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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번째 편지 - 그리스인 조르바



“조 대표 축하해요.” 지난 금요일 아침, 고전 공부에 앞서 아침 식사를 하던 중, 공부 모임을 주관하는 강신장 대표가 지방선거에서 저희 고등학교 동문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당선된 것에 대해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한 분이 거들었습니다. “대일 고등학교 대단하네요.” 강 대표가 계속 설명했습니다. “저는 1974년 백 년이 된 중앙고등학교를 입학했는데, 당시 대일고등학교는 무명의 학교였습니다. 48년이 흘러 명문고가 되었네요. 조 대표 비결이 뭐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비인간적인 경쟁 시스템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당시 선생님들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서울대학교 등 명문대학교에 학생들을 많이 입학시킬지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방법으로 <대일학사>라는 독서실을 만들어 문과와 이과 각 50명씩 뽑아 성적순으로 자리 배치를 하였습니다. 또 그 옆방에는 문과 1등부터 10등, 이과 1등부터 10등까지 일렬로 앉혔습니다.”

“어느 달은 제가 맨 앞에 앉기도 했지만 어느 달은 제 앞에 친구가 앉기도 했습니다. 그런 달은 경쟁심으로 말도 하지 않고 공부에만 몰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치사하지만 최고의 효과가 있었죠.”

“이 비인간적인 방식은 학생들을 자극하였고, 그 결과 서울대학교에 26명이 합격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습니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방식이었지만 당시에는 이런 방법이 통했죠.”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울대학교 음대 이경선 교수는 자신이 다녔던 예중, 예고도 학생들 사진을 성적순으로 벽에 붙여 학생들을 경쟁시켰다고 그 시절을 회고했습니다. 당연히 지금은 없어졌지요.

1970년대, 1980년대 대한민국은 이런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동기부여를 시켜 고속 성장을 했습니다. 그 결과, 소수의 사람들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방법이 요즘도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시대 사람들입니다.

이어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공부할 책은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안소니 퀸이 주연한 영화로도 유명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나’와 ‘조르바’ 입니다. ‘나’는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를 좋아하는 35세 지식인이고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65세 자유인입니다. 둘은 우연히 만나 함께 사업을 시작합니다.

소설 속의 ‘나’가 ‘조르바’를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조르바에게는 확신에 찬 손과, 신선함으로 가득한 마음, 마치 내면에 자신의 영혼보다 더 높은 힘을 가지고 있는 듯, 자신의 영혼을 놀려 대는 사나이다운 멋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창자보다 더 깊은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구원인 듯한, 거칠고 호쾌하고 껄껄대는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반해 ‘나’가 묘사하는 ‘나 자신’은 정반대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많은 순간, 최고의 미친 짓을, 삶의 본질을 ‘행하라’고 소리치는 내용을 꼭 붙잡고, 그렇게 하지 못한 내 삶이 부끄러웠다.”

제 인생은 ‘나’와 ‘조르바’ 중에 어디에 더 가까울까요? 저는 평생 ‘나’처럼 공부를 좋아했고 늘 조심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이가 들면 언젠가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런 삶을 동경해 왔습니다. 이제 조르바의 나이에 가까워져 인생을 돌아보니 저는 ‘나’에서 한 발짝도 ‘조르바’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35세 나’는 ‘65세 조르바’를 보고 결심합니다.

“나는 속으로 내 삶의 행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 영혼아. 너는 지금까지는 그림자를 보고 만족했지만 이제 나는 살아있는 육신을 찾아 나설 거야!’라고 속삭였다.”

저도 살아가면서 여러 번 이런 결심을 했었습니다. ‘소설 속 나’는 삶의 행로를 바꿀 구체적인 방법을 정합니다.

“조르바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크레타의 온 두 가지 목적을 확정한다. (1) 모든 형이상학적인 말을 내려놓고 자유로워지기. (2)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 사람들과 진정으로 사귀기.”

‘나’는 ‘조르바’의 장점을 나름대로 분석합니다.

“‘이 사람은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머리가 타락하지 않았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많은 것을 보고, 행하고, 겪으면서, 정신은 열리고, 마음은 넓어지고, 태초의 호기를 잃지 않았구나.”

‘조르바’는 ‘나’에게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설명합니다.

“난 지나간 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요. 미래의 일도 신경 쓰지 않지요. 지금, 바로 이 순간. 그것만 신경 씁니다. 난 스스로 이렇게 묻죠. 조르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잔다. 그럼 잘 자라! 조르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일한다. 그럼 열심히 일해라! 조르바, 지금은? 여자를 껴안고 있다. 그럼 그 여자를 꼭 껴안아라!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려! 이 세상에는 그녀와 너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신나게 즐겨라!”

많이 듣던 이야기입니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호라티우스의 시에 등장한 표현으로 영어로는 ‘Seize the day 현재를 잡아라’입니다.

사람들은 호라티우스가 <카르페 디엠>을 노래한 이후 늘 <카르페 디엠>을 꿈꾸어 왔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이 꿈은 늘 좌절되었고, 그래서 <카르페 디엠>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이룰 수 있는 일처럼 보이지만 막상 한 번도 제대로 실행해보지 못한 일. 그것이 바로 <카르페 디엠>입니다.

조르바 식으로 말해보겠습니다. “조근호,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월요편지를 쓰고 있다. 그럼 열심히 써라!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려! 이 세상에는 월요편지 쓰는 일 이외에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월요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여러 가지 잡생각이 머리를 맴돕니다. 저는 평생 <대일학사 학생>으로 살아왔습니다. 늘 경쟁을 의식하였고 맨 앞자리에 앉으려고 기를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이 순간>, 잡생각이 많습니다.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그 대가로 대일학사 학생들은 <지금, 이 순간> 대신 <성공>을 거머쥐었습니다.

반대로 ‘조르바’는 ‘나’와 함께 추진하던 사업에서 실패합니다. 그래도 그는 개의치 않습니다.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깁니다. 실패했지만 해안에서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춤을 춥니다.

<성공>과 <지금, 이 순간>은 양립되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공을 꿈꾸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나 봅니다. 그러나 성공했던 그렇지 않던 모든 사람들은 삶의 끄트머리에 서면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조르바’가 헤어지기 전에 ‘나’에게 마지막 조언을 합니다.

“대장에게 뭐가 부족한 것이 있소? 돈도 있겠다, 머리도 좋겠다, 몸도 튼튼하고, 사람도 좋고, 대장에게는 부족한 게 하나도 없수다. 아무것도 아쉬운 것이 없지! 딱 한 개만 빼고! 그건 미친 짓을 벌이는 광기요. 광기란 말이요.”

제 평생에 광기에 사로잡혀 살았던 시절이 있었을까요? ‘조르바’는 우리에게 그 시절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꿈틀거리는 내면의 광기를 만나게 될까요? 오늘 못 만난다면 그 언제 만나게 될까요?

‘조르바’가 부럽긴 하지만 ‘조르바’처럼 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6.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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