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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번째 편지 -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가기’ 첫번째 이야기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가기’ 첫번째 이야기

 5월1일 아침 8시반 친구 윤건백과 저는 약속한 대로 팔당댐에서 남한강 상류쪽으로 좀 더 올라 간 이포교에서 만났습니다. 윤건백의 부인과 둘째 아들이 응원을 나왔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독립운동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각오가 비장하였지만 우리를 떠나 보내는 가족들은 걱정이 태산인 모양입니다. 지금의 모양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면 어딘가 기부스를 한 모습으로 차에 실려 오지나 않을까? 자못 걱정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인근 식당에서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하고 우리는 출발을 하였습니다.

  며칠 동안 자전거를 타고 안 일이지만 자전거를 탈 때 가장 귀찮은 일이 자전거에 올라타는 일입니다. 반대로 가장 편안한 순간은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저을 때입니다. 시작하자마자 언덕이 나옵니다. 자전거 족들에게 2대 강적, 오르막과 맞바람 중 하나가 나타난 것입니다. 기어변속을 잘못하여 헛바퀴가 돌기 시작합니다. 걱정이 되어 자전거에서 내려 섰습니다. 처음부터 창피를 무릅쓰고 ‘끌바’(‘끌다. 바이크’의 준말로 바이크 족들 사이에서 수치의 대명사랍니다.)를 하였습니다. 친구는 저 멀리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머나먼 여정을 가야 합니다. 뒤에서 보급부대로 밴이 따라오고 동행하는 든든한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누구도 저 대신 페달을 저어주지 못합니다. 저 스스로 페달을 저어 부산까지 가야 하는 무모한 도전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달리기 시작하니 그런대로 자세가 잡힙니다. 시속 20에서 25킬로미터까지 달리기도 합니다. 50여분을 달려 처음 도착한 곳은 여주보입니다. 4대강 사업을 하며 이런 보를 강마다 여러군데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첫 번째 보가 여주보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인증수첩을 샀습니다. 4대강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들어진 이후 4대강을 비롯한 자전거 길 군데군데에 인증센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전거 족들의 도전의식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인 모양입니다. 인증수첩에는 구간별 약도를 그려 놓고 각 인증센터에서 스탬프를 찍을 수 있게 빈 공간을 두었습니다. 

 

 여주보에서 만난 관리실 아저씨는 인심 좋게 생기신 분이었습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자진하여 이곳이 포토 존이라며 위치를 정해 주며 사진도 찍어 주었습니다. 보너스로 보통 커플들이 왔을 때 해주는 이벤트라면서 여주보라고 새겨진 돌판의 ‘주’자에 ‘사랑해’라고 쓴 하트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주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보니 ‘여주보’ 돌판이 ‘여보 사랑해’로 바뀌었습니다. 그분의 강권에 이 돌판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아내에게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자전거를 탄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첫 번째 보까지의 장정(?)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목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제 좀 여유가 생겨 강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엄청난 논란이 있었고 그 사업을 둘러싸고 수사도 이루어져 많은 사람이 구속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4대강 사업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어 무엇을 해 놓았는지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한강을 거슬러 자전거 여행을 해보니 4대강 사업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4대강 사업의 본질은 아마도 그냥 흘러 내려가는 강물을 담아두기 위해 강 중간 중간에 보를 만들어 작은 저수지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주변을 정리할 수 밖에 없었고 자전거 도로도 그렇게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4대강 사업의 최대 수혜자는 자전거 족들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웠던 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실 한강 둔치, 그것도 잠실에서 여의도 정도까지 밖에 잘 모릅니다. 아이들이 다 커버려 굳이 한강시민공원에 갈 일도 없어 예전 생각으로 놀러간다 하면 도시 내의 공원을 연상하기 마련이었습니다. 서울대공원, 롯데월드, 에버랜드 등등이 우리가 아는 놀이터였습니다. 그러나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면서 우리나라 레저 문화의 중심 축이 강변으로 옮겨지고 있고 앞으로 그 현상은 가속화 될 것이 분명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넓은 땅, 탁트인 시야, 시원한 강바람, 요트를 띄워도 충분한 수량, 아름다운 꽃들로 정리된 강변 정원, 캠핑장, 자전거도로 등등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강변이야말로 우리 국민들 레저산업의 보고임이 분명하였습니다. 초보 자전거 여행자이지만 마음만은 벌써 레저문화 전문가 수준을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이때 뒤에서 뭐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근호야. 기어 변속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렇게 하면 힘만 들고 속도가 나지 않아. 큰 기어를 첫 번째에 놓고 뒷바퀴 기어를 7단이나 8단에서 바꾸어 봐. 그렇게 하면 약간 빡빡한 느낌이 드는 지점이 있을 거야. 그곳이 너의 최적 지점이지 그곳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하나씩 전체 3개 정도의 기어를 쓰는 것이 좋지.” 친구 건백이의 걱정 어린 잔소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워낙 성격이 자상한 친구라 제가 헛힘을 쓰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 한마디 한 것입니다. 이런 친구의 보살핌이 없었으면 저는 부산까지 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에게 그런 우정을 보일 수 있을까? 그 친구는 평생을 저에게 친구이기보다는 늘 후원자로 보호자로 저를 지켜보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산까지 가보겠다는 무모한 도전을 선언했을 때 아무런 주저함이 없이 가족을 6일간 내 팽겨치고(?) 저를 따라 나선 그입니다.

 우리는 20분에서 30분 사이에 한 번씩 쉬었습니다. 물도 마시고 호흡도 가다듬었습니다. 다음 목표인 ‘강천보’에 도착한 것은 11시입니다. ‘강천보’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앞으로 이런 처음 들어 보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익숙한 지명도 있지만 이번 4대강 사업 때문에 유명해진 지역 이름들이 있습니다. ‘강천보’도 그중 하나 일 것 같습니다. 여주보와 강천보를 보고 나니 건설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보를 아름답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을 가로질러 물을 관리 하는 보와 보의 수문을 관리하는 다리 자체가 아름다운 거대한 예술품이었습니다. 강천보를 떠나 자전거를 잠시 타니 강천섬에 접어들었습니다. 아하! 강천보란 강천섬에서 그 명칭을 따 온 모양입니다. 저는 남한강에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우리가 외국을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잔디밭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바베큐를 해먹는 모습을 보고 이 나라들은 어떻게 하여 이런 복을 받았나 부러워 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대한민국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대한민국 강변이 이토록 아름답게 바뀐 것인가요. 어느 것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대한민국이 정말로 노래말 처럼 ‘아름다운 강산’ 이라는 것입니다. 4대 강변이라는 새로운 국토를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 국토는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질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 아름다운 강천섬에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고즈넉한 강천섬, 저는 이곳에서 눈길과 발길을 다 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달려야 합니다. 여정이 아직도 까마득히 남았으니까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탑니다. 이 순간이 가장 어색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몇번 비틀거리다가 곧바로 자세를 잡았습니다. 다시 달립니다. 보급차량과 만나기로 한 비내섬까지 가야합니다. 그런데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 출발한 이래 처음 힘에 겨움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몇 킬로 남았는데 기운이 다 떨어져 갑니다. 억지로 페달을 밟습니다. 머리 속에 학창시절 외웠던 노산 이은상님의 시 귀절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수는 없다.”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드디어 비내섬 인증센터 1킬로미터 전방이라는 팻말이 보입니다. 마지막 스퍼트를 냅니다. 가자! 가자! 드디어 도착하였습니다. 비내섬 인증센터. 비내섬이라는 지명도 처음 들어 봅니다. 우리는 보급 차량에 자전거를 싣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이렇게 첫날 반나절이 지나갔습니다. 시각은 오후 2시. 출발 시각으로부터 거의 5시간이 지났습니다. 아마도 자전거를 탄 시간은 4시간은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잘 버텼습니다.

 

 

 

 

 이야기는 다음주에 계속 됩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4.5.13. 조근호 드림

 

(방송 안내)

 작년 4월15일부터 1년 넘게 매주 월요일 10시부터 11시까지 방송되는 극동방송(AM 1188 또는 FM 106.9) ‘사랑의 뜰안’ 프로그램에 조근호 변호사의 월요편지 코너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번에 제 스스로 방송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동안 응원해 주신 시청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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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에 대해 여러분들이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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