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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번째 편지 - 멋진 송년회 인사말이란?

 

지난주 목요일 행복마루 송년회를 하였습니다. 송년회를 아무리 편하게 하자고 하여도 늘 빠지지 않는 것이 [대표 인사말]입니다. 사실 하는 사람도 쉽지 않고 듣는 사람도 편치 않은 것이 인사말입니다. 외국 사람들 인사말처럼 위트있게 하는 것이 훈련된 것도 아니고 보면 뭔가 의미 있는 말을 하려다가 연설 내지 강의로 빠지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송년회에 걸맞는 멋진 인사말일까요?

송년회 당일 아침부터 내내 고민을 하였습니다. 예전 기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대구지검 차장검사를 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검사장께서는 행사만 다녀오면 어느 분의 스피치에 대해 극찬을 하셨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분의 스피치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어느 날 검사장께서 부재중이라 제가 대신 행사에 참석하게 되어 그분의 스피치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대가 되었습니다. 과연 어떤 내용의 스피치 이길래 검사장께서 그리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지 궁금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보니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내용이 그저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연설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습니다. 참석자들을 유명인사부터 일반 참석자까지 가능한 한 많은 분들의 성명과 직함을 일일이 거명하며 바쁜데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였습니다.

대부분의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는 분들은 예의상 참석자 몇몇을 거명하며 참석해 주신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나 이분은 연설의 70-80%를 참석자들을 거명하며 인사하는데 할애하였습니다. 한명 한명 거명하며 인사를 할 때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거명되는 인사가 여러 명이 되자 짜증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뭐 이리 연설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이런 연설이 뭐 극찬을 받을 연설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에 젖어 들 때쯤 제 이름과 직함이 불렸습니다.

"오늘 대구검사장님을 대신하여 바쁜 가운데에도 조근호 대구지검 차장검사님께서 참석해 주셨습니다. 제가 평소에 만나 뵈니 혁신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이런 분께서 저희 대구 지역을 위해 근무해 주고 계십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짧은 순간에 저의 가슴은 쿵쾅거렸습니다. 대중 앞에서 저에 대한 소회와 감사의 말씀을 하신 것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이 그다음에 무슨 멋진 연설을 하였는지 저는 기억에 없습니다. 그 후 기관장을 여러 군데 하면서 수없이 많은 분들의 인사말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중 어느 하나 제 기억에 남아 있는 연설문은 없습니다. 제 공직생활 30년 동안에 들은 수많은 연설 중에 오직 하나 그분의 연설만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분은 경북지사를 세 번 하신 故 이의근 지사님이십니다.

인간은 이렇게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잠시 자기 이름을 불러주고 덕담을 해준 것만 기억하는 못난 존재인 것입니다. 여러 명이 사진을 찍었을 경우 자기가 잘 나온 사진만 고르게 됩니다. 설령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아들이나 딸이 같이 찍혀 있어도 그들이 잘 나온 사진보다는 내가 잘 나온 사진을 고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 지사님은 이런 인간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시고 연설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에게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대전지검장을 할 때였습니다. 연말에 월요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고생한 직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보낼까 고민하다가 월요편지에 전 직원의 이름을 써서 감사를 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견 이 작업은 매우 쉬운 작업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매우 어려운 작업임을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250명 직원들의 이름을 써 내려가면서 가장 신경 썼던 것은 이름의 정확성이었습니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자기 이름이 잘못 기재되어 있으면 그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입니다. 얼마 전 어느 행사에 참석하였는데 제 자리에 쓰여진 이름표가 [조근우]였습니다. 저는 행사 내내 이것을 어떻게 지적할까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행사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참고 나중에 다른 경로로 이 사실을 알려 드렸습니다. 그 행사에 제가 몰입할 수 있었을까요. 저의 신경은 온통 [조근우]에 있었습니다.

이래서 저는 그해 월요편지를 쓰면서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정확하게 적는 일에 온갖 신경을 썼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이름을 누락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휴직 중인 사람, 해외연수 간 사람까지 일일이 확인해 가며 월요편지를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월요편지에 대해 반응이 가장 뜨거웠습니다.

거의 전 직원이 그 월요편지 이메일을 열람하였고 댓글도 가장 많이 달렸습니다. 그 댓글 중 하나가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검사장님 이번 월요편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의 성함이 누락되어 있더군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누가 누락되었을까? 궁금증은 곧 풀렸습니다. "바로 대전지검의 명장이신 조근호 검사장입니다." 그 댓글이 싫지 않은 것을 보면 저는 그저 한낱 필부일 따름입니다.

이 두 경험을 바탕으로 송년회 인사말은 전 직원의 이름을 불러 주며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마음먹었습니다. 막내 직원인 금년도 공채 직원 5명부터 역순으로 한명 한명 이름을 부르고 그들에 대한 저의 생각을 곁들였습니다. 물론 감사의 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전무로 승진한 이용훈 상무까지 덕담을 하느라 시간은 좀 결렸지만 임직원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 보며 한마디씩 할 수 있었습니다.

굳이 그 인사말에 대한 반응을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표정으로 보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2018년을 회고하며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사말을 하고 송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 송년회보다 모두가 마음대로 즐기는 송년회가 되었습니다. 그저 덕담 같은 인사말은 인사말 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보다 인사말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12.2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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