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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번째 편지 - 계획하지 않은 여행이 주는 즐거움



"여보 제주공항 근처에 정민이와 같이 점심 식사할 식당 한번 알아봐 주세요." 저희 부부는 지난주 토요일 뒤늦은 여름휴가를 제주도로 왔습니다. 그런데 사정상 아들이 하루 늦게 제주도에 오는 바람에 제주공항으로 아들을 픽업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예 제가 전에 가본 집이 있으니 한번 연락해 볼게요." 아내는 한정식을 잘한다는 옹기 밥상 식당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식당은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이전해 버린 것입니다.

다시 아내는 다른 식당을 물색하였습니다. 트립어드바이저라는 여행전문 사이트를 검색하더니 고집돌우럭 식당을 찾아냈습니다. 평점이 너무 좋다며 이곳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저도 동의하였습니다.

아내는 그 식당에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식당은 3시부터 4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고, 식재료가 소진되면 음식을 못 먹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래도 평점이 높아 그곳으로 선택하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오후 2시경 아들을 제주공항에서 픽업하였습니다. 그리고 계획한대로 고집돌우럭 식당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내가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식재료가 소진되어 음식을 드실 수가 없습니다." 식당으로부터 거절을 당한 것입니다. 플랜 B가 준비되어 있지 않던 저희들은 긴급히 식당을 검색하여야 했습니다. 아내는 다시 트립어드바이저를 활용하였습니다.

"여보 청어림 식당으로 가요. 후기가 참 좋네요. 거리도 여기서 멀지 않아요." 다행이었습니다. 헤매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습니다. 네비를 찍어 청어림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청어림 식당을 찾았지만 폐허 같았습니다. 영업을 그만둔지 상당 기간이 흐른 듯하였습니다. 후기를 보니 2019년도에 작성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세 번째 식당도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지는 못했습니다.

다들 기운이 빠졌습니다. 또 검색할 생각을 하니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눈에 띄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제주마음 식당. 간판에 갈치조림 등이 쓰여 있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치고는 음식이 맛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네이버에서 제주마음을 검색하더니 평점이 높다며 우리가 잘 들어 온 것 같다고 만족해하였습니다. 점차 평점과 후기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때늦은 점심을 먹고 우리 가족은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는 아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예약을 하지 않아 관람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매표소 직원에게 서울에서 왔다며 사정 사정을 하였습니다. 저희 사정을 딱하게 여긴 직원은 1시간 후인 4시 반에 관람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1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아내에게 근처의 카페를 검색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네이버를 검색하더니 평점이 매우 높은 카페가 있다며 그곳으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네비를 따라간 곳은 하멜 치즈였습니다. 비 때문에 가족들을 가게 앞에 내려주고 저는 한참을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맸습니다. 굵은 빗줄기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며 가게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오늘 만든 치즈케이크는 오전 11시 12분에 완판되었다고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오늘 가게를 오픈한 시각은 11시였습니다. 그러니까 12분 만에 현장판매는 동이 난 것입니다.

당황스럽고 약간은 화가 나 내일 예약하면 구입할 수 있냐고 하였더니 지금 예약하면 4일 후인 목요일 픽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이런 가게가 있나 싶어 네이버의 후기를 찾아보니 대단들 했습니다.

이곳 치즈케이크를 먹어보는 것이 제주를 찾는 목표인 양 적어 놓은 후기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멜 치즈케이크를 먹는 유일한 방법은 내일 아침 10시경부터 찾아와 줄을 서는 일이었지만 그럴 정성은 없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근처에 있는 다른 카페를 찾아 복수하는 기분으로 그곳의 치즈케이크를 사서 먹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를 오늘 다섯 번이나 하였습니다.

저는 여행할 때 모든 것을 계획하여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입니다. 그러나 저를 제외한 나머지 세 식구는 임기응변 스타일입니다. 오늘 상황은 제 타입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경험하였습니다.

만약 제 스타일대로 식당과 박물관을 미리 예약하였으면 저희 가족이 경험한 장소는 두 군데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임기응변 스타일로 여행을 하니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멜 치즈케이크는 절대로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생길도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계획하고 사는 제 인생은 우연히 만나는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 예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계획을 최소한만 하고 사는 삶은 우연의 연속일 것입니다. 그 우연은 계획하는 인생은 절대로 만날 수 없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것들이 늘 즐겁고 재미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서 제 인생에 가급적 우연적 요소를 많이 넣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년 동안 자신의 삶을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대로 산' 경험을 TED에서 강연한 Max Hawkins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모순적이게도 기계에게 결정을 맡긴 삶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살 때보다 더 자유롭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제 기호에 눈이 멀어 다양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컴퓨터의 결정을 따르는 것은 제 생활의 안락함을 벗어나 저와 너무 다르거나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외면하고 있던 인간적인 경험을 도전하게 해주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번 제주여행의 작은 경험은 저에게 그동안 제가 제 선택에 눈이 멀어 다양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했다는 자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떠신가요? 우연이 얼마나 개입하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9.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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