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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번째 편지 - I am sorry



"우리의 삶이 하루만 남아 있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게 될까요?" 이런 질문은 삶의 가치를 재확인하기 위해 하는 질문입니다. 오랜만에 주말에 다시 본 스릴러 미드 <24시> 시즌 2에서 이런 상황을 만났습니다.

<24시>는 미국의 대테러 조직 CTU(Counter Terrorist Unit) LA 지부의 요원 잭 바우어가 테러를 막기 위해 24시간 맹활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즌 2에서 미국은 핵 테러 위협에 휩싸입니다. 오늘 중으로 핵폭탄이 LA에서 터진다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시즌 1에서 테러범에 의해 아내가 죽어 CTU를 사직하고 방황하며 살고 있는 <잭 바우어>에게 간곡히 복직을 요청합니다. 결국 그는 수사팀에 합류합니다.

그런데 CTU 수사 도중 LA 지부장 <조지 메이슨>이 핵무기 제조 현장을 급습하다가 다량의 플루토늄 방사능에 노출됩니다. 조지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하루', '하루'면 그는 죽습니다.

조지는 의사에게 남은 하루가 어떻게 되는지 묻습니다. 의사의 설명에 조지는 멍해집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다시 대테러 수사에 복귀합니다. 잭은 조지가 구토를 멈추는 약을 먹는 것을 보고 그의 플루토늄 흡입 사실을 알아챕니다.

잭 : 얼마나 살 수 있대요.

조지 : 내일 이맘때쯤이면 죽어 있을 거야.

잭 : I am sorry. 당신은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해요.


이 말을 듣고 조지는 2년간 연락 없이 지내던 아들에게 전화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습니다.

조지 : 오늘 널 만나고 싶다.

아들 : 안 돼요.

조지 : 중요한 일이야.

아들 : 아빠를 보고 싶지도 않고 게다가 난 바빠요.


아들은 전화를 끊어 버립니다. 하는 수없이 조지는 직원을 시켜 아들을 데려옵니다. 반발하는 아들에게 몇십만 불이 든 자신의 계좌번호를 건넵니다. 아들은 돈이 필요 없다며 뭐 하자는 것이냐며 대듭니다.

조지 : 난 죽는다.

아들 : 암인가요.

조지 : 비슷한 거야.

아들 : I am sorry.


아들은 아버지를 끌어안고 오열합니다. 부자는 이렇게 화해합니다.

조지 : 넌 착한 아이야. 내가 널 너무 망치지 않았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무엇인가 하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 아들을 망치는 일이 되고 마는 이 아이러니는 왜 발생할까요.

조지는 점점 아파집니다. 이를 눈치챈 동료 토니는 조지에게 건강 상태를 묻습니다. 조지는 플루토늄에 노출된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토니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I am sorry.

이번에는 여자 동료 미셀이 조지의 상태를 알아 버립니다. 그녀의 첫 반응은 역시 "I am sorry"입니다.

조지 : 핵폭탄이 터지지 않는다면 내일은 뭘 할 건가. 생각해 보았나.

미셀 :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요.

조지 : 다시 이곳으로 출근할 테지?

미셀 : 물론이죠. 왜 안 그러겠어요?

조지 : 글쎄, 자넨 이 직업에 만족하나? 난 오래전에 교사가 되고 싶었지. 왜 교사가 안 됐는지 알아? 국방부에서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해서 맘을 정한 거지. 겨우 연봉 5천 달러 더 받으려고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든 거야. 그게 내가 치른 대가였어.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왜 검사가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는지 아니면 상황에 이끌려 검사를 선택했는지. 30년을 지나고 보니 전자는 아니었습니다. 조지는 계속 이야기합니다.

조지 : 미셀, 난 대단한 조언자는 아니지만 상황이 이러니 말인데 자신의 삶이 그냥 찾아와 주길 기다리진 마. 자넬 행복하게 해 줄 만한 것을 찾아보란 말이야. 다른 모든 것은 그냥 소음에 불과해.

'소음'이란 표현이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하고 '소음' 속에서 분주히 왔다 갔다 하다가 인생이 끝나고 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미셀은 조지의 말을 듣고 행복을 찾아 나섭니다. 자신이 마음으로만 사랑하고 있던 동료 토니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어쩌면 오늘 핵폭탄이 터져 모두 죽을지 모르는 상황, 수사로 정신없는 토니에게 말합니다.

미셀 : 때가 안 좋긴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몰라서요. 나와 데이트하고 싶으면 말하세요.

토니 : 미셀

미셀 : 그저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토니 : 나도 같은 느낌이야.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한 이야기는 우리가 LA를 핵폭탄으로부터 구해내면 함께 저녁 식사하고 영화 보러 가자는 얘기지.

미셀 : 미안해요. 곤란하게 만들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토니 : 아니 오히려 난 기뻤어.


둘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행복한 미소를 교환합니다. 왜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이렇게 솔직해지는 것일까요. 평소에 우리는 가면을 벗고 감정이 이끄는 대로 상대방을 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조지는 건강이 점점 나빠지자 토니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사직합니다.

토니 : 제가 해 드릴 일은요.

조지 : 내일 이 일이 다 끝나거든 날 대신해 모두에게 인사해 줘. 그리고 함께 일해서 영광이었다고 말해줘. 모두 훌륭하게 일을 해줬다는 말도


조지는 마지막 순간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 역시 평소에 하였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모두 조지처럼 삽니다. 평소에 화내고 불평하고 비난합니다. 죽음 앞에선 모두 부질없는 일인데 말입니다.

조지 : 오늘 아침에 자네한테 이 일을 빨리 그만두고 싶다고 했었지. 이젠 그 반대야.

죽음 앞에선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핵 위협 상황은 점점 심각해집니다. 다행히 수사가 진전이 있어 핵폭탄을 찾았습니다. 문제는 해체할 수 없는 상태. 누군가 작은 비행기에 핵폭탄을 싣고 사막의 구덩이에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버려야 해서 조종사는 탈출할 수 없습니다.

주인공 잭 바우어가 자진해서 조종사 임무를 맡습니다.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조지가 자신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고 비행기 조종면허도 있다며 자신이 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잭은 조지의 건강 상태로 보아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결국 잭이 핵폭탄이 실린 비행기를 조종합니다. 잭은 비행기 안에서 평소 사이가 나빴던 딸에게 전화를 걸어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잭의 상황 설명을 들은 딸은 오열합니다.

딸 : I am so sorry.

잭 : 얘야, 뭐가 미안하다는 거냐?

딸 : 모든 게 다요. 난 아빠한테 너무 못되게 굴었어요.

잭 :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됐든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난 네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 네가 변하길 원하지 않아.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널 사랑해.

딸은 흐느낍니다. 잭은 묻습니다.

잭 : 아직도 내 말 들리니?

딸 : 네

잭 : 난 네가 당당하게 살길 바란다. 행복해다오. 네게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죽은 네 엄마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그런 사람으로 크면 좋겠다. 알겠지?

딸 : 약속할게요.

잭 : 이젠 여기 일에 집중해야겠구나. 시간이 없어.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널 사랑해. 난 늘 너와 함께 있다는 걸 잊지 마. 꼭 기억해라.

딸 :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잭 : 나도 널 사랑한다. 얘야. 잘 있어라.


이렇게 부녀는 눈물의 이별을 합니다. 저도 딸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빠는 잭과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행복해다오." 우리의 바람입니다.

잭은 목표지점을 향해 비행합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인기척이 있습니다. 총을 꺼내 들고 확인하는 순간, 조지가 나타납니다.

조지 : 기내 서비스도 엉망인데 쏘진 마.

잭 :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조지 : 자네에게 줄 게 있어서 가져왔어. 낙하산이야. 어려운 비행 구간은 끝났잖아. 이젠 내가 할 수 있어.

잭 : 정말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지 : 그래.

잭 : 고마워요. 조지. 제가 해 드릴 일은 없나요.

조지 : 모든 건 다 처리하고 왔네. 시간이 되었네. 낙하하게.

잭 : 네.


잭은 탈출하고 조지는 비행기를 몰고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추락합니다. 이렇게 조지의 하루 인생은 끝이 납니다. "우리의 삶이 하루만 남아 있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게 될까요?" 그때 각자 해야 할 일은 서로 다르겠지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I am sorry"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우리들은 "I am sorry"를 외칩니다. 그러나 그 말을 평상시 가족관계에서, 직장동료 사이에서, 친구들 간에 많이 사용한다면 세상은 훨씬 행복한 곳이 될 것입니다.

"I am sorry."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11.29.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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