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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번째 편지 - 나훈아 콘서트에서 만난 [공]



친한 선배 부부의 초대로 지난 토요일 저녁 저희 부부는 나훈아 콘서트 "Again 테스형"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2020년 9월 14일 자 월요편지 '나훈아의 <테스형>'에서 "<테스형>은 그저 트로트가 아닙니다. 서양을 이천사백 년간 지배해온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부드럽게 무너뜨리는 일대 사건입니다. 나훈아는 이 노래로 진정한 철학자가 되었습니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후 때때로 나훈아가 작사한 노랫말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냥 쓸 수 있는 가사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삶의 깊이와 철학적 의미가 들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깊이 있는 가사를 쓸 수 있을까?

콘서트에서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습니다. 그리고 41년째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나훈아의 이야기입니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그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제가 노래 <공>을 작사하고 다시 읽어보니 가사가 너무 좋았습니다. '내가 우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었을까' 스스로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나훈아가 <공>을 부릅니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 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나훈아는 우리 모두 바보처럼 살고 있다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제법 똑똑하게 산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착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나 봅니다. 독일 바젤대 교수 제바스티안 브란트가 1494년에 쓴 책 <바보배>가 생각납니다.

<바보배>라는 개념은 플라톤의 책 <국가> 6권에 나오는 '귀머거리에 시력이 좋지 않은 선장 때문에 불안을 느낀 선원들이 서로 배를 운전하겠다고 하면서 발생하는 배 위에서의 혼란'을 상징합니다.

제바스타안은 책을 쓴 목적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장의 판화를 <바보 거울>이라고 부르려고 하네. 누구든 거울을 보면 낯익은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네. 자신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 자신이 내세울 것 없는 하찮은 존재이고, 세상에 결점 없이 사는 인간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네."

제가 <바보 거울>을 보고 섬뜩해진 몇 대목들입니다.

"입과 혀를 잘 간수하면 영혼과 마음자리가 평온하다네. 딱따구리는 요란을 떨어서 새끼들을 드러낸다네."

"노여움을 못 이겨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은 머잖아 죄를 짓고 실수를 저지른다네. 인내는 재앙을 피하고, 다정한 말 한마디가 굳은 마음을 풀어주네."

"적은 소유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네.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못 가져서 안달이네. 재산이 두둑하면 절로 오만방자해진다네. 돈 많고 겸손한 부자를 본 적이 있나?"

나훈아는 살면서 저절로 <바보 거울>을 만난 모양입니다. 그는 가왕이 아니라 노래하는 현자입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저는 바보가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바보는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이것저것 막 따지는 것 모르지 않습니까? 바보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는 것이 이 세상 사는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일기책에 적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훈아의 말처럼 헛똑똑이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보배 승객들 중에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똑똑하고 사리 분별에 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보 거울>에 비추어 보면 모두 어리석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네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헛똑똑이의 삶을 내려놓고 바보처럼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삶. 너무 많이 생각하는 삶을 멈추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는 삶. 그런 삶을 살자고 나훈아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나훈아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는 두 가지 삶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현자라고 착각하고 사는 바보들의 삶"과 "자신이 바보인 것을 깨닫고 사는 현자의 삶". 저는 전자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나훈아는 이야기를 마치고 담담히 노래를 부릅니다.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입니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려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나훈아는 '어느 날 낙엽 지는 소리'를 듣고 바보같이 살아온 세월을 깨달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텅 빈 마음'에서 노래 <공>의 가사를 떠 올렸나 봅니다. 나훈아는 절규합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바보처럼 바보처럼 바보처럼"

저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그 삶 역시 바보처럼 산 삶입니다.

"잃어버린 것이 혹시 아닐까?/ 늦어버린 것이 혹시 아닐까?/ 흘려버린 세월을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1982년 김도향은 읽어버린 것에 대해, 늦어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거기서 멈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움'에서.

그러나 2003년 나훈아는 이를 극복합니다. 바보같이 산 인생을 깨달은 나훈아는 <공>에서 그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이미 늦어도/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김도향처럼 안타까움에 머물지 않습니다. 나훈아는 바보 같이 산 삶도 그런대로 살만했다고 긍정합니다. 깊은 깨달음에서 나온 긍정입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니 자신은 어떻게 살 것인지 담담한 어조로 노래합니다.

"살다 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공, 비움은 나훈아가 이야기한 바보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는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생각을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한 말들을 후렴구에 넣었습니다.

"띠리리 띠리 띠리리 띠리리 띠리 띠리리/ 띠리리 띠리 띠리리 띠리리 띠리 띠리리"

나훈아의 '띠리리 띠리'에는 그가 우리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그 무엇들이 다 담겨 있었습니다. '띠리리 띠리"를 마음속으로 따라 하며 다시 한번 나훈아는 노래하는 현자임을 확인하였습니다.

<again 테스형>이 아니라 <again 현자 나훈아>였습니다.

콘서트장을 빠져나올 때 초대해주신 선배가 한마디 하십니다. "조 대표, 오늘 초대한 것은 월요편지에 나훈아에 대해 한 번 더 쓰라는 뜻이야."

오늘 월요편지는 초대에 대한 화답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12.2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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