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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번째 편지 - 산소 가는 길

 

35년 전 그날도 오늘처럼 하늘이 화창했습니다. 사흘을 하도 울어 기력이 바닥이었지만 그래도 흐드러지게 핀 길가의 코스모스는 눈에 들어왔습니다. "참 좋은 계절에 가셨다."는 어머님 말씀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영구차는 포천군 만세교를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난생처음 와보는 이곳. 이 부근에 있는 공원묘지에 아버님을 모시고 앞으로 찾아뵐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하였습니다. 이렇게 이곳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벌써 도착했어요." 다섯 가족이 이 과장이 운전해 주는 큰 차를 타고 집에서 떠난 지 1시간도 안 되어 아버님 산소에 도착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버스를 타고 오면 추석날은 4시간도 더 걸렸는데 세상 좋아졌다."는 어머님 말씀에 저도 기억이 살아났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니던 시절, 길도 제대로 닦여있지 않아 의정부 시내를 통과하고 포천을 지나오면 시간은 한정 없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아버님 산소를 찾아 그간 살아온 말씀을 드릴 때면 가슴 뿌듯하였습니다.

어머님과 동생을 데리고 찾던 이곳에 이제는 제법 가족이 늘었습니다. 다들 장성해서 결혼도 하고 자식들을 두었습니다. 오늘은 동생네 가족은 같이 못 왔지만 어머님을 모시고 저희 가족은 모두 같이 왔습니다. 30년 전 쓸쓸히 다니던 이 길이 이제는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합니다. 아직 10시도 안 된 이른 시간이지만 공원묘지 주차장에는 차들로 그득합니다.

약간의 음식이며 성경책, 찬송가책을 주섬주섬 들고 묘소로 향했습니다. 땅도 묘지도 하늘 색깔마저 그 옛날 모습 그대로인데 찾아온 우리 모습만 세월의 두께가 켜켜이 묻어납니다. 산길에서 산소로 접어드는 길에 작은 수로가 있습니다. 그 수로를 덮은 돌판을 얼마나 많이 디뎠는지 모릅니다. 어머님은 저의 다섯 배는 더 밟으셨을 것입니다. 세상이 어머님을 힘들게 하고 삶이 어머님을 배신할 때마다 어머님께 버팀목이 되어 준 분은 이곳에 늘 같은 모습으로 웃음 지며 계신 바로 그분, 아버님이었습니다.

십수 년 전 그 어느 날 이 수로에 있는 돌판을 헛디뎌 어머님이 수로에 빠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다리를 다쳐 한동안 깁스를 하여야 할 정도의 사고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님께는 그 상처는 남편을 향한 사랑의 징표였습니다. 그 수로를 이제는 손자 손녀의 부축을 받으며 한 발짝 한 발짝 떼는 어머님은 벌써 아흔을 넘기셨습니다.

산소를 찾을 때마다 초라한 산소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주변의 성대하게 만들어진 산소를 부러워 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산소 옆에는 아버님을 모신 후 심은 나무가 제법 커져 우리에게 그늘을 드리우며 우리를 변함없이 반겨줍니다. 그 나무는 알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산소에서 얼마나 많이 속상해하고 답답해하며 투덜댔는지. 그리고 끝내는 힘과 용기를 얻고 일어서 씩씩하게 세상을 향해 나갔는지를 말입니다.

준비한 자리를 깔고 찬송가와 성경책을 꺼내 들고 추석맞이 가족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이 찬송도 부르고 싶고 저 찬송도 부르고 싶은 신 모양입니다. "이 찬송가는 아버지가 임종하시기 전에 부른 찬송가야." 저는 가족들에게 가사를 음미하며 부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찬송이 끝나고 묵도를 하고 기도를 한 후 제가 한마디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살아보니 속상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많았습니다. 가족들도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론 미워하고 상처를 주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취도 해보았습니다. 돈도 벌어 보았지요. 갖고 싶은 것도 가져 보았지요. 세상에 좋다는 곳도 여기저기 쫓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가족입니다. 가족이 오늘처럼 한자리에 모여 웃을 수 있는 것, 이것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이런 모습을 가능하게 할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저는 제 마음에, 우리 가족 모두의 마음에 이 사랑이 늘 함께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 설교 같은 말이지만 이 순간 가슴에 일렁이는 이 말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 한마디 하였습니다.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산소 앞의 비석을 보니 수십번도 더 본 성경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입니다. 산소에 쉬고 있는 분은 아버님이었지만 산소에 와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쉰 사람은 늘 우리들이었습니다.

얼마를 쉬었는지 모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때론 키득 이고 때론 낄낄거리며 아버님 앞에서 다 큰 손주들이 마냥 재롱들을 떨었습니다. 하늘 볕은 적당히 따갑습니다. 바람은 살랑살랑 뺨을 어루만집니다. 이 행복한 순간을 가끔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개미들입니다. 그런 개미도 행복의 한 요소입니다. 음식이 다 동이 났습니다. 일어설 때입니다.

한때는 산소 오는 것이 불편하여 오자마자 숙제하듯 후다닥 예배를 보고 내려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곳이 집보다 더 편안합니다. 그토록 초라하게 느껴졌던 산소가 사랑으로 가득하니 궁전같이 훤합니다. 그 순간 아버님이 저에게 귓속말을 해주십니다. "그간 힘들었지. 수고했구나. 가족들 모습이 보기 좋구나.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주렴."

어머님을 부축하며 산소를 떠나는 가족들의 표정이 이리 밝을 수 없습니다. 기도 때는 "왜 이리 나만 남겨두고 먼저 가셨어요."하고 아버님을 원망하시던 어머님도 입가에 미소가 떠날 줄 모르십니다. 이것이 추석의 힘인 모양입니다. 가족이 모였습니다.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함께 웃었습니다. 함께 미래를 약속했습니다. 늘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빠져나와 만세교로 향하는 큰 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길가에 있는 구멍가게는 35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35년 전 아버님을 산소에 모시고 한 달도 안 되어 다시 산소를 찾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음료수를 사러 그 구멍가게에 들어갔었습니다. "난리가 났어요. 외국에서 폭탄이 터졌어요. 대통령 수행원들이 다 죽었어요." 주인아저씨가 TV를 보며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위치한 아웅산 묘역을 방문하는 행사 예행연습 과정에서 북한 테러범이 설치한 폭탄이 터져 부총리 등 한국인 각료 17명이 사망한 소위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그 구멍가게를 보면 역사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그랬는데 35년이 지난 오늘은 남북 정상들이 세 번째 정상회담을 하였습니다. 세월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차장을 통해 길가의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가정이나 국가나 코스모스처럼 바람에 따라 때론 가볍게 때론 심하게 흔들리지만 예쁜 꽃만큼은 꺾이지 않고 언제나 함께하길 바라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10.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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