 이제 두 번째 서른 한 살에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으리라.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알게 되었고, 무엇이 나의 취향에 맞는지도 알게 되었으며 아내와 아이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예전처럼 시간 낭비는 덜하며 살게 되리라. 속도는 예전보다 느려도 방향을 정확하게 아니 더 빨리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저를 둘러싸고 있던 불안감은 사라지고 서른 한 살의 하루하루를 한순간이라도 더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뜁니다. 2019년 1월 14일 오늘은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잘 살 것입니다.

나딘 스테어는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조립니다. "나는 시간 시간을,/ 하루하루를 좀 더 의미 있고 분별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리라./ 아, 나는 이미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런 순간들을 좀 더 많이 가지리라./ 그리고 실제적인 순간들 외의/ 다른 무의미한 시간들을 갖지 않으려 애쓰리라./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대신에/ 오직 이 순간만을 즐기면서 살아가리라."

나딘 스테어는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라고 불가능을 안타깝게 소망하며 이야기하였지만 저는 [내가 두 번째 서른 한 살을 살면서]라고 실제 인생을 하루하루 즐기며 이야기하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1.1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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