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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고전을 아시나요 (2008년 9월 22일)

올해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가을이 시작되었다는 기분이 들기도 전에 9월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가을 하니 오래 전 학교에 다닐 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독서가가을에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서를 게을리 하니 표어를 정하고 독서를권장한 것 같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오늘은 독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한 달에 책을 몇 권이나 사시나요? 또 산 책 중 몇 권이나 읽으시나요? 의외로 책을 많이 읽는 분도 있을 것이고, 책을 거의 사지도 읽지도 않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책을 제법 사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 책을 다 읽지는 못하고 읽으려고 샀다 손도 대지 못하거나 조금 읽다 그만둔 책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따금 서가에 꽂힌 책을 보며 제 자신의 책 고르는 취향의 얄팍함에 쓴웃음을 짓고는 합니다. 가장 많은 책이 자기계발서입니다. 예를 들면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 앤디 앤드루스의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등과 같은 베스트셀러가 된 자기경영, 자기계발에 관한 서적이 주종을 이룹니다.

 

그런데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책>이라는 책을 쓴 크리스티아네취른트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거대한 산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산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돌진해 오는 거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 중에는 호메로스‧단테‧셰익스피어‧괴테도 있었지만 다른 많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 너는 이 고전의 산에 올라가야 해. 그리고 네가 정상에 도착하면 너는 거인들의 어깨에 서 있는 난장이가 되는 거야.”라고 할아버지의 선생님은 말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산에 오르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 정상에 서니 인류의 문화와 그 문화에 대한 온갖 지식을 내려다볼 수 있었지. 사람들은 성서나 고전을 알고 있었지. 만약 그곳에서 인용한 구절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금방 알았고 그것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지.”

 

서양의 책읽기와 우리나라의 책읽기의 차이가 바로 이것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과 미국 고등학생은 둘 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은 <햄릿> 다이제스트 판(요약본)을 읽어 그 줄거리를 암기할 정도로 잘 알 것입니다. 다만 대사는 마지막에 햄릿이 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만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고등학생은 <햄릿> 원전을 읽고 <햄릿>에 나오는 주옥같은 소네트 형식의 시를 암송하기도 합니다.

 

미국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최소한 고전을 40권정도 읽는다고 합니다. 인류의 소중한 문화자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들이 서로 미국 대학교에서 만나 공부할 때 요약본과 원본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합니다. 이 차이는 상상력과 창의성의 차이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춘향전>도 원본으로 읽으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의 맛과 해학의 멋을 두루 즐길 수 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 <그리스‧로마신화> 만화 읽기가 붐을 이룬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도 다시 그리스‧로마신화>를 완역본으로 읽을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독서하는 법을 쓴 책들을 보면 쉽게 독서하는 ‘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좋다. 여러 권을 동시에 읽어라. 책을 험하게 다루어 메모도 하고 접기도 하라. 속독으로 책 분량의 20%에서 80%의 내용을 파악하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책을 읽어라…. 다 맞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책을 읽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반대의 독서법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가을 단 한 권이라도 소위 우리가 말하는 고전을 택해 끝까지 밑줄을 쳐가면서 정독해보세요. 단 한 권의 고전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생을 마친다면 어찌 우리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법을 전문으로 하는 대전지검 가족 중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읽은 분이 얼마나 될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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