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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번째 편지 - 드라마 같은 송년회

 

금년도 이제 불과 2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다들 잘 정리하고 계시나요. 금년에도 각종 모임에서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송년회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대규모 송년회는 식사를 하고 상을 주고 몇 사람이 나가 연설을 하고 공연을 보는 그런 패턴입니다. 그런가 하면 소규모 송년회는 저녁을 먹고 노래방을 가서 여흥을 즐기는 그런 패턴입니다.

어느 송년회나 준비하는 측에서는 매번 골머리를 썩지만 참석하는 측에서는 그저 시큰둥한 행사입니다. 주최 측에서는 장소도 바꾸고 식순도 바꾸어 보지만 같은 사람, 같은 방식의 송년회이니 끝날 때쯤 느끼는 감흥은 밋밋합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또는 의무감에 참석합니다.

얼마 전 8명이 모이는 소규모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매년 하던 대로 정해진 수순에 따라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고 술도 한잔 걸쳤습니다. 참석자 중 한 분이 흥을 돋우기 위해 재미난 머리띠를 가지고 오셔서 아이들처럼 머리에 띠를 꽂고 사진을 찍는 등 즐겁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에는 인위적인 냄새가 배어 있었습니다.

제법 술에 취한 상태에서 예정대로 2차를 어느 호텔 바에 붙은 노래방으로 향했습니다. 새로 문을 연 소문난 호텔이라 회원 한 분이 두 달 전에 미리 예약을 하였고 노래방 기계가 있는지 몇 번을 확인하였습니다. 당일에도 전화를 하였더니 여직원이 "노래방 기계를 사용하실 거죠"하는 확답까지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노래방 기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겨 행정당국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영문을 모르는 종업원은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결국 지배인까지 왔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신설 호텔의 경영 미숙에 그 탓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늦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 결국 송년회는 김이 샜습니다.

30여 분 실랑이를 하고 마음을 추스른 일행들은 술을 마시는 데 집중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느 일행이 종업원에게 음악이 전혀 없어 송년회 분위기가 안 나는데 혹시 블루투스 스피커라도 없냐고 물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제법 큰 스피커가 있어 방에 들여다 설치를 하였습니다.

저는 흥분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벅스뮤직에 [내가 슬플 때 듣고 싶은 곡]이라는 타이틀 하에 모아 놓은 곡을 틀었습니다. [The God Father] [Modova] [I'm Your Man] [청춘] 다들 좋다고 하면서도 너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고 한마디씩 합니다. 저는 같은 부류의 음악 한 곡만 더 틀겠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Lydia Gray가 부른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입니다.

일행들에게 추억 하나를 소개하였습니다. 몇 년 전 동갑내기 친구 4명이 가을날 골프를 쳤습니다. 마지막 홀에 도착하였을 때는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빨간색 노란색 단풍이 절정을 이룬 가을 골프장을 터벅터벅 걸으며 문득 음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들은 음악이 바로 이 곡입니다. 친구들 모두 Lydia Gray 목소리에 매료되었습니다. 완벽한 조화였습니다. 골프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송년회 분위기를 띄울 때입니다. 요즘 핫하게 유행하는 퀸입니다. [Bohemian Rhapsody] [Love of my life] [Somebody to love]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s] 퀸의 히트곡을 연달아 틀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음악 감상실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일행 한 사람이 핸드폰에서 가사를 찾아 육성으로 퀸과 함께 노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절로 노래방이 된 것입니다. 그의 천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노래방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퀸과 같이 노래했으니까요. 이렇게 시작하자 너도 나도 18번을 노래하였고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음악에 맞추어 흥겹게 춤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가 기획한 것도 준비한 것도 예상한 것도 아니었지만 모두가 그 자리를 즐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노래방 준비가 안 되었다고 투덜거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노래, 춤, 술. 모두가 대취한 송년회였습니다. 저도 평소에 안 먹는 술을 정말 오랜만에 마셨습니다. 집에 가려 할 때 후배 한 사람이 코트를 남겨 둔 채 미리 가버린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였습니다. 아마도 술이 너무 취해 집에 간다는 말을 미안해서 못하고 간 모양이었습니다. 일행 한 사람이 그의 코트를 챙겨 나와 모두 헤어졌습니다. 그로부터 2시간 후 먼저 간 줄 알았던 후배가 일행 한 사람에게 전화했습니다. "형님, 모두 가 버리시면 어떻게 해요. 저 옆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코트도 없고. 추워요."

오랜만에 송년회 다운 송년회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관객이 아닌 배우가 된 송년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창의성을 발휘한 송년회" "너무 산만하지만 폭발적인 에너지가 넘친 송년회." "패턴을 예측할 수 없는 새로움이 샘솟은 송년회." "옆방에서 자는 일행을 챙기지 못하고 그냥 가버린 송년회" "한평생 기억에 남을 드라마 같은 송년회"

여러분의 송년회는 어떠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12.1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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