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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번째 편지 - 선택의 역설



혹시 넷플릭스를 보시나요? 저도 오래전부터 넷플릭스를 TV로도 컴퓨터로도 핸드폰으로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넷플릭스 보기가 두려워져 한동안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넷플릭스에서 영화 한편, 드라마 한 편 고르는 일이 너무 힘듭니다.

혹시 제가 결정 장애를 겪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들 정도로 못 고릅니다. 1편을 본 <강철부대>를 이어서 보려 하다가, 7월 23일 공개된 <킹덤, 아신전>에도 눈길이 갑니다. 다시 옆에 보니 총 6화라 한편만 더 보면 되는 <사무라이의 시대>도 궁금해집니다.

이승기가 주연한 <승기호>도 보다 말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아내가 열심히 보는 <결혼 작사 이혼 작곡>도 궁금합니다. 누구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재미있다고 추천합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여러 가지 고르다가 지쳐 결국 TV로 돌아가 골프 채널을 봅니다. 그것이 속이 편합니다. 재미도 재미려니와 그래도 얻어들을 것이 하나는 있습니다. 최소한 본전치기는 합니다.

저는 이런 문제점을 겪다가 최근 TED 한 편을 보고 이 선택의 문제가 비단 저만의 문제가 아닌 산업사회의 부산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 Barry Schwartz의 <the paradox of choice 선택의 역설을 말하다>입니다.

그는 우리 모두는 "선택의 폭이 넓다면, 더 많은 자유를 가지게 되고 자유가 더 확보되면 시민들의 복지는 향상된다는 논리"를 신조처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신조에 반기를 듭니다.

"무한한 선택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첫 번째 영향은 역설적으로 선택은 자유보다는 마비를 야기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너무 많다 보면 사람들은 선택 자체를 매우 힘겨워합니다."

제가 넷플릭스에서 선택 장애가 걸린 것은 옵션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과거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 때는 새로 나온 영화 몇 편 중에서 고르면 되었습니다. 아내와 서로 선택을 두고 다투기는 했지만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결정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선택이 자유보다 '마비'를 야기한다는 이야기가 공감이 갑니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두 번째 영향은 우리가 마비 현상을 극복하고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 선택권이 적은 상태에서 선택을 했을 때 보다 덜 만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 역시 정말 맞는 말입니다. 전에 같으면 영화관에서 고른 영화에 대해 설령 그 영화가 그다지 재미없었더라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다릅니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기에 조금만 재미가 없어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최고의 재미가 아닌 이상 더 재미있는 것이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조금만 재미없으면 중간에 그만두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에 기웃거립니다. 이것은 결정 장애보다 더 나쁜 것이지요. 중도 포기가 습관화됩니다.

Barry Schwartz는 우리들이 선택에 대해 덜 만족하는 이유를 마트에서 샐러드 소스를 고르는 문제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많은 샐러드 소스 중에 하나를 고르게 되면 다른 것을 골랐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상상을 하기 십상이죠.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은 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대안이 당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고 후회하는 만큼 선택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집니다. 선택 자체가 훌륭했다고 하더라도요. 옵션이 더 많을수록, 당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기 쉽죠."

'상상 속의 대안'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실제로는 없거나 그저 그럴 텐데 상상은 언제나 최고가 있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게 하고 그 믿음이 언제나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는 "두 번째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기회비용이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넷플릭스에서 이 재미없는 영화를 보는 대신에 책을 읽었으면 더 유익하였을 텐데 하는 기회비용의 아쉬움 말입니다.

그는 "세 번째로는 기대감의 상승"을 이유로 듭니다. "사람의 삶에 선택을 더 주는 것은 사람들이 그 선택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선택한 결과가 좋더라도 덜 만족을 하게 만듭니다."

이런 여러 가지가 있어 선택은 그 무엇을 하더라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선택지가 별로 없었던 과거로 돌아갈 순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스스로 선택지를 줄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몇 가지 분야에서 선택의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 선택지를 제한하였습니다. 먼저 입는 옷입니다. 늘 오늘 무엇을 입을까로 고민합니다. 마크 저크버크는 늘 같은 바지에 같은 티셔츠를 입습니다. 사실 그는 같은 것을 수십 벌 가지고 있다고 하지요. 현명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일할 때 입는 옷, 놀 때 입는 옷, 골프 할 때 입는 옷으로 구분하여 각 5벌만 골랐습니다. 고르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다음은 식당입니다. 식당은 사무실 근처 10군데, 강남 10군데로 제한하였습니다. 사실 더 줄일 수도 있는데 처음이라 좀 넉넉히 하였습니다.

책도 제가 추석 전까지 볼 책 5권을 골랐습니다. 책을 볼 때도 선택의 괴로움이 있어 이 책을 보다 저 책을 보곤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몇 가지만 선택지를 줄였는데도 마음이 편합니다. 무한한 선택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선택지가 자유를 준다는 이 선택의 역설을 삶에 잘 활용한다면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7.2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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