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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번째 편지 - HM 컴퍼니의 가을 소풍



혹시 서리풀공원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서초구에 사시는 분들이면 가보신 분도 있을 겁니다. 저는 서리풀 터널이 생긴 후 처음으로 서리풀 터널 쪽에서 시작하여 서리풀 공원을 산책하였습니다.

지난 목요일이 매달 회사에서 실시하는 마루파티 날이었습니다. 원래는 가을 볼링대회를 개최하려 하였지만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고 있는 상황이라 주최 조에서 파티 플랜을 급변경하였습니다.

"오늘 부득이하게 삼행시와 사진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유난히 하늘이 예쁜 오늘, 마루파티 시간 동안 각 사이트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가서 가을을 느끼며 삼행시와 예쁜 사진을 밴드에 올려 주시면 됩니다."

주최 조가 나누어 준 조들은 저마다 가을 소풍을 나섰습니다. 제가 속한 조는 임덕진 차장, 김선정 과장, 장수봉 매니저 등 네 명입니다. 4시 반쯤 서리풀 터널 앞에 도착해 소풍을 시작했습니다.

입구에서 모두 포즈를 취하면 사진 한 장씩을 찍어 봅니다. 아직은 정보사 부지에 대한 마무리 작업이 끝나지 않아 서리풀 공원 초입은 약간 어수선했습니다. 조금 더 가면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발을 내딛습니다.

4시 36분 첫 삼행시가 밴드에 올라왔습니다.

"가을을 찍다 보니 얼굴이 두더지처럼 시커멓게 나왔네요. 그래서 <두더지>로 시국에 맞는 삼행시 올려봅니다.

두: 두 분이신가요?
더: 더 오실 분 계신가요?
지: 지금은 18시 전이라 4인까지 가능합니다
."

젊은 이은린 매니저의 재치가 돋보입니다.

4분 후인 4시 40분에 잘 생긴 세 명의 직원들 사진과 함께 삼행시가 밴드에 올라왔습니다.

"<코로나> 삼행시입니다.
코: 코앞으로 다가온 2021년 연말은, HM Company에 한 편의
로: 로맨스 영화 해피엔딩처럼 좋은 일만 가득하길
나: 나지막이 소망하고 기도해 봅니다
"

제 마음을 읽었는지 제 마음과 똑같은 삼행시를 올려 주었습니다.

우리 조는 서리풀 공원이 시작되는 나무데크 입구에 섰습니다. 서리풀 공원을 조성하며 만든 이 나무데크는 <빠른 길>과 <여유롭게 가는 길> 두 가지 중 하나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희 팀은 당연히 여유롭게 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서로 앞서거나 뒤서거니 하면서 사진을 찍어 줍니다. 호젓하게 걸어 보기도 하고, 한껏 폼을 내며 자세도 취해보고, 사진 찍는 사람을 배려해 엄지 척도 해줍니다. 그러나 삼행시는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금방 밴드에 무엇인가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삼행시가 아니라 이행시입니다. 남재민 책임이 베테랑답게 썼습니다.

"<하늘> 이행시 갑니다.

하 : 하다 보니

.

.

.

늘 : 늘더라
"

그렇지요. 업무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하면서 늡니다. 최고의 직무교육은 연수원 강의가 아니라 현장 업무 반복입니다. 나무데크 정상에서 바라보는 법원 단지는 맨해튼 같습니다. 마침 석양에 비친 건물 표면은 광택제로 닦아 놓은 듯합니다.

정상에 올라왔습니다. 예쁜 화분들로 이곳은 꽃동네입니다. 화장실이 있는 이 공간을 꽃이 뒤덮자 사진 찍기 명소가 되어 버렸네요. 우리팀도 모델을 바꿔 가며 꽃을 배경으로 여러 가지 사진을 찍었습니다. 


밴드에는 이행시, 삼행시가 속속 올라옵니다. 저는 직원들이 이렇게 재치 있는 줄 몰랐습니다. 깜짝 놀랄 시들이 많습니다.

"<가을>
가 :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
을 : 을마나 맛있게요
"

군침이 도는 파스타 사진과 함께 공국주 책임이 올렸습니다. 이용훈 전무도 곱게 물든 나뭇잎 사진과 함께 이행시를 올렸습니다.

"<단풍>
단: 단풍은 아니지만
풍 : 풍경이 예뻐서…
"

이행시가 사진과 이리 잘 어울릴 수 없습니다. 장동근 매니저가 올린 삼행시는 어른스럽습니다.

"<고구마>
고 : 고민이 있을 땐
구 : 구석에 있지 말고
마 : 마! 나와라 형이 술사께
"

드디어 우리조 임덕진 차장이 시재를 뽐냅니다.

"<소풍날>
소: 소리 없이 가을이 왔습니다.
풍: 풍경 좋은 날에 먹을 것 마실 것도 없이
날: 날만 그저 푸르릅니다
"

그러고 보니 우리 조는 먹을 것 하나 준비하지 않고 소풍을 떠났네요. 춘천에 있는 연구소 팀 박성미 매니저도 소식을 전해 줍니다.

"<춘천>
춘: 춘곤증은 이미 지난 줄 알았는데
천: 천천히 눈이 감기는 걸 보니 커피 한잔하겠습니다~
"

여의도 팀도 질세라 여의도로 초대합니다.

"<여의도>
여 : 여의도에 오셔서 저와 함께
의 :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봐요.
도 : 도시락 사드릴게요!!
"

그러는 사이 우리 조는 서리풀 공원을 지나 몽마르트 공원까지 왔습니다. 이 길은 서래 마을 살 때 많이 다닌 길입니다. 이 길이 서리풀 터널 개통과 함께 서리풀 터널부터 쭉 이어져 멋진 산책로가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몽마르트 공원의 나무들도 두 배는 큰 것 같습니다.

5시 23분 우리 조 김선정 과장도 삼행시를 올렸습니다.

"<서래풀>
서 : 서래마을까지 왔어요
래 : 래디오 음악을 들으며 아직도 산책중이에요
풀 : 풀과 나무와 벌레와 함께…
"

서래 마을과 서리풀 공원이 짬뽕이 되어 서래풀이되었네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뭐든지 허용되는 소풍 길인데요. 이제 이 소풍도 마무리 단계입니다. 우리 조는 몽마르트 공원을 지나 누에다리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반포 대로로 내려서 출발 지점인 서초역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이때 여러 편의 삼행시가 달팽이 사진과 함께 밴드에 올라왔습니다.

"<달팽이>
1. 감성 ver.
달 : 달 밝은 이 밤
팽 : 팽이놀이하는 아이들 웃음소리 들려오니
이 : 이제 완연한 가을이구나


2. 비판 ver.
달 : 달팽이도 자기 집은
팽 : 팽개치지 않듯이
이 : 이처럼 각자의 역할을 돌아볼 시간


3. 희망 ver.
달 : 달려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팽 :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한 이곳에서
이 : 2022년 우리 함께 힘을 모아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아직 97개쯤 더 지어낼 수 있으나 자제해봅니다."

아니 이렇게 재치 있는 삼행시를 세 개나 만들다니 이수민 매니저가 댓글을 달았습니다. '양해원 이사님 혹시 삼행시 학원 다니시나요.'

우리 조의 가을 소풍은 수제 햄버거 집에서 끝이 났습니다. 모두 가을을 잘 맞이 한 듯합니다. 서로 다른 세대, 성격, 취향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회사 생활 속에서 오늘 같은 행복 찾기가 작은 활력소가 되길 기원합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10.5.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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