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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번째 편지 - 승진한 김 부장검사에게

 

지난주 제가 몸담았던 검찰에 중간간부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평검사에서 부장검사로 승진하거나 부장검사에서 차장검사로 승진한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보직을 바꾼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여 사신 형식을 빌어 몇 자 적을까 합니다.
 

 


김 부장.
승진을 축하합니다.

평검사로 지내다가 이제 경영자가 되었네요. 작은 규모지만 그 규모를 관리하고 담당하는 경영자가 된 것이지요.

부장검사로 잘 근무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는 많이 고민하였을 테니 일반적인 이야기는 오늘 하지 않으렵니다. 오늘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지난주 어느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가 김 부장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CEO께서 대화 도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기업에 있으면서 관찰해보니 임원들은 승진하면 대부분 두 가지 폐해를 저지르더군요.

첫 번째는 근무시간이 늘어납니다. 상무 하던 사람이 전무가 되고 전무가 부사장이 되고 부사장이 사장이 되면 예외 없이 근무시간이 늘어납니다. 출근 시간이 빨라지고 퇴근 시간이 늦어지며 주말 근무도 자청해서 하게 됩니다. 처음 맡는 조직이니 그 조직에 대해 공부하려면 근무를 좀 많이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초기에 일정 기간 연장근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직 내내 그런 근무형태를 보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웃풋은 개인의 역량 곱하기 시간입니다. 그러나 승진을 한다고 개인의 역량이 갑자기 두 배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시간을 늘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 역량을 늘리지 않고 시간만 늘리다 보면 개인 역량을 늘릴 시간이 없어지게 됩니다. 책 한 권 읽지 못하고 외부 사람 한 사람 만나지 못하고 매일 바쁘게 시간이 지나갑니다. 문제는 근무시간이 아니라 개인 역량입니다. 그 역량을 증대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기업의 사장을 마치고 퇴직한 분들이 건강이 상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건강을 돌볼 시간마저 업무에 바친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자신이나 조직의 생산성을 유지시키기는 하겠지만 증대시키지 못합니다. 획기적으로 혁신하거나 창조적이 되긴 더 어렵습니다.

둘째 회의가 많아집니다. 하루에 평균 대여섯 번, 많은 경우에는 열 번 회의를 하기도 합니다. 회의는 승진자가 새로운 업무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하는 경우도 있고 부하들이 승진자에게 보고하기 위해서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회의가 많아집니다. 이것도 일시적으로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타성에 적으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회의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회의를 많이 하면 승진자는 자신의 지식이 늘어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부하들로부터 많은 내용을 전해 들었으니까요. 그 내용으로 다른 부하들에게 지적하고 혼을 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 부하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이 승진자에게 옮겨간 것에 불과합니다. 그 조직의 지식이 늘었을까요? 그것은 미지수입니다. 오른쪽 주머니의 돈을 왼쪽 주머니로 옮긴 것을 승진자는 돈이 늘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회의의 목적은 조직의 역량을 증대시키는 데 있어야 합니다.

승진자가 보이는 두가지 행태, 즉 근무시간이 느는 것과 회의가 많아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승진자 개인이나 회사 조직의 역량을 증대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하 임원들에게 이 폐해에서 벗어나도록 권해 오고 있습니다."

김 부장.

검찰은 어떨까요. 1980년대 부장검사와 2000년대 부장검사, 그리고 2018년의 김 부장, 이렇게 세 사람을 비교하면 김 부장의 역량이 월등히 나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검찰은 외형적으로 변화와 발전이 있지만 부장검사의 역량은 그다지 성장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검찰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지요. "검찰 수첩을 보면 평검사 시절 부장검사로부터 전달받은 사항이 자신이 부장검사가 되어 검사에게 지시한 사항과 똑같아 놀란 적이 있다."

경영자에 대해 많은 정의가 있습니다. 굳이 경영자라 하지 않고 관리자라 해도 좋습니다. 부장검사, 차장검사는 경영자와 관리자 두 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 수많은 정의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는 이것입니다. '경영자란 부하를 성장시키는 사람이다.' 부하가 성장하고 상사가 성장해야 조직이 성장합니다.

저는 서울지검 부장검사 시절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부하검사의 오류를 샅샅이 찾는다 해도 오류 전부를 찾을 수는 없을 거다. 한 사건 결정문에 5개의 오류가 있다고 할 때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은 고작 한두 개일 것이다. 내가 지적을 강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검사들이 원천적으로 오류 발생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 경험으로 보면 결재가 깐깐한 부장검사의 경우 검사들이 '어차피 부장이 지적할 텐데 그때 고치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 자신이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줄어드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이처럼 결재는 부하의 사기를 꺾지 않으면서도 부하의 잘못을 적절히 지적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이 기술을 터득한 사람만이 경영자가 되는 것 아닐까."

김 부장.

부장검사는 평검사와는 전혀 다른 역량이 필요합니다.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은 검사가 부장검사가 되어 부원들과 갈등을 빚고 좌초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하였지요. 어느 신임 부장검사는 결재를 철저히 하겠다는 일념으로 밤 12시까지 결재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CEO의 충고와 반대로 간 것이지요.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근무시간을 늘리고 회의를 많이 하는 것. 이것만 안 하겠다고 생각해도 부장검사로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김 부장, 이것을 꼭 기억하세요. 김 부장 개인의 역량을 선배 부장검사들의 역량보다 증대시키고, 부하 평검사의 역량을 예전 평검사의 역량보다 증대시키는 것 그것이 검찰 조직을 위하는 일이요, 대한민국을 위하는 일입니다.

축하 인사 하려던 것이 오랜만에 편지를 쓰다 보니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졌네요. 다시 한번 승진 축하합니다. 요즘 무더위가 살인적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행복하세요.

조근호 드림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7.23.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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