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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번째 편지 - 다시 읽은 '어느 구도자의 일기'

 

"여보 내 이야기가 신문에 나왔네요. 실명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내 이야기에요." 저는 아내에게 지난주 토요일 그러니까 10월 27일 자 조선일보 B1에 난 [김형석의 100세 일기] '도지사의 첫사랑' 편을 가리켰습니다. 그 글의 첫 대목은 이러하였습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이었다. 좀 일찍 강연 장소에 도착하였다. 몇 사람이 와서 내 책에 사인을 부탁했다. 50대 후반쯤 보이는 이가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펴 보이며 '일기문의 주인공이 혹시 교수님 자신이 아니시냐'고 물었다. 자주 듣는 독자들의 질문이다."

그 글에 나오는 '50대 후반쯤 보이는 이'가 바로 저였습니다. 공부 모임에서 특강 강사로 어느 분을 모시면 좋을까 상의하기에 김형석 교수님이 어떠냐고 추천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추천이 현실이 되어 지난 10월 15일 김형석 교수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강의를 들으러 가면서 김 교수님의 어떤 책에 사인을 받을까 고민하였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최근 출판한 서적에 사인을 받는 것이 마땅할 테지만 저는 '영원과 사랑의 대화'라는 교수님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를 골랐습니다. 대학교 1학년 자유롭게 책을 남독하던 시절,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에 밤을 꼬박 지새웠습니다. "아하 이런 사랑도 있구나." 그때의 진한 감동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합니다. 바로 그 책이 김형석 교수님이 1961년에 쓰신 [영원과 사랑의 대화]입니다.

그 책 중에서도 제 가슴을 적신 부분은 책 말미에 있는 [어느 구도자의 일기]였습니다. 약 80페이지의 이 글은 독립된 책처럼 느껴질 정도로 나머지 글과 달랐습니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S씨가 김 교수님에게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자신은 공부를 하러 9년 이상의 계획으로 외국으로 간다며 자신의 일기장을 맡아 달라고 합니다.

"보관해 두셔도 좋고 읽어보셔도 무방합니다. 또 내 손으로 불사르지 못한 것이니까 그 언젠가는 재와 연기로 날려 버려도 상관없습니다." 김 교수님은 그 일기를 읽다가 내용에 매료되어 그 일기를 자신의 수필집에 [어느 구도자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따로 추려 수록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영원과 사랑의 대화] 책 말미에 수록된 것입니다.

1977년 읽은 그 책은 세월과 함께 실물은 사라지고 추억만 가슴에 깊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작년 어느 날 김영사의 고세규 사장님께서 김영사가 출간한 책 몇 권을 보내주셨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영원과 사랑의 대화]였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저는 바로 추억 속에 가라앉아 있던 [어느 구도자의 일기]를 펼쳤습니다.

 

 

 

신을 향한 사랑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며 공부하고 있던 S씨 앞에 한 떨기 백합 같은 K양이 운명처럼 나타났습니다. 운명은 그들을 몇 번의 만남으로 이끌고 그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서로에게 다가갑니다. S는 K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합니다. 그는 그 심정을 일기에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람은 비밀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 비밀은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얘기하고 싶어 감추어 두는 것이 아닐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란 그 앞에서는 아무 비밀도 지킬 필요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오늘 나는 비밀 아닌 비밀을 K양에게 얘기 하고 싶은 심정에 이끌려 간 모양이다. 어느새 K양은 내 마음의 벗이 되었다."

그들의 만남은 그저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고 걷는 것이 전부였다. 어디로 걸을까 하고 묻는 S에게 K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느 쪽이든 괜찮아요. 선생님과 같이 걷는 것이 오늘의 목적이었어요." K는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저 어젯밤 꿈에 선생님과 같이 비를 맞으며 걷는 꿈을 꾸었어요." 사랑은 그저 같이 걷는 것이 목적이 되는 그런 마음의 열병인가 봅니다.

신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한 S는 K와의 사랑 앞에서 갈등합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나름대로 의미 부여합니다. "우리 사이, 둘 사이의 애정이 어떤 것이라도 좋다. 모든 애정은 자연적인 것에서부터 높고 귀한 사랑으로 순화되어야 한다. 그 순화된 결과를 지금은 묻지 않아도 된다. '사랑의 순화', 그것은 우리들의 정신적 의무일 테니까."

요즘 젊은이의 잣대로 보면 케케묵은 고리타분한 사랑 타령일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렇게 사랑했고 그런 사랑 이야기에 가슴을 적셨습니다. 어쩌면 이런 사랑이 더 애틋한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그들은 서로의 팔이 거의 맞닿을 정도였고 미소를 머금은 입술이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S는 마음속으로 K를 안고 싶은 자신을 경계하고 자제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K가 아파 병원에 입원합니다. 병약해진 그녀의 몸을 앞에 두고 S의 자제력이 무너집니다. "나는 K양의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K양은 이불 밑에서 약간 여위어 보이는 손을 꺼내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조심스레 K양의 손 위에 오른손을 얹으며 가볍게, 그러나 깊은 정성으로 쥐여주었다. 또 다른 손도 합하여 K양의 손을 폭 싸안았다. '고생이 많군요. 다시는 앓지 마요.'"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저 서로 응시만 하였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극도로 느리게 느리게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루한 사랑에 독자들은 더 깊이 공감하며 끌려들어갔었습니다. 저도 그런 독자들 중 한사람이었구요. 그는 손을 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를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 같다'는 K의 표현대로 키스를 합니다.

이 키스는 또 다른 입맞춤으로 이어집니다. S는 '불안과 공포가 마음 한가운데서 파도쳤다'고 일기에서 고백합니다. "K양을 여자로서 처음 느꼈기 때문이다. 이성으로서의 K양을 내 육체의 한 부분이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정의 수문이 열리고 만 것일까? 감정의 둑은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쌓지 못하는 것일까?"

이렇게 그들은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져듭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그 가운데 S는 또 다른 사랑에 고민합니다. "전혀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 명제가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K양을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있다.'와 '보다 영원한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의 내게는 전자가 더 강한 편이다."

그러나 S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아는 K는 두 달의 고민 끝에 자신이 사랑하는 S를 신에게 양보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초여름 어느 날 지금은 사랑하지 않지만 '앞으로 사랑하게 될' 한 번 본 사람과 약혼합니다. 그 소식을 전하는 자리에서 K는 S에게 가슴 미어지는 부탁을 합니다.

"선생님, 꼭 여름 안으로 유학을 떠나세요. 집에서 제 결혼을 서두는가 봐요. 그렇지만 선생님이 떠나시기 전에는 안 될 거예요. 비행기로 떠나실 테지만, 전 전송을 못 갈 것 같아요.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걸 어떻게 보겠어요? 마음으로 전송하겠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가셔도 좋아요. 더 계시면 제가 못 견딜 것 같아요."

S의 일기는 이렇게 끝나고 있었습니다. "어디선지 애조를 띤 유행가 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들려왔다. 나는 슬퍼졌다. 눈물이 자꾸만 쏟아졌다. 햇볕은 여전히 따가웠다. 영원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다면 누가 내 발을 일보라도 옮겨 놓을 수 있었을까?"

 

 

 

저는 [어느 구도자의 일기]를 다시 읽고 이 주인공이 혹시 김형석 교수님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일기의 주인공은 제 친구입니다. 유학을 가서 신부가 되었지요." 사랑과 섹스가 동의어가 되어 가고 있는 2018년 대한민국에 이런 사랑이 통할지 모르지만 1977년 저는 이 사랑 이야기에 눈물 적시며 애틋해 했습니다. 그때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어느 구도자의 일기]를 읽고 그 감성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10.29.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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