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727번째 편지 - 엄마, 안녕!



지지난 주 토요일 밤 10시 30분, 사랑하는 어머님 김영순 님이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9개월 전부터 몸져누워 병원과 집을 오가며 투병 생활을 하고 계셨기에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위독해지시며 소천하셨습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 6시경 오늘을 못 넘기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가족 모두 모여 어머님과 인사를 나누었으나 의외로 어머님 상태는 며칠은 더 버티실 것 같았습니다.

집에 가도 좋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집에 돌아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어머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983년 9월 23일 아버님이 소천하신 지 39년 만에 어머님은 아버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1928년생으로 올해 95세. 동생과 저는 백수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였던 어머님 인생은 과연 어떤 인생이었을까요?

10년 전 어머님이 85세가 되던 해, 어머님 자서전 <엄마 김영순>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평범한 할머니의 삶도 위대한 삶임을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출간하고 어머님 친구분들만 모아 작은 출판 기념회를 해드렸습니다. 그날 20분짜리 어머님 인생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공개하였습니다. 저는 그 영상을 어머님 장례식장에 틀고 싶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근호 엄마, 태관이 엄마로 평생을 살았다. 손주들이 태어나고는 손주들 할머니로 살고 있다. 그러나 내 이름은 김영순. 태어나 결혼하여 큰아들을 낳기 전까지 나는 김영순으로 살아왔다.

내 나이 여든다섯. 나에게 김영순은 과연 남아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인생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제 나에게 남겨진 것은 죽음을 향한 몇 발자국뿐인가?”

이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머님이 말씀하신 죽음을 향한 몇 발자국은 10년간 이어졌습니다. 과연 어머님은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실까요? 어머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생각하면 나는 행운아다 생각이 돼요. 자랄 때도 부모님을 잘 만나서 보릿고개를 모르고 살았어요. 결혼해서도 시어머니하고도 다정하게 지내고 남편의 사랑도 많이 받았습니다.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잘해주고 손주들도 역시 공부를 잘해주어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님 인생은 아버님의 사업 실패와 10년의 암 투병으로 상당기간 가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어머님은 밝은 면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장례 기간 내내 제단 위 어머님 영정 앞에는 어머님 자서전 <엄마 김영순> 3권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책이 어머님 인생이자 어머님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이 집안을 가난으로부터 구해 낸 것은 어머님의 남다른 교육열이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에서 제 아내는 이 점을 어머님의 위대한 점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대단하셨던 것은 그 어려운 중에도 자식들 교육에 열심이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단한 투자였던 것 같습니다. 책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가르쳤다.’”

세상에 어느 어머님이 위대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어머님도 그런 어머님들 중 한 분이십니다. 저는 <엄마 김영순>을 통해 어머님이 저와 동시대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에 만족해라. 내가 갖지 못한 것, 내가 잃은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한탄하지 말고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누리고 살아라.”

장례 기간 내내 장례식장 입구와 내부, 두 군데 TV에 이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틀어 놓았습니다. 어머님 목소리가 늘 귓전에 맴돌았습니다. 제 동생은 ‘어머님 목 쉬시겠네.’ 하며 농담을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다큐멘터리 동영상에 관심을 보이고 부모님이 살아계신 분들은 꼭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디어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참고로 그 동영상을 월요편지 말미에 첨부하였습니다.

10년 전에 찍었지만 그 동영상의 마지막 3분은 어머님의 유언과도 같은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 대목을 볼 때마다 눈물이 핑 돕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들들에게 감사합니다. 아들들이 공부 안 해주었으면 내가 무엇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 인사를 시작으로 어려울 때 도와준 어머님 형제분들, 아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손주들 하나하나에게 유언 같은 작별 인사를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하셨습니다.

“모두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저는 이 다큐멘터리를 7분짜리로 편집하여 발인예배 때 틀었습니다. 유족 인사말보다 이 영상이 더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머님이 생각날 때마다 이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틀 것입니다. 월요편지를 쓰는 이 순간도 동영상을 통해 어머님을 다시 만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제 <엄마 김영순>은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제가 태어나 <엄마 김영순>과 함께 하였던 지난날들은 힘들었을 때나 좋았을 때나 최고의 나날들이었습니다.

이제 <엄마 김영순>을 보내 드리려 합니다.

엄마 안녕!

그리고 어머님 장례식에 바쁜 시간을 내어 직접 조문해 주시거나 사정상 조문하지 못하고 여러 방법으로 어머님의 소천을 애도하고 유족을 위로해주신 많은 분들께 이 편지를 통해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2.6.27. 유족 대표 큰 아들 조근호 드림

 

동영상 링크 : https://vimeo.com/722629228/6e6594d518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처음글 목록으로 마지막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