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13번째 편지 - 월요편지를 쓰며 길러진 능력

저를 아시는 분들이 저를 만나면 월요편지 내용으로 인사를 건넬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에는 공통적인 두가지가 있습니다.

 ‘어떻게 매주 편지를 쓸 수 있어요. 대단하세요.’

 ‘어떻게 작은 일에서 그런 의미를 찾아내나요. 특별한 감성이 있는 것 같아요.’

 글쎄요. 두가지 다 저의 본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저 어떤 계기로 오래 하다보니 길러진 후천적 능력인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한가지를 오래 하지 못하는 타입입니다. 호기심이 많아 늘 관심이 이것 저것으로 옮겨 다니지요. 무엇을 배우겠다고 학원을 끊었다가 그만 둔 것이 수십 번은 될 것입니다. 성실성과는 거리가 멀지요. 대신 저의 아내는 무엇을 시작하면 꾸준히 하지요. 그래서 저는 아내를 늘 고지식하다고 놀려 댑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한가지에 대한 꾸준한 실천.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누구나 두가지 성향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그러니까요. 다만 어느 것이 더 강하냐는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두가지 성향 모두 다 안가지고 계시다구요. 그러면 다른 무엇인가를 가지고 계실테니 염려하실 필요없습니다. 오늘은 이 두가지에 대해 이야기 하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다양한 관심은 저를 끊임없이 일깨우고 변화하도록 요구합니다. 오늘은 오른 쪽으로 움직이게 하였다가 내일은 왼쪽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어떤 날은 북쪽으로, 어떤 날은 서쪽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2011년 8월 2일 검찰에서 퇴직한 이후 쓴 월요편지를 일별해 보아도 반짝 아이디어로 끝난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30일간 새로운 것 도전하기’(2012.1.16자 월요편지)는 ‘매일 한시간 씩 한달간 걷는 것’을 한 번하고 끝났습니다. ‘물건 100개만으로 살아보기’(2012.6.19자 월요편지)는 관심만 두었지만 시작도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채 세 자루로만 치는 골프’(2012.9.10자 월요편지)도 딱 한번 해보고 더 이상하지 못하였습니다. ‘책 잇달아 두번 읽기’(2012.11.12자 월요편지)는 짐 콜린스의 ‘위대한 기업의 선택’ 한 권을 두번 읽고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였습니다. ‘낭독의 재발견’(2013.2.18자 월요편지)도 책 서너 페이지를 낭독하는 것으로 마감하였습니다.

 오늘 편지를 읽으시면서 저에 대해 실망하신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월요편지에 써 놓아 다 실천하고 실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한두번 하거나 아예 하지 않은 아이디어도 있다니 싱거운 사람이네.’라고 말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월요편지를 쓰던 순간만큼은 진지하게 영원히 그렇게 할 것 같았습니다. 인생이 그런 것이니까요.

 그러나 이렇게 중도 포기한 일에 대해 이제는 아쉬워 하지 않습니다. 젊은 날에는 매우 아쉬워 하고 저의 불성실에 대해 자책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시도하였다가 포기한 일들은 저에게 맞는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맞는 일은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시작하고 그 일을 끈질기게 하지 않는 다고 자신을 무능하거나 불성실하다고 몰아 세울 일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새롭게 계속 시도하다 보면 자신에 꼭 맞아 오래도록 하는 일을 찾아내게 되지요.

 저의 ‘월요편지 쓰기’처럼 말입니다. 2008.3. 시작하였으니 5년 반이 지났습니다. 저 스스로 좋아하지 않으면 결코 하지 못할 일입니다.

 여러분도 무엇인가 많이 시도해 보세요. 그중에 여러분이 좋아하고 오래도록 하실 일이 반드시 있으실 것입니다.

 두번째 저더러 감성이 풍부하다고 말씀들 하십니다. 그런 말을 하도 듣다보니 저 스스로 원래 감성이 풍부하였나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법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지극히 논리적인 사람입니다. 고교시절에도 영어나 국어 보다는 수학을 월등히 잘하였습니다. ‘감성’은 저와 먼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보니 글감을 찾기 위해 저절로 감성을 키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감성의 ‘촉’이 발달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들에 나가 만난 잠자리를 보고 쓴 글입니다.

 “요즘 들녁을 나가면 유난히 잠자리가 많습니다. 날아다니는 잠자리도 많지만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는지 아니면 좋아하는지 사람에게 달려들어 여기저기에 붙습니다. ‘어머, 당신 모자에 잠자리가 붙었네’ 하는 소리를 심심지 않게 듣습니다. 어떤 놈은 제 손 등에 살포시 앉습니다. 자신을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요. 제가 손가락을 가까이 하여 날개를 잡으려 하여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아니 자신을 붙잡아 달라고 가만히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잠자리 한마리를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이놈은 두 개이어야 하는 왼쪽 날개가 한 개 밖에 없습니다. 떨어져 나갔나 봅니다. 바닥을 보니 여기저기에 잠자리들이 붙어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 있습니다. 어린 날 잠자리를 잡기 위해 엄마를 졸라 긴 잠자리 채를 문방구에서 사서 잠자리를 잡으러 나섰던 기억이 또렷이 떠오릅니다. 그 잠자리들은 무척 빨랐습니다. 어쩌다 한 마리를 잡으면 박수를 치고 좋아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왜 그리 잡기 어려웠던지. 아버지가 잡아주신 잠자리를 날개를 모아 두번째 손가락과 세번째 손가락 사이에 붙잡고 잠자리가 파르르 떠는 진동에 신기해 하곤 하였지요. 그토록 잡고 싶어하였던 잠자리가 이제 지척에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손만 뻗치면 5분만에 여러 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쁘지 않습니다. 신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힘이 없어져 죽기 직전인 잠자리들이 너무도 쉽게 잡힌다는 사실이 저를 서글프게 합니다. 저의 가슴속에 날아다니는 잠자리는 힘차게 저의 잠자리채를 요리조리 피하던 잠자리입니다. 그 잠자리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감성은 얼마든지 길러지는 것 같습니다. 사물에 애정을 쏟으면 그 애정이 사물을 일깨워 그 사물이 저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러면 제가 대꾸를 하고 우리는 수다스러워 집니다. 그 이야기를 사람들은 일컬어 감성적인 글이라고 하나 봅니다. 저는 사람이 아닌 그 무엇과 사람을 대하듯 감정을 나누었을 뿐인데요.

 가을은 사물과 소통하기 알맞은 계절입니다. 하늘만 바라보아도 눈물이 나고 스산한 바람만 불어도 왠지 외로워 지지요. 감성의 촉을 살려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3.10.7. 조근호 드림

 (방송 안내)

 4월15일부터 26주 동안 매주 월요일 10시부터 11시까지 방송되는 극동방송(AM 1188 또는 FM 106.9) ‘사랑의 뜰안’ 프로그램에 조근호 변호사의 월요편지 코너가 신설되었습니다. 그 동안 썼던 월요편지 중에서 일부를 골라 청취자 분들에게 제 육성으로 전달해 드리게 됩니다. 시간은 대략 10:20 경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나시면 들어 주세요. 새로운 감흥이 있으실 것입니다. 라디오 듣기가 불편하신 분은 스마트 폰에 극동방송 앱을 다운 받으시면 그 시간에 들으실 수 있습니다.

 <광고>

 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에 대해 여러분들이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