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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번째 편지 - 환갑을 맞은 아내에게 쓰는 월요편지



지난주 금요일 아내의 가까운 친구, 친지 몇 사람을 초대하여 아내 환갑 축하 저녁을 했습니다. 그 행사의 한 순서로 제가 무엇을 할까 하다가 환갑을 맞은 아내에게 쓰는 월요편지를 낭독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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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신의 환갑을 축하합니다. 내 눈앞에 서 있는 당신은 처음 만났던 1985년 7월 19일의 23살 이운한인데 벌써 환갑이 되었구려. 문득 두 번째 만나던 날 입고 온 무지개무늬의 원피스가 기억납니다.


20대에 철모르고 만나 참 많이도 싸우고 당신 눈물도 많이 흘리게 했어요. 지나고 보니 그 세월이 서로를 맞추는 조율 시간이었더군요.

우리가 산 지역만 훑어보아도 지난 세월이 저절로 떠올라요. 서울에서 결혼하여 속초에서 신혼생활을 했지요. 그곳에서 큰 딸 윤아를 낳았어요. 갓난아이 윤아를 데리고 영랑호를 드라이브하던 기억이 생생해요.

과천에서 시집살이를 했지요. 만만하지 않은 어머님과 시동생을 모시고 산 세월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러다 스페인으로 연수를 떠났지요. 그저 좋기만 할 것 같았던 1년도 어리석게 참 많이 걱정하고 다투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무엇 하러 그랬나 몰라요. 여행만 하고 지낼걸.

귀국해서는 동부이촌동에서 살았지요. 그때 아들 정민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영덕지청장이 되어 처음 지방 생활을 하였지요. 어느 횟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 왔는데 그놈이 아랫도리를 벗은 정민이를 따라다니던 기억이 나요. 혹시나 해서 얼른 바지를 입혔죠.

대검으로 발령이 나면서 방배동에 자리를 잡은 것이 검찰을 그만둘 때까지 계속되었지요. 그 중간중간에 광주, 대구, 대전, 부산으로 객지 생활을 할 때마다 당신은 주말이면 나를 따라 지방을 찾았지요.

주중 내내 당신이 보고 싶어 당신을 데리러 공항에 갈 때면 늘 설레곤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 공항에서 관사에 오늘 길에 늘 다투곤 했습니다. 나중에 성격 공부를 해보니 당신과 나는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 늘 다투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2008년 대전지검장 시절부터는 매주 월요일 월요편지를 써서 그때그때마다의 사건과 감정이 오롯이 남아 있어요.

2011년 8월 변호사가 되어서는 물질적 형편은 나아졌지만 마음속 형편은 더 강퍅해져 당신을 힘들게 한때가 많았었지요.

2012년 9월 덜 다투기 위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존댓말을 쓰기도 했더군요. 그러나 문제는 존중하는 형식이 아니라 존중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수년이 지나 깨닫게 되었죠.

2013년 8월 갱년기를 겪는 당신에게 햇볕을 구경시키려고 등산을 하였어요. 그때 부부는 걷는 속도가 같아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지요. 그전에는 늘 성공을 위해 내가 앞장서 걸었어요. 그런데 한참 뒤처진 당신은 주저앉고 말았고, 그것이 갱년기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2013년 11월 배우자 경청이라는 개념을 배웠지요. 서로 귀담아듣지 않고 딴전 피우는 것은 물론 중간에 끼어들고 말을 잘라버리는 방식 말이에요. 우리도 그때까지는 그렇게 살고 있었지요.

2015년 7월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겠냐는 질문에 예스라고 하면서 이유로 ‘당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조윤아, 조정민이 없을 테니까요’라고 비겁하게 답변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당신과 사는 삶이 너무 편하고 좋아서’라고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어요.

2016년 2월 결혼 30주년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찍었어요. 그날 기억나나요? 10시간 동안 오들오들 떨면서 실내외 촬영을 하였습니다. 저녁 8시 내가 당신에게 꽃다발을 바치며 프로포즈하는 장면을 끝으로 이 이벤트가 끝이 났어요. 우리 인생은 이런 이벤트의 연속이고 오늘의 이벤트도 그중 하나일 테죠.

2016년 12월 결혼에 관한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발적 노예가 되겠다는 선언이지만 30개월 후 사랑의 호르몬 효과가 사라지면 서로 상대방의 구속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그때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2018년 10월 김일두, 오영옥 부부 결혼 50주년 행사에 참석하여 서정인 목사님 축사를 들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 부부가 결혼 50주년을 맞았을 때 기자가 부인에게 물었대요. 살면서 이혼하고 싶을 때가 있으셨나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대요. ‘이혼하고 싶을 때는 없었지만 죽이고 싶을 때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어땠을까요?

2019년 7월 월요편지에서 나는 가족들에 대해 선의의 독재자였다고 고백하였지요. 아무리 선의여도 독재자는 독재자입니다. 가족들은 그동안 독재자 치하에서 살아온 것이지요. 그 후로 바뀌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어땠는지는 모르겠어요.

2021년 2월 결혼 35주년의 밤, 잠 못 이루며 결혼 생활을 생각했지요. 그날 밤 얻은 깨달음은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보다 당신을 먼저 앞세우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과 좋은 부부생활은 그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처럼 싸워 쟁취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었지요.

2021년 10월 그러나 또 싸웠지요. 월요편지에서 부부싸움 원인을 분석하였지요. 화가 나면 말로 상처를 주는 제 약점이 원인이었지요. 그날 밤 기도했습니다. “겸손, 온유, 인내, 자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월요편지는 황혼이혼을 당하지 않으려면 약점을 보완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여 인격이 성숙해져야 한다고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2022년 2월 가족들과 잘 지내기 위해 <유관심, 무관여 원칙>을 수립하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지키고 있는 원칙인데 꽤 쓸모가 있어요. 그 후로는 다툰 일이 별로 없으니까요.

2022년 7월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삶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죽고 나면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가장 옆에 있는 사람, 당신과 윤아, 정민을 사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진심으로 깨달았습니다. 죽고 나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여보 다시 한번 환갑을 축하해요. 앞으로 살면서 여러 번 이런 좋은 자리가 있을 거예요. 그때는 다툰 이야기, 후회한 이야기보다 사랑한 이야기, 즐거웠던 이야기만 하게 되길 기원해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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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곰살맞았나요. 이렇게 사는 게 인생 아닌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7.25.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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