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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번째 편지 - 배신하는 운전기사, 파트너 같은 운전기사

 저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조선일보 주말판 조선비즈에 ‘조근호의 행복경영’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첫 번째 칼럼을 썼을 때 월요편지 독자 분들에게 칼럼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과 첫번 칼럼 내용을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9월6일 세 번째 칼럼이 게재 되었습니다. 제가 월요편지를 쓸 때는 글을 쓰는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여 단숨에 글을 씁니다. 그래서 수정이 별로 없습니다. 혹시 실수하더라도 월요편지 독자는 기본적으로 ‘조근호’라는 개인을 아시는 분들이라 이해해 주시려니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간지에 실리는 칼럼은 전혀 다르더군요. 혹시 어느 분이 칼럼을 읽고 마음이 상하지나 않으실까 염려되어 여러번 손질을 합니다.

 세 번의 칼럼 중 개인적으로는 이번 칼럼이 가장 신경을 써서 쓴 글입니다. 일간지가 거의 다루지 않은 주제라 도전하는 심정으로 글을 썼습니다. ‘자가용 운전기사와 그가 모시는 사장의 인간관계’에 대한 경영학적 고찰입니다. 칼럼을 못 보신 분들도 있어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몇 분의 반응을 소개할까 합니다.

 제목은 [배신하는 운전기사, 파트너 같은 운전기사] 입니다.





  “(전략) 얼마 전 어느 국회의원의 운전기사가 '불법 정치자금을 신고하겠다'면서 자동차에 있던, 현금 3000만원이 든 가방을 검찰에 넘긴 적이 있었다. 검찰의 비리 수사 때면 심심치 않게 운전기사가 등장한다. 업무 특성상 비밀을 알기 쉬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컨설턴트는 임원의 운전기사를 2년에 한 번씩 바꾸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장수한 운전기사의 이야기도 있다. 김영대 대성그룹 회장과 무려 40년을 같이한 정홍 과장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65세가 되던 2007년, 그는 '네 바퀴의 행복'이라는 자서전을 출간했다. 정 과장은 "처음에는 동갑이라 부담스러웠지만, 함께 출장을 다니며 잠자리까지 챙겨주는 따뜻한 인간미에 감동을 받아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고 회고했다.

 회장과 운전기사의 물리적 거리는 불과 1m이지만, 직급 상 거리는 상당히 멀다. 그들은 어떤 때는 1m 이내의 친밀한 인간관계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직급의 거리보다 훨씬 먼 관계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배신하는 관계로 전락하기도 한다.(중략)

 임원이 운전기사 같이 가까운 사람에게 존경 받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채욱 CJ 부회장은 "진정한 성공이란 가까운 사람에게 존경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검장 시절, 정년 퇴임하는 운전기사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한 적이 있다. "목적지에 가셨을 때 업무가 얼마나 걸리는지 미리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언제 나오실지 몰라 하염 없이 기다리다가 식사 때를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임원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운전기사의 시간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당신은 기다리는 것이 직업이잖아' 하는 일방적 태도는 결국 두 사람의 관계를 악화 시킬 뿐이다.(중략)

 임원과 운전기사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적인 배려'이다. 또한 임원들은 한 걸음 나아가 운전기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여야 한다. 어떤 운전기사는 비서 못지않게 임원의 스케줄을 꿰고 성향도 모조리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수행 비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운전기사들은 이 호칭을 선호한다고 한다. '저는 수행 비서입니다.' 호칭이 바뀌면 정체성이 바뀐다.(중략)

 운전기사만큼 고급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직책도 흔하지 않다. 명문 골프장 기사 실에서 여의도 증권사보다 더 많은 정보가 오간다. 임원으로부터 인정받은 운전기사는 기꺼이 정보 맨이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다른 회사 운전기사들에게 자신이 수행하는 임원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며, 이는 다른 운전기사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임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운전기사 스스로 홍보 맨도 되는 것이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내 기분을 잘 살펴 좀 우울하면 무슨 수를 써서 라도 출근하는 동안 내 기분을 좋게 해주게. 그래야 우리 회사의 하루가 즐거워지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이 과장과 나는 회사를 같이 경영하는 거야." 어느 CEO가 기사에게 했다는 이야기다.”

 추석 연휴 어느 모임에서 몇몇 기업인들과 이 칼럼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분이 “이상적인 내용이지만 운전기사가 어떤 사람 이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라고 문제 제기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경륜이 많은 다른 기업인께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조 대표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운전기사가 어떤 인격의 소유자이냐 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운전기사를 채용하는 과정 자체가 경영의 인사 관리입니다. 적절한 사람을 뽑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CEO에게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뽑은 사람을 어떻게 교육 시키고 관리할 것이냐 도 인사 관리입니다. 운전기사가 CEO를 배신한다면 운전기사의 성품이나 인격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CEO 입장에서 보면 인사 관리라는 경영 문제에 실패한 것입니다. 저는 운전기사에게 종종 강의를 합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보게 나. 운전기사라는 직업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도 있을 거야. 기다리는 것이 지겨울 수도 있지. 그러나 운전기사라는 직업을 그만두지 않을 거 라면 생각을 바꾸어야 하네. 운전기사 만큼 좋은 직업이 없어. 어느 직업이 근무시간 중에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운전기사는 기다리는 동안 책을 볼 수도 있고 외국어 공부도 할 수 있지. 자기 계발이 가능하다는 말일세. 대기하는 동안 책을 읽는 운전기사와 다른 운전기사들과 상사 욕이나 하는 운전기사 10년 후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일세.’ 운전기사에게 직업의 자부심을 길러주는 것 역시 상사의 임무입니다.”

 오랜만에 어느 기업인께서 칼럼을 잘 읽었다며 전화를 주셨습니다. “조 대표, 그 칼럼을 읽고 나니 속이 시원하더군. 나는 24년을 운전기사를 데리고 있었지. 그런데 그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어 버린 거야. 장례식장에 가보니 부인이 앞으로 어떻게 사냐고 서글 피 우는 거야. 가슴이 찡하더군. 내 건물 1층에 국수 집을 내주어 먹고 살게 해주었지. 우리가 직업 상 사장, 운전기사를 나누지만 다 똑 같은 인간이지. 내가 좋은 것 그들도 좋고 내가 싫은 것 그들도 싫다 네.” 가슴이 멍하더군요.

 그런데 반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운전기사는 운전기사일 때 아름다운 법입니다.” 저도 무엇이 정답인지 모릅니다. CEO와 운전기사 두 사람이 만들어 나가는 인간관계는 그 숫자만큼 다양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4.9.11. 조근호 드림

 (추신) 추석 연휴라 쉬시는데 방해 될까 봐. 오늘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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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에 대해 여러분들이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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