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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번째 편지 - "왜 이제 왔어요. 왜."

 

지난 6월 유니버설발레단이 공연한 [발레 춘향]을 보았습니다. 춘향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내용이라 과연 발레로 만들어졌을 때 어떤 감흥이 있을까 궁금하였습니다. 그런데 [발레 춘향]은 고전발레에서 맛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을 떼지 못하고 공연에 빨려 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발레 춘향]에서 '아하'하고 감탄사를 던진 장면은 바로 '해후 파드되(두 사람이 추는 춤)'였습니다. 몽룡이 변학도를 징벌한 후 춘향을 만나 춤추는 장면입니다. 몽룡은 춘향에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부채를 내놓습니다. '일월동심' 사랑의 약속 네 글자가 새겨진 그들만의 아름답디 아름다운 추억이 서린 바로 그 부채입니다. 그 부채를 보고 춘향은 자신 앞에 서있는 남자가 몽룡임을 알아봅니다.

변학도의 모진 고문에 몸이 바스러질 대로 바스러져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운이 없던 춘향은 고개를 들어 몽룡을 바라보곤 단숨에 일어서 몽룡의 품에 안깁니다. 있는 힘을 다해 몽룡을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립니다. 그리고는 조막만 한 손으로 몽룡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립니다. 한이 서린 이 토닥임은 관객들에게 이런 대사로 바뀌어 전해집니다.

"왜 이제 왔어요. 왜."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왜 이리 늦었나요. 나는 그리도 당신을 애타게 기다렸건만. 나는 너무 힘이 들었는데, 그동안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요. 왜 나를 지켜주지 못하셨나요. 그러나 이제라도 와 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고마워요."

춘향의 그 토닥임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토닥임은 두드림이 아니었습니다. 손을 몽룡의 등에 얹 듯 던지고 또 얹 듯 던졌습니다. 그때마다 제 가슴이 울컥하였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며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삽니다. 가족과 친구와 동료와 그러나 그 관계가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실수로, 때론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그 관계가 나빠지고 멀어집니다. 서로 그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닙니다. 무심히 그렇게 하루 이틀, 한주 두주, 한 달 두 달이 흘러갑니다. 누군가는 간절히 그를, 그녀를 기다리는데. 춘향은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왜 이제 왔냐고 타박 아닌 타박을 합니다.

제가 울컥한 것은 춘향의 작은 손에서 전해지는 애절함이 저에게 와닿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애절함이 제 눈가를 적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그런 순간이 없었으면 하지만 우리의 뜻과는 무관하게 이런 순간들이 녹처럼 때처럼 우리 삶에 끼어듭니다. 그때 관계 회복이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합니다.그래도 춘향은 토닥임을 할 몽룡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런 기회를 영영 만나지 못하고 말기도 합니다.

시인 백석과 그의 여인 자야가 그런 사이입니다. 1938년 26세의 영생여고 영어 선생 백석은 동료 교사 전별 장소인 요정에서 22세의 기생 김영한을 만나 단숨에 사랑에 빠집니다.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한 편의 시를 바칩니다.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사슴]입니다. 훗날 후배 시인 156명은 이 시를 한국 현대 시 100년사의 최고시로 꼽았습니다.

백석의 집안에서 백석과 기생의 결혼을 승낙할 리 만무합니다. 백석을 만주로 보냅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고 남과 북이 갈라져 남쪽의 자야는 북쪽의 백석을 그리워하며 한평생을 보냅니다. 자야 김영한은 매년 7월 1일이면 일체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허공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날이 그녀가 그토록 사랑한 백석의 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야는 1955년 성북동에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내어 많은 부를 모읍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 많은 재산은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했습니다. 그녀는 1987년 법정 스님의 무소유 책을 읽고 그 재산을 부처님께 바치기로 합니다. 그래서 1997년 길상사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1999년 끝내 사랑하는 그 님 백석을 만나지 못하고 이생을 하직합니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백석이 오래 전에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백석은 1996년 1월까지 살아 있었습니다. 만약 이를 알았더라면 자야는 전 재산을 바쳐서라도 백석을 만나려 하였을 것입니다. 백석은 자신을 향한 자야의 이 지순한 사랑을 알기나 하였을까요.

시인 이생진은 백석이 되어 백석의 심정을 절절히 읊어 냅니다.

 

[내가 백석이 되어/ 이생진]

나는 갔다
백석이 되어 찔레꽃 꺾어 들고 갔다
간밤에 하얀 까치가 물어다 준 신발을 신고 갔다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는데 길을 몰라도
찾아갈 수 있다는 신비한 신발을 신고 갔다

성북동 언덕길을 지나
길상사 넓은 마당 느티나무 아래서
젊은 여인들은 날 알아채지 못하고
차를 마시며 부처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까치는 내가 온다고 반기며 자야에게 달려갔고
나는 극락전 마당 모래를 밟으며 갔다
눈 오는 날 재로 뿌려달라던 흰 유언을 밟고 갔다

참나무 밑에서 달을 보던 자야가 나를 반겼다
느티나무 밑은 대낮인데
참나무 밑은 우리 둘만의 밤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
죽어서 만나는 설움이 무슨 기쁨이냐고 울었다(생략)

 

시인 정영구 선생님이 백석과 자야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함께 이 시를 낭송해 주던 순간, 저는 심장이 멎어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죽어서 만나는 설움이 무슨 기쁨이냐고 울었다]는 대목에서 다툼과 미움이 다 부질없음을, 관계 속의 갈등이 다 헛것임을 깨닫고 또 깨달았습니다.

춘향은 몽룡에게 왜 이리 늦게 왔냐고 토닥임이라 도 할 수 있었지만 자야는 백석의 생사도 모른 채 그이의 생일날 허공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시인의 시 속에서 형체도 없고 향기도 없는 그를 만나 울었습니다.

죽어서 만나는 설움은 기쁨이 아니라며 서로 통곡하였습니다.

우리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가족, 친지, 동료 들의 틀어진 관계가 백석과 자야의 관계가 아니라 춘향과 몽룡의 관계처럼 늦더라도 토닥임을 하며 회복되길 바라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8.2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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