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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번째 편지 - 살아 꿈틀거리는 인사동 데이트



오랜만에 인사동을 찾았습니다. 아내 친구의 아들이 전시회를 한다고 하여 찾게 된 것입니다. 아내가 카탈로그를 주며 가보지 않겠냐고 했을 때 그다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진 작가들의 전시회는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한 것이 그간의 경험이니까요.

그런데 카탈로그를 보고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예작품이었습니다. 이 작가도 도예의 기본인 달항아리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달항아리와 다른 것은 항아리 표면에 작은 네모난 구멍을 수없이 뚫고 그 구멍을 색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메웠습니다.

그리고 그 달항아리 아래 전구를 넣어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게 만든 것입니다. 그저 덩그런 달항아리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달항아리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전시회를 둘러보고 아내 친구와 셋이서 근처 커피숍을 갔습니다. 인사동의 그 유명한 쌈지길 건너편에 들어선 안녕인사동이라는 건물 5층 소진담이라는 카페였습니다. 건물 5층에 있는 카페란 곳이 그렇고 그런 곳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베란다였습니다. 오륙십 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뻥 뚫린 베란다에는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앉거나 비스듬히 누워 일요일 오후를 편안하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간 수없이 인사동을 가보았지만 인사동의 옥상에서 인사동을 내려다본 기억은 없습니다. 3면이 뚫린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는 인사동 하늘 건물 그리고 거리는 그저 정물화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건물과 사람은 살아 인사동을 숨 쉬게 하고 있었습니다.

인사동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인사동의 숨결이 바람이 되어 뺨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인사동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제 인사동을 발로 느껴볼 때입니다. 아내 친구와 헤어져 아내와 데이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인사동 죽순이 부부처럼 손을 잡고 느릿느릿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내가 멈춰 선 곳은 머리띠를 파는 가게입니다. 노상 진열대의 머리띠는 한 개에 6천 원, 두 개에 만 원입니다. 너무 싸다고 느꼈지만 결국 이것이 호객의 방편이었습니다. 머리띠 머플러 선글라스까지 쇼핑은 계속되었습니다.

가게를 매의 눈으로 훑다가 멈춘 곳은 키테틱 예술품을 파는 가게입니다. 키네틱은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무동력으로 움직이는 엔진도 있고 움직이는 그림도 있습니다. 신기하여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한 점을 사고 말았습니다. 기분 같아서는 큼직한 것을 사서 보란 듯이 거실에 걸어 놓고 싶지만 이것저것 따지다 제일 작은 것으로 타협하였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림을 볼 때와는 달리 살아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길 건너편에 개량한복집 돌실나이가 보입니다. 전에도 몇 번 사본 곳이라 믿음을 가지고 들어섰습니다. 저는 평소 골프 칠 때 개량한복을 입고 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습니다. 오늘 실행에 옮겨 보기로 했습니다. 요즘 골프 칠 때 입을 만한 윗도리와 바지를 골라 샀습니다. 아내도 덤으로 이것저것 고릅니다.

가게를 나서 몇 걸음을 걷는데 또 개량한복집입니다. 돌실나이와 어떻게 다른가 궁금하여 들어섰습니다. 눈에 띄는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개량한복 반바지입니다. 한복에는 원래 반바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물건이 있습니다. 입어보니 썩 잘 어울립니다. 오늘은 개량한복 쇼핑 날인가 봅니다. 양복에서 한복으로 바꾸었을 뿐인데 몸에 자유가 주어지고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 미묘하게 느껴집니다.

가게 문을 나서니 인사동에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바쁜 길손들은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저희 부부 같은 시간 부자들은 인사동 저녁을 조금씩 나누어 가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거리의 악사와 가수가 있는 인사동 한 모퉁이를 가지고 싶습니다.

전기 첼로를 연주하는 남자와 그와 특별한 관계인 듯한 여자 보컬. 그들이 만드는 연주와 노래는 자꾸 저를 그곳으로 이끕니다. 맹인견처럼 커다란 개가 연주를 다 안다는 듯 편하게 엎드려 있습니다.

그녀가 불러주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바로 이곳을 의미합니다. 놀라운 축복이 쏟아진 인사동 거리는 음악이 있어 낮의 분주함과는 전혀 다른 어둠과 빛이 느리게 살아 꿈틀거리는 것을 만나게 해 줍니다.

슬슬 시장기가 돕니다. 무엇을 먹어야 위장도 살아 꿈틀거릴까요. 아내 친구는 헤어지기 전에 미슐랭 별 하나를 받았다는 개성만두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곳으로 향합니다. 미슐랭 덕분인지 맛이 괜찮습니다. 이제 정말 몸이 살아 꿈틀거립니다.

아내와 한나절의 인사동 데이트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을 살아 꿈틀거리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삶이 흥분되는 것은 언제나 이런 살아 꿈틀거리는 경험을 할 기회가 있다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은 최근 언제 어디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경험을 하셨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9.13.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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