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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바보 검찰, 고집 불통 검찰, 아날로그 검찰을 생각해 봅니다. (2008년 11월 3일)

대전지검에서 촬영한 적이 있는 SBS 금요 드라마 <신의 저울>이 16부를 끝으로 종영되었습니다. <신의 저울>은 제가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근무하면서 연수원생들의 일상을 드라마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방송사‧제작사와 교섭하여 연수원의 전폭적 지원 아래 제작된 드라마여서 저로서는 감회가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작가인 유현미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눈 탓인지, 드라마 곳곳에 제 생각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 대사를 중심으로 우리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JD그룹 황보 회장의 비리를 수사 중인 서울지검 특수1부 검사는 각오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합니다.

 

“대검찰청에는 외뿔을 달고 서 있는 해치상이 있습니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부패한 권력을 향해 그 외뿔을 들이받으라는 뜻이죠. 성역 없는 수사로 의혹을 철저히 밝힐 것입니다.”

 

황보 회장을 구속하려는 서울지검 김혁재 특수1부장에게 서울지검장은 구속을 반대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구속에 반대하는 것은 자네 같은 검사가, 아니 솔직히 총장님께서 역풍을 맞으실까 그게 염려돼서야. 법과 원칙도 중요하지만 절차나 과정도 정치적으로 원만하게 풀어야지.”

 

그러나 김혁재 부장은 정치권으로부터 심한 불구속 압력을 받는 검찰총장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저는 단순합니다. 법치국가의 검사이고 싶습니다.”

결국 황보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영장실질심사에서 김 부장은 준엄하게 의견을 개진합니다.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함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정말 그렇습니까? 대기업 회장님과 중국집 배달원이 모두 법 앞에 평등합니까? 음식대금 77만 원을 횡령한 중국집 배달원은 횡령죄로 징역 10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5,0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여 마음대로 쓴 피의자의 죄를 물을 수 없다면 과연 이 나라가 법치국가입니까? 이 나라의 법이 진정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드라마 속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신명의 노주명 변호사는 이렇게 변호합니다.

 

“암탉이 알을 잘 낳게 만들려면 정성껏 보살펴야 합니다. 자꾸 들쑤시고 괴롭히면 알을 잘 낳을 수 있겠습니까? 암탉이 알을 낳으면 누가 먹습니까? 기업이 잘되면 누가 배부릅니까? 우리 국민 모두가 배부른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영장은 발부되고 황보 회장은 구속 기소되었으나 집행유예로 끝나고 서울지검 특수 1부장과 2명의 특수부 검사는 사법연수원 교수로 좌천성 인사발령이 납니다. 정 검사는 여전히 검찰 총괄교수가 된 김혁재 부장을 존경하고 따르지만, 홍 검사는 좌천성 인사에 불만을 품고 김 부장과의 결별을 준비합니다. 두 사람은 연수생들과의 첫인사에서 극명한 대조를 보입니다.

 

“예전에는 사시에 합격하면 돈‧권력‧명예를 다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갔지. 한 가지라도 제대로 얻으려면 최선을 다하시오.”라고 홍 검사는 지극히 현실적 진단을 하는 데 반해 정 검사는 연수생들에게 “앞으로 여러분이 배울 기술은 아주 위험하고 파괴적인 기술입니다. 그것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고 한 가정이 풍비박산하고 기업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 중에는 그 기술을 본인의 성공과 출세만 위해 사용하는 돌팔이 법조인이 단 한 사람도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충고합니다.

 

김 부장은 연수생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울분을 토하며 옷을 벗고 싶다는 정 검사를 향해 “현실이 마음에 안 든다고 옷을 벗어? 한번 검사는 영원한 검사야. 검사는 아무리 어려워도 타협해서도 유혹에 넘어가서도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한편 홍 검사는 김 부장의 아들이자 사법연수원생인 김우빈이 검사를 지망하려 하자 이렇게 조언합니다.

 

“선배로서 충고인데 검사 끝발 사라진 지 오래야. 내가 지금 알고 있는 현실을 10년 전에만 알았어도 검사 안 했어. 차라리 기업에 들어갔지. 세상은 무섭게 변하는데 검찰은 과거에 얽매여 있거든. 이제 어지간한 검사보다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더 힘이 세. 법보다 자본이 더 힘 센 세상 아니냐? 내가 자네라면 로펌을 택할 텐데.”

 

결국 우빈은 검사를 포기하고 로펌 신명을 택합니다. 이 말을 들은 김혁재 부장은 이유를 묻습니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법조인으로서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습니다. 변호사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평가받지 않습니까? 아버지처럼 승진이 되든 말든 사명감으로 사는 정의로운 검사,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검사로 평생을 살 자신이 없습니다.”

 

아들의 대답을 들은 김 부장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아들에게 등을 보이고 속으로 흐느낍니다.

 

한편 신명의 대표 노주명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생인 딸 노세라에게 자신의 초고의 로펌을 운영하는 비결을 설명해 줍니다.

 

“남들은 2년을 앞서 내다보기 때문이다. 내가 점쟁이도 아닌데 무슨 수로 1년을 내다보겠느냐? 아빠는 앉아서 미래를 기다리지 않았어. 내 손으로 직접 미래를 만들었어.”

 

한편 대한은행 해외매각사건으로 코너에 몰린 청와대는 돌파구로 신명과 합작해 김혁재 부장을 중앙수사부장에 컴백시켜 수사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함정이 있었습니다. 김혁재의 아들 김우빈은 사법시험에 합격하던 날 정당방위로 한 여자를 죽게 하였으나 이를 자수하지 못하고 대신 다른 젊은이가 무기징역을 받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신명의 노주명 변호사는 결정적 순간에 이를 김 부장에 대한 무기로 삼으려 한 것입니다. 드디어 신명에 대한 압수수색을 코앞에 둔 시점에 노 변호사는 김 부장을 찾아와 최후의 무기를 사용합니다. 김 부장은 아들과 아내에게 왜 이를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느냐고 안타까워합니다. 그 순간 아내가 절규합니다.

“나는 내 아들이 중요해요. 당신하고 사는 바람에 친구들하고도, 친정 신구들하고도 등지고 내 아들 하나뿐이라고요. 황보 회장 구속하는 데 혈안이 된 당신한테 우빈이가 어떻게 그 사실을 밝혀요.”

 

이 같은 압력에도 김 부장은 신명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고, 우빈의 사건은 만천하에 공개됩니다. 우빈은 기소되고 김 부장은 사표를 내고 맙니다. 그러자 노 변호사는 김 부장을 일컬어 “나이가 들어도 제 생각대로 사는 사람, 즉 미친 놈.”이라고 정의합니다.

 

시간이 흘러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순간 이제 야인으로 돌아간 김부장은 자신이 가르쳤던 아끼는 후배검사가 “특수사건도 중요하지만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가 되고 싶다고 하자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야산에 앉아 비록 쓸쓸하지만 담담한 모습으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은 공평하여야 하지만 법조인의 마음속 저울을 공평해서는 안 돼. 약자를 좀 더 배려야해 그게 실직적인 평등이거든.”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난주 한국검찰은 창설 6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지난날 검찰의 훌륭한 선배들은 바보같이 정의만을 추구하였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고집불통이었으며 아날로그식으로, 가슴으로 수사하였습니다.

 

노주명식 표현대로 ‘미친 놈’ 김혁재 부장처럼 말입니다.

 

저도 그렇게 검사를 출발하였고 언제까지나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너무 영악해져 정의 외에 경제적 고려와 같은 다른 가치도 알게 되었씁니다. 돈이 중요하다고 외쳐대는 노주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적당히 타협하고도 싶어집니다. 가슴으로 수사하기보다 디지털과 머리로만 수사하게 되었습니다. 더 두려운 것은 젊은 후배들도 저와 같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젊은 날의 바보 검찰, 고집불통 검찰, 아날로그 검찰이 그립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가치관이 변하여도 정의를 세우겠다는 우직했던 열정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러분, 검찰인으로 사는 것은 다른 직장인으로 사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삶입니다. 다른 보상이 없어도, 누가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가족마저 우리를 몰라주더라도 우리 스스로 검찰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여야 합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ps: 검찰총장배 테니스대회 우승에 이은 대전검찰 축구팀의 제 1회 검찰 총장배 축구대회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대전지검의 전성시대가 펼쳐진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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