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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번째 편지 -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청한 LP판




얼마전 사무실을 옮기면서 사무실 중앙에 카페와 극장을 겸하는 오픈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그 공간에는 영상을 위한 프로젝트 시설을 하고 음악을 위한 오디오 시설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디오 시설을 하면서 이창용 과장이 문득 옛날 LP 판을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을 놓으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어디선가 CD판 보다는 LP판의 음이 사람에게 좋다는 기사도 읽은 기억이 나서 승락을 하였습니다. 공간 하 귀퉁이에 턴테이블이 들어오고 그 기기에 LP판을 걸고 옛날 기분을 내며 음악을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느낌이 전혀 달랐습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음악에 조예가 있는 이 과장이 아이디어 하나를 더 내었습니다. 직원별로 자신이 좋아하는 LP판을 신청하도록 하여 비치하면 어떠냐는 것이었습니다. 업무 속성상 많은 직원이 외근하거나 다른 회사에 파견근무를 하고 있어 어떻게 하면 직원들에게 본사에 대한 애착심을 높여 줄 수 있을까 궁리하던 터라 그 아이디어에 귀가 번쩍 하였습니다.

그날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LP판을 신청하도록 하고 특히 그 LP판에 수록된 곡 중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을 선정한 이유를 써서 내도록 하였습니다.

지난 10월6일 창립 3주년 행사때 이 곡들과 신청 사유가 공개되었습니다. 행사 사회를 본 오경택 차장은 재미를 더하기 위해 10명씩 앉은 세 개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퀴즈식으로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먼저 세 테이블 중 한 테이블에 앉은 분이 신청한 곡을 틀어줍니다. 그 음악을 듣고 나머지 두개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누가 그 음악을 신청하였을까를 맞추는 게임입니다. 물론 맞춘 사람에게는 상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5번의 기회에도 신청자를 못 맞추면 그 음악 신청자가 상품을 받아갑니다. 상상 외로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전혀 그런 음악을 좋아하리라 여겨지지 않는 분이 신청한 곡이 나오면 다들 환호하였습니다. 물론 신청 사유도 같이 공개되었습니다.

몇몇 곡을 신청 사유와 함께 소개합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음악을 신청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오영주 변호사는 “어릴 때 엄마가 자주 틀어주시던 음반이에요.”하며 오페라 ‘성모의 보석’에 나오는 간주곡을 신청하였고, 김경진 대리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가수”라며 김광석을 신청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음악은 감수성이 예민한 중고등학교 때 가장 많이 듣나 봅니다. 중고등학교 때 가장 많은 듣던 음악이라면 신청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박명찬 부장은 이승철의 ‘희야’를 신청하면서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고 하였습니다. 김신호 이사는 들국화 1집을 신청하였습니다. 그는 1집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한국 락의 물줄기를 바꾼 명반입니다. 고등학교 때 즐겨 듣고 따라 부르던 앨범인데 수록된 곡 하나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보통 들국화 하면 전인권 위주로만 부각이 되는데 1집 때는 최성원이나 다른 멤버들의 색깔이 많이 묻어 있어서 다른 앨범에 비해 전체적으로 더 조화롭습니다.”

음악은 힘든 시절을 이겨내는 힘이 들어 있나 봅니다. 자신의 힘든 시절 같이 하였던 곡을 신청해 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시현 연구원은 Brian Hyland이 1962년 불러 힛트한 Sealed with a kiss를 신청하였습니다. 젊은 성연구원이 어떻게 이런 올드팝을 좋아할까 의문이었는데 신청이유를 들으니 수긍이 갔습니다. “군복무 시절 모시던 대대장님이 늘 Sealed with a kiss를 들으셔서 저도 자주 듣다 보니 어느 순간 흥얼거리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들으면 군대 시절 생각납니다.” 아마도 성연구원은 그 노래의 마지막 가사 ‘I'll send you all my dreams every day in a letter(매일마다 편지 속에 내 모든 꿈들을 실어 보내겠어요) / Sealed with a kiss(키스로 봉해서)’ 처럼 젊은 날의 꿈을 매일 상상의 편지에 실어 보내며 그 시절을 이겨냈나 봅니다.

박효진 과장은 Mondo Grosso라는 일본인 아티스트의 곡 ‘1974 Way Home’을 신청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첫 발매는 2000년도 였지만, 제가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가 CPA시험 준비 중이던 2007년 가을 경이었고, 독서실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 곡 들으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곡의 전체적인 느낌이, 아직은 다다르지 못했지만 눈 앞에 고지를 앞둔 그런 다소 지쳐있으면서도 희망적인 느낌이 드는 곡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초반에 잔잔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던 곡이 1분 40초쯤 지나서 드럼이 추가될 때, 드럼이 마치 심장 박동과 같은 느낌을 주는데, 개인적으로 이게 이 곡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오랜만에 돌아가는 집을 목 전에 두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설레이는 느낌이랄까…” 자신의 인생에 이런 곡 한 곡쯤 가지고 있는 것은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창용 과장은 자신이 신청한 노래가 자신의 인생살이와 비슷하다며 멕시코 가수 Tish Hinojosa의 돈데보이 (Donde Voy/ 나는 어디로 가나)를 신청하였습니다. 인생과 노래, 묘한 상관 관계가 있나 봅니다.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를 신청한 사람도 여럿 있었습니다.
박재현 차장은 공일오비 2집에 들어 있는 ‘이젠 안녕’을 신청하면서 이런 이유를 달았습니다. “노래방에서 1분 남았을 때 가장 긴 노래를 신청하라고 해서 많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김지홍 연구원은 신승훈의 1집에 있는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신유미 과장은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를 자신의 18번이라며 신청해주었습니다.

복수로 추천된 뮤지션이 몇 있었습니다. 국내 가수로는 이루마가 3명으로부터, 들국화가 2명으로부터 심수봉이 2명으로부터 신청되었습니다. 외국 뮤지션으로는 Eddie Higgins Trio가 2명으로부터 신청되었습니다.

이런 곳에 재즈가 빠질 수 없지요. 오경택 차장은 Oscar Peterson의 I've Got Rhythm을 신청하면서 재즈 팬 답게 이런 이유를 붙여 주었습니다. “저는 보컬이든 연주자이든 기술적으로 탁월하여 듣는 이를 감탄하게 만드는 음악가를 좋아합니다. 오스카 피터슨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피아노 재즈계의 거장입니다.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 강렬한 스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 Rap & R&B 와 같은 흑인음악을 너무 많이 듣다가 나중에는 흑인 음악의 원류에 관심이 들었고, 이후 재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 20대부터는 재즈를 즐겨 듣고 있습니다. 세부 장르로는 비밥과 하드밥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솔로 부분에서 각 연주자가 뽐내는 기량이 정말 멋지기 때문입니다. 보통 피아노 트리오 (피아노 + 드럼 + 베이스)를 너무 스탠다드 해서 심심한 라인업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 연주를 들어보면 심심함과 정 반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본사에서 저녁에 업무가 많아 야근을 하게 되면, 정말 멋진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직원들의 신청곡을 하나하나 들으며 제가 너무나도 우리 직원들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이런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는데 저는 그들의 외면만 보고 평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 가슴 속에 있는 이 음악적 감성을 끄집어 내는 일 제가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음악과 퀴즈가 있는 3주년 행사는 즐겁게 끝이 났습니다. 우리는 LP판을 틀 때면 이 판을 신청한 직원의 사연을 떠 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의 인생을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는 어떤 음반이 숨겨져 있으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4.10.2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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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에 대해 여러분들이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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