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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번째 편지 - We are the '강아지' my friends

 

제가 속한 모임 중에 [강아지 모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 눈치채셨나요. 1958년생 개띠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나 일부 저같이 개띠가 아닌 사람들도 있습니다. 58 개띠들은 대학교를 1977년도에 입학했습니다. 그래서 통칭 사회에서 77학번 58개띠라고 부릅니다. 이 모임은 77학번인 58개띠와 59 돼지띠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나 개띠가 워낙 많아 이름을 강아지라고 붙였습니다. 언제까지나 개가 되지 말고 강아지처럼 철나지 말고 살자는 뜻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58개띠들이 갖는 특별한 함의가 있습니다. 고교입시가 없어져 소위 뺑뺑이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출생자 수도 90만 명이나 됩니다. 이 세대는 대한민국을 바꾸어 왔습니다. 제가 속한 법조계도 사법시험 300명 시대를 연 것은 바로 58 개띠가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 치던 사법시험 때부터였습니다. [58 개띠]라는 제목의 시집, 무용작품, 다큐 영화도 있고, [왜 '57 닭띠'도 '59 돼지띠'도 아닌 '58 개띠'인가]라는 칼럼도 있을 정도입니다.

평생을 서로 경쟁하며 살아서인지 뛰어난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친구 25명이 모였습니다. 제 입장에서 볼 때 이 모임을 통해 처음 만나는 친구들도 꽤 있습니다. 그전에 수인사만 한 친구들도 있고요. 아무튼 같은 동년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잘 모르는 사람들 25명이 모였습니다. 그중에는 이런저런 계기로 만나 서로 존댓말을 하며 지내는 분들도 몇 분 있었습니다.

몇몇이 모여 이 모임을 결성하기로 하였을 때 제가 한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우리 서로 반말하자. 이것을 이 모임 규칙으로 정하자. 이 모임에 들어오려면 이 규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지." 다들 동의해 주었습니다. 그다음부터 이 모임은 늘 '야자타임'입니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습니다. 사회에서 존댓말 하는 사이인데 이 모임에서 반말을 하려니 이상했습니다. 모임에서는 반말을 하고 다시 핸드폰 통화할 때는 반 존대를 합니다. 적어도 모이는 그 순간만큼은 여지없이 반말을 합니다. 안 할 수 없는 것이 서로 직함을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니 누구 혼자서 점잖게 직함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얼마 전 강아지 모임에서 골프 모임이 있었습니다. 동반자 세 사람은 처음 같이 운동을 하는 사이입니다. 당연히 반말입니다. 반말이 이리 대단한 효과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마치 초등학교 때부터 알았던 사이 같았습니다. 농담하고 웃고 떠들고 낄낄거리고 이들이 어찌 처음 운동하는 사이라 할 수 있을까요. 반말은 세월을 응축시키는 대단한 힘이 있나 봅니다.

이 모임에는 특별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명식'을 종신 회장으로 추대하였습니다. '명식'은 몇 년째 암 투병 중입니다. 그에게 친구 모두 응원하는 뜻에서 이 모임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가 힘나야 우리도 힘나기 때문이지요. 이 모임이 건강하게 잘 커가기 위해 우리 강아지들은 악착같이 그가 건강하기를 기원할 것입니다.

이 모임에는 특별한 건배사가 있습니다. '상웅'이 만든 것입니다. 모임을 스폰 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경의 마음을 담은 건배사입니다. 사실 모임이 진행되면 누가 스폰 하는지 모를 때가 많지요. 그래서 '상웅'이 창안 한 것입니다. 요령은 이렇습니다. "상웅 상웅 만만세"입니다. '상웅'은 건배사 하나로 강아지 모임 내 입지를 확실히 굳혔습니다. 우리는 그를 CTO (Chief toast officer, 최고 건배 책임자)라고 부릅니다.

이 모임에는 비공식 구호가 있습니다. "우리는 늦게 만났으니 자주 만나자."입니다. '재훈'이 한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이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친구인 줄 알았으면 미리 만났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 아쉬움을 날려버리는 말입니다. 사실 친한 친구들도 1년에 한 두번 만나고 사는 것이 요즘 세태입니다. 우리는 한 달에 한번 만나고 그것도 모라자 번개합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은퇴한 친구들도 여럿입니다. 형편이 어떤지 따지지 않습니다. 형편이 넉넉한 친구가 밥 한 끼 사면 되니까요.

60세를 살다 보니 좋은 일 궂은일 섞여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할 것입니다. 누구는 암 투병 중이고 누구는 수사를 받고 그런가 하면 누구는 표창을 받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반말하는 사인인데. 얼마 전 정기 모임에서 좋은 일이 있는 친구에게는 축하를, 궂은일이 있는 친구에게는 격려를 팍팍 밀어주었습니다. 우리의 우정은 한번 만날 때마다 1년씩 쌓이는 것 같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처럼 농익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철 안 난 강아지처럼 늘 멍멍하고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 강아지들 중에도 의젓한 철난 강아지도 있습니다. '상래'가 그런 친구입니다. 11월 월례모임에서 점잖게 "내가 한마디 해도 될까"하고 운을 뗐습니다. "육십이 되고 보니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 생각하게 되더군. 내가 찾은 것은 '감사'야. 모든 일에 감사하려고 해. 이렇게 건강하게 사는 것, 친구들 만나 이렇게 떠들 수 있는 것. 모든 것이 감사 투성이지. 그런 의미에서 시 한 수 낭송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모두 큰 소리로 예스를 외쳤습니다.

"제목 [감사], 지은이 노천명. 저 푸른 하늘과/ 태양을 볼 수 있고/ 대기를 마시며/ 내가 자유롭게 산보를 할 수 있는 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이것만으로 나는 신에게 감사할 수 있다"

모두 와우를 외쳤습니다. '상래'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모임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 말을 안 해도 그저 편안합니다. 이 친구들 중에는 대단한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이름이 반말로 불리는 경험을 한 것이 까마득할 것입니다. 저도 누가 "근호야"라고 부르는 것을 경험한 지 오래됩니다. 친한 고교 친구들도 예의상 "조 대표" 또는 "조변"이라고 부르지요. 대기업에서 고위 임원을 하고 있는 '은연'이 모임에 처음 나온 날 한 말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아무 이해관계없이 편하게 웃어 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사실 반말은 하지만 아직 서먹서먹한 친구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2019년 동안 12번 만나면 12년 지기 친구들이 될 것입니다. 2019년 신년회는 조그마한 영화관을 빌려 보헤미안 랩소디를 떼창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그 세대니까요. 퀸의 수많은 곡 중에 우리는 아마도 [We are the champions]을 가장 소리 높여 부를 것입니다. 그 가사 중 이 대목에서 우리는 울컥할 것입니다.

"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 / And we′ll keep on fighting till the end" 그렇습니다. 우리는 강아지 친구들입니다. 우린 죽을 때까지 반말하며 우정을 나눌 것입니다. 강아지 모임이 우리 중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계속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We are the '강아지' my friends.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12.3.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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