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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번째 편지 - 시와 함께 하는 편지

시와 함께 하는 편지

 1997년도쯤 일입니다. 당시 저는 대검찰청 감찰부 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전국 검찰청을 사무감사 다니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업무 자체가 자연스럽게 전국의 검찰 간부들을 만나고 또 각 청의 우수한 검사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모시던 감찰과장(부장검사 급)께서 현지 청의 검사들의 분위기를 알기 위해서는 감찰 팀과 현지 청간에 축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가지신 분이라 감사를 갈 때마다 감찰 팀과 현지 청간에 축구시합이 열렸습니다. 시작 전에는 다들 마지못해 끌려서 축구를 하였으나 막상 축구경기가 시작되면 모두들 열심히 하였고 그 과정을 통해 감찰 팀과 현지 청간에 심적 유대감 같은 것이 생기곤 하였습니다. 물론 끝난 후의 한잔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지요.

 이렇게 전국을 돌며 사무감사를 하던 중 순천지청에 갔을 때 일입니다. 순천지청 축구팀 단장이라는 한 젊은 검사가 눈에 띠였습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축구시합에 임했고 직원들을 통솔하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특이하였던 것은 그의 폭탄사였습니다. 요즘은 검찰에 폭탄주 문화가 많이 사라졌지만 1997년 당시만 해도 폭탄주 문화가 절정에 달하였던 시절입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네 명씩 한 조를 이루어 함께 마실 때 그 중 대표로 한 사람이 폭탄사라고 불리우는 인사말을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가 포함된 팀의 차례가 돌아오자 순천지청 측 참석자 모두가 그에게 폭탄사를 하라고 권하고 누군가 넌지시 저에게 그의 폭탄사를 주목해서 들어보라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그가 일어섰습니다. 그가 일어서자 순청지청 측 검찰간부와 검사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일제히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의 특별한 폭탄사를 기다리는 분위기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저는 자못 궁금하였습니다. 수많은 폭탄사를 들어보았지만 거청적으로 폭탄사에 힘을 실어주는 사례는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그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시를 암송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시가 아닌 생소한 시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의 내용은 그 상황과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시를 다 암송하고는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 잘 생긴 위재천이가 한 잔 하여도 쓰것습니까?”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로 위재천 검사는 자신이 폭탄주를 마셔도 되는지 좌중에게 물었고 이런 폭탄사 양식에 익숙한 순천지청 검사들은 일제히 “쓰것습니다.”라고 화답하며 그의 폭탄주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너무도 인상 깊었습니다. 순천지청이 두번째 임지인 젊은 검사가 폭탄사 하나로 전 순천지청 검사들을 휘어잡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였습니다. 저는 그 후 위 검사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를 법무연수원장 시절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에게 그 옛날 인상 깊었던 시 폭탄사 이야기를 끄집어 내었습니다. 그는 젊은 날의 치기에 대해 쑥스러워 하였습니다.

 요즘도 시를 많이 읽고 암송하냐는 질문에 여전히 시를 좋아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위 검사는 시를 잘 아니 내가 매주 한 번씩 월요편지를 쓰는 것처럼 위 검사도 시에 관한 이야기를 써서 아는 분들에게 보내면 어떨까?”하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물론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한담 끝에 나온 이야기이니 곧 기억 속으로 살아질 운명의 제안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이야기를 하였다는 사실을 곧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위 검사에게서 ‘청안하신가요’라는 인사말로 시작하는 한 통의 이메일이 날라왔습니다. 그는 제가 점심자리에서 한 제안을 실제로 실천에 옮겨 시와 시에 얽힌 이야기를 엮어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법무연수원장 때 시작하였으니 제법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 위 검사는 ‘시와 함께 하는 편지, 107번째 이야기’를 보내왔습니다. “벌써 107번이나 되었나, 그러면 2년이 넘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습니다. 그는 꾸준히 2년을 넘게 그의 시 이야기 편지를 지인들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책을 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07번째 편지에서는 김광규 시인의 시 ‘동서남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광규님은 그 시에서 봄에 대한 대목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봄에는 연록색 물결 북쪽으로/ 북쪽으로 퍼져 올라간다/ 철조망도 군사분계선도 거리낌없이/ 북상한다/ 산맥을 넘고/ 들판을 지나서/ 진달래도 개나리도 월북한다/ (중략)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위 검사는 이 시를 소개하면서 종교와 이념을 넘어 서로 소통하고 나누고 도우면서 한 형제처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라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상기시켜 줍니다.

 저는 5년간 월요편지를 쓰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지라고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실천에 옮긴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위 검사가 2년째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며 이를 지속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저는 내심 흐뭇하였습니다. 위 검사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여러분도 될 수있다는 사실에 동의하시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3.4.22. 조근호 드림

 (방송 안내) 지난주 월요일(4월15일)부터 26주 동안 매주 월요일 10시부터 11시까지 방송되는 극동방송(AM 1188 또는 FM 106.9) ‘사랑의 뜰안’ 프로그램에 조근호 변호사의 월요편지 코너가 신설되었습니다. 그 동안 썼던 월요편지 중에서 일부를 골라 청취자 분들에게 제 육성으로 전달해 드리게 됩니다. 시간은 대략 10:20-40 사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나시면 들어 주세요. 새로운 감흥이 있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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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에 대해 여러분들이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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