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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째 편지-거실의 TV를 꺼 봅시다.


 

 패밀리가 떴다, 무한도전, 1박2일과 같은 리얼리티 쇼. 내조의 여왕, 하얀 거짓말, 선덕여왕 등 연속극. 그리고 웃찾사, 개그콘서트 등 개그 프로그램. 여러분이 다 잘 아시는 프로그램이지요. 이중 매주 빠짐없이 즐겨보시는 프로그램이 있으신가요. 혹시 방영시간을 놓치면 재방송을 보시거나 아니면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아서라도 꼭 보시나요. 그러신다면 여러분도 벌써 TV에 중독되어 있으신 것입니다.

 

 



 제 경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집에는 TV가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있기는 하지만 이미 골방에 처박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었지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케이블 TV를 끊고 Hana TV를 설치하면서 실시간 방송을 보는 것이 불가능해지자(Hana TV는 실시간 방송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보는 TV) 점점 TV 보는 것이 시들해지다가 결국 TV를 거실에서 골방으로 퇴출시켜 버렸습니다. 명색이 검사장이 뉴스도 보아야 할 텐데 TV없이 사는 것이 가능하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제가 지난 1월 19일 대전에서 올라와 북부지검장이 된 이래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어떠냐 구요. 제 사무실에 들어오신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LCD TV를 컴퓨터 모니터로 활용하고 있고 TV는 거의 보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냐 구요. 신문과 인터넷이 그 공백을 메워 줍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삶보다 TV 속의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사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은 이 문제가 더 심각한가 봅니다. 그래서 EBS에서 《TV끄기》라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TV를 끄면 무슨 변화가 생겨났을까요. 휴일 아침 조용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에게 TV 소리 없는 휴일은 너무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가족 모두가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게 할 일을 잊고 방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소파에 드러눕는 아버지, 숙제를 하는 둥 마는 둥 책상에서 심심해 하는 중학생 언니, TV 볼거야를 외치며 울어대는 유치원생 동생 등 혼란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TV가 사라진 하루, 모두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3일이 지나자 제 각기 할 일을 찾습니다.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두 어질러진 집을 치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빠는 신문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들도 엄마와 같이 책을 봅니다. 새로운 놀거리도 생각났습니다. 누나는 학교에서 배운 첼로를 가족 앞에서 연주합니다. 아빠는 아들과 공놀이를 합니다.

TV가 사라진 자리에 가족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종전에는 서로 각자의 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던 가족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함께 놀거리를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드디어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살아난 것입니다.

 




 한국인은 하루 평균 3시간을 TV시청한다고 합니다. 일년이면 한달 반, 평생 동안이면 TV시청에 10년을 낭비하는 셈입니다. 좀 많다고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내 아이를 지키려면 TV를 꺼라』의 저자 고재학씨는 '가족간에 TV를 끄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 지킬 수 있는 가족 선언문을 만든 다음 본격적으로 TV 안보기를 실천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먼저 TV를 거실에서 골방으로 옮기기, 리모컨 없애기, 거실을 도서관으로 꾸미기 등과 같은 구체적 실천방법을 제시하면서 막연한 생각만으로 TV 끄기를 시작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며 반드시 TV 보기를 대체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예로 아이들과 서점 가기, 바둑·장기·체스 등 취미생활 함께하기, 전시회나 연주회에 참여하기,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정기적으로 봉사활동하기 등을 제시하였습니다. 여러분 TV끄기에 좀 자신이 생기셨나요.

저희 집에서는 TV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가족간에 대화하는 시간이 늘고 서로 같이 책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업무상 필요하다는 이유로 거실에다 TV가 빠진 자리에 컴퓨터를 설치하고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인터넷을 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더니 이제는 퇴근하면 무조건 인터넷을 켜고 1-2시간을 인터넷과 씨름합니다. 수동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TV시청보다 인터넷 서핑이 능동적으로 정보를 수집한다는 점에서 다소 나은 행위이기는 하나 '가족'을 실종시킨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가 지난 5월 1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였습니다. 그는 졸업생 6천명에게 '컴퓨터도 끄고 휴대폰도 꺼라. 주위의 인간적인 것들을 발견하라. 손자가 첫걸음을 뗄 때 할아버지가 그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다.'고 조언하였습니다. 정말 가슴에 와 닿는 말입니다. 구글의 CEO가 인터넷을 끄고 인간을 만나 소통하라고 한 것은 진리가 담긴 역발상입니다.

 

저도 이제 거실의 인터넷을 끄렵니다. 부득불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예를 들면 월요편지를 써야 한다든지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터넷에서 벗어나 가족 속으로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어제로 가정의 달 5월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분 모두 지난 달 '가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가족과 멋진 외식도 좋겠지만 '가족' 회복을 위해 6월 한달 만이라도 여러분 거실의 TV를 꺼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09.6.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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