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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번째 편지 - 마루파티를 재해석하다



저희 회사에는 마루파티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회사의 특성상 직원들이 각 사이트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서로 만날 수 없기에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목요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마루파티라는 명칭 아래 서로 만나는 시간을 가져오고 있었습니다.

2012년 10월 25일 첫 번째 마루파티 이래 지난주 목요일 마루파티까지 매달 빠짐없이 10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마루파티의 모습을 전한 2012년 10월 29일 월요편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루파티 원칙입니다. 첫째, 마루파티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한다. 둘째, 파티 비용은 20만 원 내에서 한다. 셋째, 파티 맨은 4명이고 그 이외 사람은 고객이 된다. 넷째, 파티 맨은 준비에서 청소까지 모두 책임진다."

이 원칙하에 마루파티를 진행해 왔습니다.

마루파티에서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월요편지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2014년 9월 29일 월요편지에는 마루파티에서 만난 위빠사나 명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명상의 첫 가르침은 생각과 계획, 기억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알아차릴 때마다 즉시 그것을 놓아버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실제로 명상은 방황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에 집중하여 몸과 마음을 현재 순간으로 되돌리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지금 여기에 머물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저는 마루파티에서 여러 번 강의했었습니다. 그중 특별했던 강의를 2015년 3월 2일 월요편지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그냥 즐기십시오. 그런데 만약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행복해질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반응이 달라집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Happy Chance"를 외쳐보세요.

여러분의 반응은 분노, 불안, 우울에서 기대, 희망,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 집에 들어갔을 때 현관에 신발이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Happy Chance"를 외치고 신발을 정리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기분도 좋아지고, 아내도 같이 거들어 집안이 모두 행복해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루파티를 야구장에서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기적 같은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2018년 6월 4일 월요편지입니다.

"두산과 SK의 경기. 4대 2로 지고 있던 두산의 9회 말 공격입니다. 한 점을 따라붙어 4대 3. 투아웃에 주자가 1루와 2루.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은 있지만 과연 어떻게 될까요. 2번 타자 최주환의 1구는 볼입니다. 2구를 최주환이 쳤습니다. 타구가 큽니다.

홈런입니다. 9회 말 투아웃에서 터진 역전 스리런. 영화 같은 장면입니다. 모두 한결같이 일어섰습니다. 흥분을 어찌 표현하여야 할까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표현 이상 더 정확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이처럼 마루파티는 많은 추억거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줌(ZOOM)으로 마루파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년 반을 이렇게 하니 직원들 모두 시큰둥했습니다.

급기야는 7월 마루파티에서 마루파티 폐지론까지 등장하였습니다. 고심 끝에 8월 마루파티는 재택 회식으로 정했습니다.

"퇴근 후 집에서 배달음식을 3만 원 내에서 시켜 먹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밴드에 올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3만 원은 회사에서 지원합니다. 사진 중에 좋아요를 가장 많은 받은 분에게 상품을 지급합니다."

너무 성의 없고 썰렁하기까지 하다고 느껴진 마루파티 계획안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6시 50분경부터 회사 커뮤니케이션 밴드에 음식 종류가 속속 보고되었습니다.

참치, 쉑쉑버거, 불고기, 찜닭, 회, 족발, 국물통닭발, 꿔바로우, 치킨, 스테이크, 피자, 낙곱새, 타코야끼 등등 다양한 음식이 배달의민족을 통해 배달되었고, 그 장면을 사진 찍어 올렸습니다.

이어지는 댓글 퍼레이드. 칭찬이 이어지고, 부러움이 난무하고, 지방 출장 간 직원에게는 위로가 전해지고, 가족과 같이 먹는 임원에게는 찬사가 줄 잇는 정겨운 장면이 밤 10시 너머까지 계속되었습니다.

3만 원의 행복. 만약 1인당 3만 원짜리 회식을 같이 모여 했으면 이 정도의 재미난 행사가 되었을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즐겁게 했을까요.

  



         


행복연구의 대가 서울대 최인철 교수의 행복론을 기록한 2016년 9월 5일 월요편지는 행복의 3요소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이 연구해 본 결과 행복한 활동에는 세 가지 요소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첫째 <자유>입니다. 사람은 자유로울 때 행복을 느낍니다. 둘째 <유능>입니다. 무슨 일을 잘할 때 사람은 행복을 느끼지요. 마지막이 <관계>입니다. 사람은 관계가 강화될 때 행복을 느낍니다.

기억하십시오. 자유, 유능, 관계. 어떤 활동을 할 때 이 세 가지가 많이 들어 있으면 그 활동은 행복감을 줄 것입니다. 반대로 이 세 가지 요소가 빠진 활동은 행복감을 주지 못합니다."

재택 회식 방식의 마루파티에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다 들어 있었습니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으니 <자유>가 있었고, 약간의 배틀적 성격을 띤 사진을 잘 찍기 위해 자신의 <유능>을 발휘하였고, 임직원들 간에 사진과 댓글을 통해 <관계>를 확인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마루파티를 통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아이디어만 잘 내면 그 이전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마루파티를 연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는 비단 마루파티에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살면서 여러분이 참석하는 행사에는 행복의 3요소가 들어 있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8.3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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