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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번째 편지 - 법조인 출신 대통령 후보의 특성



법대에 들어가 처음 배운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라는 법언이었습니다. 20대 젊은이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기에 이것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 후 법대에서 수많은 지식을 배웠지만 이것만큼 강렬하게 법대생의 머리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법학을 공부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법조인의 길을 걸으면서 법조인의 머릿속에는 항상 <정의>가 최우선의 가치였습니다. 평생 자신의 하는 일의 기준을 <정의>로 삼을 수 있는 직업인, 그들이 법조인입니다.

그 법조인들이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 두 분이 그들입니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법조인 대통령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저는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법조인으로 오랜 지낸 분들은 직업적 특성이 있지 않을까, 정치인으로 변신하여도 법조인의 직업적 특성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 것입니다.

정치학 고전인 영국의 헨리 테일러 경이 1836년 쓴 책 <정치가의 조건>을 보면 법조인 출신 정치가의 특성을 분석한 대목이 나옵니다.

"법조인 출신 정치인의 장점은 논리적으로 추리를 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매우 복잡하여 지나치게 이론에 치우친 추리를 하면 판단을 그르칠 위험이 있다. 그들이 모든 문제를 지나치게 엄밀하고 꼼꼼히 고찰하면 솔직한 관찰이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결점은 문제의 모든 면을 한결같이 중시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부분을 버리고 판단 가능한 범위 안에서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견해가 필요하다."

헨리 테일러의 관점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180년 전에 법조인 출신 정치인의 특성을 고찰하였다는 점이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저도 오늘 법조인 정치인의 특성을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누구를 선택하느냐는 각자의 몫이지만 법조인 출신 정치인의 약점과 강점을 한번 살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되어 조심스러운 분석을 하는 것뿐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 드리지만 이 분석은 그저 저의 관점일 뿐입니다. 그러면 먼저 법조인 출신 정치인의 약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미래와 과거

법조인은 평생 과거의 문제와 씨름하며 살고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도 과거의 일을 파헤치고, 법원의 재판도 과거의 일을 대상으로 하고 변호사도 과거의 일에 대한 의뢰인의 입장을 변호합니다.

저는 강의 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법조인은 늘 목을 돌려 뒤를 보고 삽니다. 시선이 과거에 있습니다. 미래를 보라는 것은 고개를 앞으로 돌리라는 뜻입니다. 굳어진 목을 갑자기 앞으로 돌리면 목이 부러집니다."

직업적 특성상 법조인은 미래에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꿈꾸는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법조인의 약점인 과거 시각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법조인 정치인의 숙제입니다.

2. 변화와 안정

십수 년 전 검찰총장 내정자 기자간담회에서 "검사 시보로 일하던 1976년 이후 지금까지 검찰에서 변한 것이라곤 타자기 자리에 워드프로세서가 놓이고 나무 책상이 철제 책상으로 바뀐 것 외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법조인은 변화에 늦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야 법적 안정성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기업, 단체, 국가 등은 살아남기 위해 항상 스스로 혁신을 합니다. 변화에 늦은 법조계는 번번이 타율적 혁신을 강요당해왔습니다.

대통령은 국가를 혁신하여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법조계 출신 두 후보가 혁신을 어떻게 추진할지 궁금합니다.

3. 창조와 평가

법조인은 창조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세상 대부분의 조직은 가치가 있는 물건을 만들어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농업과 공업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법조인들은 그들이 창조한 일을 평가할 뿐입니다.

정의의 잣대로 창조된 일을 평가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창조가 우선입니다. 평가는 그다음입니다. 법조인들은 때로 평가의 강력한 우월성 때문에 이를 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창조하여야 합니다. 평가에 익숙하게 훈련받은 법조인 출신이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까요.

4. 정상과 비리

각 분야는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건설회사는 멋진 건축물을 만들어 냅니다. 공무원은 대한민국을 돌아가게 해 줍니다. 연예인들은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각 분야마다 아름다운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이것보다는 건설비리, 공직비리, 연예계 비리라는 말에 더 익숙합니다. 평생 이것과 싸웁니다. 그러나 보니 정상이 가진 가치와 아름다움은 작게 보이고 드물게 발생하는 비리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대통령에게 비리 척결은 중요한 임무이지만 이것만으로 국가가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야에 시선이 더 오래 머물러야 합니다. 두 분은 이런 법조인의 한계를 당연히 극복하리라 믿습니다.

5. 설득과 경청

법조인은 대부분 말을 잘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무기는 글과 말밖에 없습니다. 법학 교육을 할 때 이 점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킵니다. 설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추궁도 곧잘 합니다.

검사 시절 제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묻는 말에 답만 하세요." 일 것입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산 만큼 많았을 것입니다. 변호사를 해보니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입도 중요하지만 귀도 중요합니다. 대통령 선거 때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많은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됩니다.

법조인 출신 정치인의 약점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강점이 훨씬 많습니다. 그 때문에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 법조인 출신이 많습니다.

2대 존 애덤스, 3대 토마스 제퍼슨, 6대 존 퀸시 애덤스, 8대 마틴 밴 뷰런, 11대 제임스 포크, 13대 밀러드 필모어, 15대 제임스 뷰캐넌,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19대 러더퍼드 헤이스, 20대 제임스 가필드, 21대 체이스 아서, 23대 벤저민 해리슨,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30대 캘빈 쿨리지,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33대 해리 트루먼, 37대 리처드 닉슨, 38대 제너럴 포드, 42대 빌 클린턴, 44대 버락 오바마, 46대 조 바이든 등 모두 46명의 대통령 중 21명이 법조인 경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수한 사고력, 논리적 표현력, 강력한 추진력 등은 법조인 출신 정치인의 강점입니다. 특히 정의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법조인 출신 정치인의 최대 강점이고, 이 점 때문에 국민들이 열광하는 것입니다.

두 법조인 출신 대통령 후보들이 법조인으로서의 강점이 얼마나 잘 드러내는지, 또 반대로 약점은 얼마나 잘 극복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대선을 바로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이 주제로 월요편지를 쓸지 고민하다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11.9.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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