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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번째 편지 - "친구, 왜 그랬는가?"

 

지난주 월요편지에서 [강아지 모임]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모임 정원은 25명입니다. 지난 금요일 부로 24명이 되었습니다. 회원인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유명을 달리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재수 장군 자살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친구로서 그를 이 상황에서 자유롭게 놓아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친구의 영정에 바칩니다.

 

 

 

친구 재수에게.

친구의 군 활약상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난 것은 아마 2017년 봄이었을 거야. [강아지모임] 월례회에서 만난 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지. 나는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이재수 장군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랐지. 장군 하면 가지게 되는 선입견이 있지. 체구가 크거나 그렇지 않으면 눈매가 매섭거나. 그런데 친구는 그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어. 학자 같았지.

처음 만났지만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지. 원래 고위 공직에 오래 있다가 민간에 나오면 어울리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친구의 모습에서는 3성 장군의 흔적은 잘 찾기 어려웠지. 그래서 좋았다네. 첫날만 기무사령관 출신이라는 생각을 했지 그다음에 만날 때부터는 그저 이재수였다네.

우리는 [강아지 모임]의 법칙을 따라 처음부터 반말을 하였지. 아무리 동갑내기라지만 3성 장군 출신에게 반말하는 것은 왠지 편하지 않았는데 친구는 그 불편함을 반말로 잘 없애주더군. 그 후 매달 모임이 있었지. 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식사도 하고 술도 먹고 골프도 치며 우정을 쌓아갔지. 친구는 늘 한결같더군. 늘 밝고 긍정적이고 주위의 친구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었지.

어제 장례식장에서 친구의 육사 37기 동기생 한 사람이 친구를 일컬어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고 하던데 정말 정확한 표현 같아. 한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찬사 중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친구의 삶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친구를 바라보면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은 아닐 거야.

올가을이었나. 친구는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하였지. 검사를 하였던 나로서는 몇 가지 조언을 하였고 친구도 덤덤히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러나 나는 이내 잊어버렸고 시간이 흘렀지. 그러는 사이 모임이 한두 번 있었지만 친구는 그 수사 때문인지 나오질 못했지.

그러다가 11월 18일 친구의 검찰 수사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고 친구들이 위로와 격려의 글을 친구에게 보냈지. 그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었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데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지내놓고 보면 별것 아니더라고."

재수 친구, 별거 아니라고 한 그 친구의 충고를 잊어버렸나. 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한 거야. 나도 친구들의 글을 읽으며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런 글을 썼었지. 친구 생각나는가.

"재수 친구. 힘든 시기를 겪고 있어 뭐라 위로할 말이 없네. 검사 생활 30년 변호사 생활 8년을 하면서 수사를 겪는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지. 두 가지를 깨닫게 되더군. 첫째 다 지나가는 일이라는 것.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속상하지만 결국 다 지나가더군. 둘째 사람의 품격은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평가되더군. 위기를 피하려고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고난에도 자신의 모습을 지켜내는 사람이 있더군. 무엇이 최선인지는 모르겠으나 후자를 존경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심정이 아닐 걸세. 참군인의 기개로 이 과정을 헤쳐나가게나."

이 글에 친구들이 같은 취지의 위로와 격려의 글을 보냈고 재수 친구는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이런 글을 썼었지. "나도 가끔씩 흔들릴 때가 있는데 주위에서 이렇게 확실한 조언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참군인의 길을 택할 것을 다짐하네."

그로부터 얼마 후인 11월 26일 [강아지 모임] 월례회에 친구가 모습을 나타내었지. 회장 친구가 점심이라도 먹고 가라고 강하게 권하여 나왔다고 했지. 그날 친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재수 친구에게 힘을 모아 주었지. 스폰서에게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하는 [강아지 모임]의 건배사를 특별히 친구를 위해 하기도 했지. "재수 재수 만만세."

친구는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내일 검찰 조사 준비를 하여야 한다며 일찍 자리를 떴지. 그것이 친구를 마지막 보는 순간이 될 줄이야. "악수만 하지 말고 힘차게 포옹이라도 하였을걸." "절대로 쓸데없는 마음먹지 말라고 조언이라도 하였을걸." "다 지나가는 일이라는 것 꼭 기억하라고 힘주어 말하였을걸." 이제 와 무슨 소용이겠나 마는 아쉬움이 한 둘이 아니라네.

그리고 12월 3일 친구는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며 "모든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라는 말이 있다"면서 "그게 지금 제 생각"이라고 말했지. 우리 친구들은 "재수,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지. 우리는 이것이 참군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지. 대한민국 사회에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는 한마디를 한 것만으로 충분했었네.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왜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의 마음을 읽어 낼 수가 없다네. 유서 내용은 친구의 고결한 성품처럼 담백하더군. 영장을 기각한 판사의 안위를 걱정하고 검찰에도 미안하다고 쓴 대목에서 어떻게 이런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놀랍기만 하더군.

아마 한평생 군인으로 살면서 늘 죽음을 생각해 오던 친구의 사생관이 투영되었기 때문일 테지. "60평생 잘 살다 갑니다."라는 대목에서는 인생을 초탈한 경지가 느껴지더군.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했던 천상병 시인이 떠오르더군.

친구의 비보를 접하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말을 잊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 알았다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생각을 가다듬고 이런 글을 썼지. 물론 자네는 읽지 못하였지만, 그래서 여기에 적어두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런데 친구인 우리들은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 없었구나. 재수야. 미안하네. 정말 미안하네."

"우리가 이야기한 참군인의 길과 재수 친구가 이해한 참군인의 길이 차이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수백 번 했다네. 너무 부담을 준 것이 아니었는지 그저 힘내라고 다들 응원한 것인데. 너무 안타까워."

어제 장례식장에서 친구의 영정 사진을 보고 가슴이 북받쳐 오르더군. 그래서 유족들에게 한마디 위로의 말도 못 했다네. 이제 편안히 길 떠나시게. 속세의 일들이랑 남은 이들에게 맡겨 두고 훨훨 새가 되어 바람이 되어 마음 편히 가시게. 그런데 훗날 우리가 만나게 될 때, 꼭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준비해 두시게나.

"친구, 왜 그랬는가?"

 

 

 

2018.12.1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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