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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번째 편지 - Pet Loss



얼마 전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형님, 혹시 잘 아는 정신과 선생님 있으신가요?” “왜 무슨 일이 있어요?” “사실은 제 딸 문제입니다. 딸아이가 직장을 다니는데 강아지를 4년간 키웠습니다. 그런데 그 강아지가 최근에 암에 걸렸습니다. 아마 얼마 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때부터 저희 딸아이가 식음을 전폐하고 강아지에만 집착을 하는 거예요. 수의사 선생님이 강아지보다 강아지 주인이 더 문제이니 정신과 상담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저도 이리저리 알아봐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펫로스 증후군이란, 반려동물이 사망하거나 없어질 때 느끼는 상실감, 우울감, 죄책감 등 여러 감정이 결부된 상태를 말합니다.

노년기에 반려견을 키우다가 그 반려견이 먼저 죽게 되면 노인들의 상실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펫로스 증후군 전문 정신과 의사가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무엇과 헤어진다는 것 정말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저런 Loss를 많이 합니다. 저는 작년에 어머님을 잃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큰 Loss 중 하나입니다. Mom Loss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한 우울감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 정도이니까요.

지난해 가을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아이를 분가시켰습니다. 딸아이가 집에서 불과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살게 되었지만 저는 그때부터 약 한 달간은 매일 딸아이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Loss에서 오는 우울감이 작동했던 것이죠.

그냥 걸어가면 갈 수 있고 가서 벨을 누르면 딸아이를 볼 수 있었지만 저는 그 과정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서히 딸아이를 보고 싶은 절박함이 줄어들었고 이제는 평상시로 돌아왔습니다.

시간의 힘입니다.

저는 1년에 2차례 아들과 이별합니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아들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집에 왔다가 갑니다. 아들 녀석도 학구적이라 저와 잘 통하는 편입니다. 특히 새로운 지식에 대해 둘이서 몇 시간씩 토론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들과 죽이 맞아 지내다가 아들이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릴 때면 저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1, 2주간은 공허함이 마음을 아립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해결해 줍니다.

저는 이별이 싫어 검찰 인사 때마다 새롭게 만나는 동료 검사와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사귀지 않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습니다. 너무 깊이 정을 주면 헤어질 때 힘들기 때문이죠.

평생 한 이별 중 어머님을 잃은 슬픔 다음으로 가장 큰 이별은 검찰과의 이별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이별의 감정을 월요편지에 적어 두었습니다.

"이제 익숙한 것과 결별할 시간을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습니다. 평소에 늘 월요편지를 통해 이런 일에 익숙해지도록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그것을 다짐하기 위해 글로 쓰기도 하였지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것과의 이별이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을 제외한 저의 전 인생을 같이한 검찰과의 사랑은 모진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이 모질어 이별이 처절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 사랑한 이와의 이별은 늘 그러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저는 남은 기간 동안 매일매일 이별 연습을 하렵니다. 이별이 조금이라도 더 쉬워지도록 말입니다."

저도 Pet Loss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2003년 5월 11일 입양한 강아지 버키가 2011년 6월 7일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실 저희는 버키에게 못 할 짓을 했습니다. 그때도 아들과 딸아이가 유학을 하고 있어 그들이 한국에 올 때만 버키를 강아지 농장에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한국을 떠나면 버키는 원래 자신이 자라던 강아지 농장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강아지 농장은 후배가 경영하는 곳으로 너무 시설도 좋고 강아지들도 많아 저희는 버키가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훗날 그곳에서 일하는 분 이야기를 들으니 버키는 저희 집에서 강아지 농장 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래서 그 버키의 심정을 담아 월요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누나와 형이 방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날 때면 저는 다시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를 데리러 선생님이 오시면 저는 따라가지 않으려고 몸을 숨기곤 하였고 어떤 때는 파르르 떨기도 하였습니다. 저를 보내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Pet Loss에 대해서 이야기했더니 한 친구가 강아지를 키우고는 싶지만 Pet Loss가 걱정되어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별이 걱정되어 만남을 시작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정을 주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가슴앓이하는 일은 성숙한 어른의 일상사입니다. 만약 이 일이 편하지 않으면 저는 "제발 나를 떠나가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버림받음의 덫>에 빠져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월요편지에 썼던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훗날 Loss가 걱정이 되더라도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3.2.2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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