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58번째 편지 - 차마고도에서 깨달은 것들

차마고도에서 깨달은 것들

 여름 휴가들 다녀오셨나요. 저는 지난 8월13일부터 17일까지 가족들을 데리고 여름휴가차 중국의 차마고도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철구 여행사의 이철구 대표가 8월 중순의 차마고도가 너무 아름답다고 유혹하여 따라 나선 것입니다. 보통 때 같으면 사전에 공부를 하였을 텐데 이번에는 모든 것을 이 대표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떠난 여행은 공부한 것을 확인하는데 급급하였을 뿐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데는 소홀하였던 터라 이번에는 물 흐르는 대로 가기로 한 것입니다.

 8월13일 오전 8시40분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11명의 일행들은 중국 광둥성 광저우 시를 거쳐 목적지인 운남성 리장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한 날 밤과 다음날은 리장에서 관광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관심은 차마고도였습니다. 드디어 3일째 우리는 차마고도 트래킹에 나섰습니다.

 이철구 대표의 설명입니다.

 “차마고도란 중국의 서남부인 운남성(云南省 윈난성)에서 티베트을 거쳐 네팔, 인도에 이르는 약 5,000킬로미터의 고대 상업도로로 운남성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교환된다하여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운남성은 예로부터 차를 가공 운송 저장하는데 탁월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채소 부족으로 비타민이 필요한 티베트족에게 운남성 차는 약이었습니다. 반대로 중국에서는 북방민족에 대항하기 위해 티베트 지역의 말이 필요 하였습니다. 차마고도는 평지가 아닌 고산지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운남성에는 히밀라야 산맥의 일부인 옥룡설산(玉龍雪山 위룽쉐산, 해발 5,596미터)과 합파설산(哈巴雪山 하바쉐산, 5,396미터)이 있습니다. 옥룡설산은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옥항상제의 벌을 받아 갇혀 있던 바로 그 산입니다. 이 두 설산 사이로 높이 2,000미터 길이 16킬로미터의 협곡이 형성되고 이 협곡에 장강(長江 양쯔강)의 상류인 금사강(金沙江 진사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협곡이 운남성에서 티베트로 가는 차마고도의 한 부분을 형성합니다. 그 협곡 중 가장 폭이 좁은 지역은 약 30미터 정도 되는데 이 지역을 호도협(虎跳峽 후탸오샤)이라고 부릅니다. 호랑이가 뛰어 건넌 협곡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중간에는 호랑이가 디디고 강을 건너 갔다는 돌멩이가 강물 위로 솟아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의 허풍이 만든 명칭이지요. 우리는 차마고도를 따라 호도협 지역을 해발 4,000미터까지 올라갑니다. 그냥 가기는 힘이 들어 말을 타고 갈 것입니다. 오른쪽에는 수백미터 낭떠러지가 있는 폭 2-3미터의 산길을 말을 타고 가는 것은 대단한 스릴입니다. 코 끝이 시큰시큰해집니다. 그러나 안전하니 걱정 마십시오.”

 우리는 차마고도 입구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봉고차에 옮겨 탔습니다. 산길이 좁아 큰 버스가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0미터쯤 앞으로 진행하였을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산사태가 나서 길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말이 기다리는 지점까지 걸어갔습니다. 시작부터 난항이었습니다. 15분을 걸어 땀이 날 무렵 말과 마부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옛날 마방(馬幇 상인 조직)들이 타고 차마고도를 넘었다는 그 조랑말들을 우리가 타는 것입니다. 평소 말을 좀 타본 저로서는 오히려 말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이 대표에게 가장 온순한 말과 노련한 마부를 붙여 달라고 특별 주문 하였습니다. 그 주문에 따라 마부 대장을 저에게 붙여 주었습니다. 자! 이에 출발입니다. 그런데 제 바로 뒤에서 있던 여자 건축사 선생님이 “저는 마부가 없는데 어떡해요.”라고 겁에 질려 외마디를 질렀습니다. 일행이 많아 마부가 부족한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 보니 두마리를 끄는 마부도 있기에 제 말을 끄는 마부대장에게 손짓으로 저와 건축사 선생님 말을 같이 끌어 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마부는 이 부탁을 오해하여 결국 그 건축사 선생님 말만 끌고 저는 혼자 말을 타게 되었습니다. 황당한 상황이 초래된 것입니다. 그러나 뭐 어떠랴 싶어 출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길은 좁지만 낭떠러지가 아니라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5분이 채 못지나 오른 쪽에 천길 낭떠러지가 나타났고 저는 목숨을 지능 5살박이 조랑말에 맡기고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길은 말똥과 비로 뒤 범벅이 되어 미끄럽기 짝이 없었고 군데군데 돌들이 삐죽삐죽 드러나 있어 혹시나 말이 저 돌멩이를 잘못 밟아 미끌어지기라도 하면 수백미터 아래로 떨어질 판입니다. 겁이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 내색할 수도 없고 표정만 굳어갔습니다. 말을 4년이나 탄 아들 녀석이 뒤를 돌아보며 “아빠, 허리를 펴세요”라고 코치를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르막이 나타났습니다. 말이 올라가려고 힘을 주니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기우뚱 합니다. 말 안장의 손잡이를 꽉 쥐었습니다. 뭐가 문제인지 자꾸 말이 낭떠러지 쪽으로 붙습니다. 보다 못한 다른 마부가 저에게 오른쪽으로 더 기울여 앉으라고 신호를 합니다. 아마도 겁이나 몸이 자꾸 산 쪽인 왼쪽으로 기울었나 봅니다. 그제서야 아들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말은 체중을 싣는 반대쪽으로 움직여요. 왼쪽으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체중을 실어야 해요.” 그런데 저는 무서워 자꾸 산 쪽인 왼쪽으로 체중을 실으니 이 놈이 오른쪽으로 간 모양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점심을 먹기로 한 니시 객잔(Naxi family guest house)에 도착하였습니다. 하도 손에 힘을 주어 팔이 얼얼합니다. 점심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어안이 벙벙합니다.

 원래 이철구 대표의 계획은 점심을 먹고 봉고 차로 협곡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차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와 차마 객잔에서 하프웨이 객잔까지 평탄한 산 길을 1시간 반 가량 트래킹 하는 것이었나 봅니다.

 이 계획에 일행중 한 분이신 70세의 노교수께서 반기를 드셨습니다. “차마고도 여행을 온 것은 니시 객잔에서 차마 객잔까지 사이에 있는 28밴드를 트레킹 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건너 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는 것이었습니다. 28밴드를 알지 못하는 저는 이 논란의 의미를 몰랐지만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28밴드는 차마고도 트래킹의 하이라이트로 정상까지 28번 구비가 있는 길입니다. 누군가는 죽음의 코스라고도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28밴드를 가지 않는 것은 앙꼬 빠진 진빵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들 수긍을 하였고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높으신 분들이 몇 분 계셔 28밴드를 말을 타고 넘을 분들은 그렇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저희 가족 중에 저를 빼고 모두 말을 선택하였습니다. 결국 저와 노교수 부부, 세 사람만 걷고 나머지 분들은 말을 탔습니다. 말을 타지 않고 걷기 시작하니 이리 편할 수 없습니다. 천길 낭떠러지는 여전하였지만 마음 상태는 천양지차 입니다. 말을 탈 때는 무게 중심이 높아서 인지 마음이 불안하고 떨어질까 두려웠지만 말에서 내려 서고 나니 이리 마음이 편할 수 없습니다. 의외로 28밴드는 걸을 만 했습니다. 다리가 아픈 것이 마음이 불안한 것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말을 탄 분들도 28밴드 정상에서는 내려 같이 야생화가 지천으로 뿌려진 산길을 걸어 차마 객잔에 도착하였습니다. 서로 서로 수고하였다는 인사를 하였고 그 인사에 진심이 묻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차마 객잔에서 봉고차를 타고 하프웨이 객잔까지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차마고도의 밤을 맞이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7시 다시 트레킹을 시작하였습니다. 관음폭포가 있는 곳까지 왕복 1시간반 거리를 아침 식사 전에 걷는 것입니다. 여전히 오른쪽은 낭떠러지입니다. 밤새 비가 더 뿌려 길이 미끌미끌하였습니다. 평탄한 길이지만 돌멩이들이 많아 더 위험 하였습니다. 특히 관음폭포 밑을 지날 때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에 미끌어지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안개가 발목까지 끼어 오른쪽 편의 낭떠러지가 보이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 이 길의 아름다움을 잘 아는 이철구 대표는 무척 아쉬워 했지만 저로서는 그리 마음이 편할 수 없었습니다. 안개 때문에 협곡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차마고도 트레킹은 끝이 났습니다. 다시 리장으로 내려와 남은 관광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차마고도를 걸으면서 두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첫째 고위 공직이나 말 등이나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기도 하지만 높아서 불안한 면이 많이 있었는데 내려서 자세를 낮추고 나니 이리 편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둘째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 주위에 있는 위험을 가려주는 안개 같은 것이 있으면 담대 하게 앞만 보고 갈 수 있을 텐데 쓸데없이 주위의 위험에 마음을 빼앗겨 불안해 하는 통에 더 위험해 지고 만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4.8.18. 조근호 드림

 

 

 

  

 

 

<광고>

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에 대해 여러분들이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