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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번째 편지 - 제주에서 만난 벚꽃



사실 지지난 주 토요일 친구 네 부부가 전남 구례 있는 산수유 마을을 찾아가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한 부인이 오미크론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결국 그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남도에 가서 봄을 일찍 맞이하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바람난 처녀처럼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지난 주말 제주도 골프 여행를 가기로 하였습니다.

어머님 병간호로 고생하는 동생에게 휴식을 줄 겸 같이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여행 직전에 동생이 오미크론에 걸리는 바람에 아쉽게도 저와 집사람만 골프 여행을 떠났습니다.

토요일 아침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서울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차를 렌트하여 표선으로 가는 길에 벚꽃이 만개하였습니다. 어느 길인가 벚꽃 터널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서울은 이제 개나리꽃이 필까 말까 하는데 이곳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늘 벚꽃이 하나둘 피다가 만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상례였는데 갑자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만개한 벚꽃을 보았습니다.

별세상에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골프장까지 가는 길에 온갖 꽃들이 여기저기 울긋불긋합니다. 골프장에 도착해 옷을 차려입고 코스에 나서니 또 벚꽃들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우리 부부만 보기 아깝습니다.

시인 안재동은 벚꽃의 자태를 이리 노래합니다. “천지에 저뿐인 양/ 옷고름 마구 풀어 헤친다/ 수줍음일랑 죄다/ 땅 밑으로 숨기고/ 백옥같이 흰 살결 드러내/ 하늘에 얼싸 안긴다/ 보고 또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자태” 싫증은커녕 벚꽃에 혼이 빠져 여기저기 두리번거립니다.

저는 춘심이 발동하여 몇몇 친구들에게 전화를했습니다. ”야! 여기 너무 멋있다. 그냥 비행기 표만 끊어서 내려와. 그러면 모든 것은 내가 해결할게.” 그러나 갑자기 주말에 제주에 오기란 쉽지 않습니다.

결국 한 친구가 저의 꼬임에 빠져 제주행 비행기 표를 샀습니다. 이제 봄꽃을 같이 구경할 친구도 내려오고 있으니 봄꽃을 즐기며 골프 칠 일만 남았습니다. 꽃은 벚꽃이 제일 많지만 다른 꽃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꽃은 동백꽃입니다. 동백꽃은 이미 절반쯤 져서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붉은 동백꽃만 있는 줄 알았는데 흰 동백꽃도 있고 분홍 동백꽃도 있습니다.

시인 김초혜는 떨어진 동백꽃과 매달린 동백꽃을 이렇게 바라보았습니다. “떨어져 누운 꽃은/ 나무의 꽃을 보고/ 나무의 꽃은/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그대는 내가 되어라/ 나는 그대가 되리”

떨어지고 있는 꽃은 동백꽃만이 아닙니다. 목련도 흐드러지게 핀 나머지 이제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은 이제 필 차례인데 제주의 목련은 절정을 지나 피고 지는 자연의 섭리를 밟아 가고 있습니다.

시인 정연복은 그 섭리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피고 지는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요/ 한 번 피면/ 또 한 번은 지는 것/ 피고 지는 일/ 허망하다 말하지 말아요/ 그게 목숨의 일인 것을”

한참 절정의 꽃은 유채꽃인 것 같습니다. 골프장 한 켠에 노란 유채꽃 정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주의 봄’ 하면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진 평원의 장관이 떠오르는데 작은 유채꽃 정원을 보니 앙증맞습니다.

꽃구경하느라 골프는 저만치 가 있습니다. 봄꽃의 대표격인 개나리와 진달래를 찾아봅니다. 때늦은 개나리가 일부 보이고 벌써 꽃이 진 자리에 이파리가 이미 꽤 돋아 있습니다. 진달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때 카톡으로 선배가 남산의 꽃 사진을 한 묶음 보내왔습니다. 사진 속 대표 꽃은 개나리입니다. 사진 속 개나리꽃은 절정입니다. 아마 이번 주 서울의 봄은 개나리가 점령하고 있는 듯합니다.

시인 이해인의 눈에는 개나리가 이렇게 보이나 봅니다. “눈웃음 가득히/ 봄 햇살 담고/ 봄 이야기/ 봄 이야기/ 너무 하고 싶어/ 잎새도 달지 않고/ 달려나온/ 네 잎의 별꽃/ 개나리꽃”

이제 제주부터 시작한 대한민국의 봄은 서울까지 점령할 기세입니다. 제주에서 만난 봄꽃들은 저희 부부와 함께 상경할 것입니다. 아마 이번 주말쯤이면 서울에도 벚꽃이 피기 시작할 것입니다.

벚꽃 하면 가슴에 떠오르는 단어는 <어머니>입니다. 작년 월요편지를 보니 작년 4월 1일 제가 쓴 하이쿠에 어머님이 계십니다.

“어머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100세까지 6년/ 하루하루/ 날을 셀 수 있을 만큼의 적은 시간/ 벚꽃이 여섯 번/ 피고 지는 시간/ 어머님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4월 6일 하이쿠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어제는 어머님을 모시고/ 벚꽃 구경을 하였다/ 매년 해오는 행사지만/ 올해는 더욱 마음 졸였다/ 토요일 하루 종일 봄비가/ 주룩주룩 내렸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런 걱정을 하였습니다. 내년에도 어머님을 모시고 벚꽃 구경을 할 수 있을까? 그 걱정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병원에 누워계시는 어머님, 입원 중에 오미크론이 걸려 고생하시는 어머님.

어머님에게 어쩌면 작년의 벚꽃 구경이 마지막 구경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휑합니다. 제주에서 보는 이 흐드러진 벚꽃도 우리 각자에게 언젠가 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기쁜 마음으로 벚꽃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4.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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