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525번째 편지 -이번 주는 [조율의 순간]을 배워 보시죠

 

지난주 애착(Attachment)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몇몇 분들이 애착이라는 개념이 그런 의미를 가진 것인 줄 몰랐다고 신기해하셔서 애착에 대해 좀 더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오늘 편지는 지난주 편지의 속편 격으로 쓰려고 합니다.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어 상대방의 소통 방식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습니다. 역으로 저의 소통 방식 때문에 상처를 입은 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제일 먼저는 저의 가족입니다. 저의 가족들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아빠 이야기는 맞기는 하는데 늘 강의를 하려고 해서 부담스러워요." "우리 말은 잘 안 들으려고 하고 중간에 말을 끊고 아빠 의견을 말하세요."

이런 불평불만을 들은 지 오래되었지만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는 가족들에게 불만이 없을까요. 많이 있지요. 이런 문제는 가족을 넘어서 사회생활도 확대되면 더 어렵습니다. 점잖은 체면에 상대방에게 노골적으로 불평불만을 할 수는 없지만 제 스타일과 잘 맞지 않는 소통 방식을 가진 분들이 참 많지요.

어느 분은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지루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어떤 분은 만나면 묻지도 않았는데 꼭 누군가를 만났다고 자신의 사교 범위를 자랑합니다. 그분은 자기과시를 하기 위해 저를 만나는 듯합니다. 또는 의사 표현이 어눌하여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분도 있습니다. 분위기에 맞지 않는 농담을 하여 주위를 썰렁하게 하는 분도 있지요. 하루 종일 한마디 안 하는 분도 제법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못해도 속으로 불평불만이 쌓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쩌다가 이런 소통 방식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저는 이런 관점에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의 소통 방식을 제 기준에서 탓하기만 하였을 뿐입니다. 사실 제 기준이나 제 스타일에 맞는 소통 방식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데 지난주 소개해 드린 조나 레러의 [사랑을 지키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다른 관점이 생겼습니다. 그 책은 조율의 순간(Moments of Attunement)이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말을 채 배우지 않은 갓난 아이는 엄마와 어떻게 소통할까요. 갓난 아이는 자신의 요구 사항을 눈빛과 옹알이, 그리고 몸짓으로 표현합니다. 엄마는 그 아이에게 대꾸를 합니다. "그래, 그랬어, 어이구, 잘했네." 사실 서로 소통이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는 엄마의 행동에 따라 방긋방긋 웃습니다.

이때 엄마가 볼일을 보러 잠깐 나갔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돌려 엄마를 찾습니다. 엄마가 없음을 알고 불안해합니다. 드디어 울기 시작합니다. 아빠가 등장합니다. 아이를 안아줍니다. 나름대로 아이를 달랩니다. 그러나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아이는 이 낯선 사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지? 우리 엄마는 어디로 간 거야?"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것일까요. 아빠도 엄마와 거의 비슷하게 정성껏 아이를 달랬는데 왜 아이는 아빠를 거부하는 것일까요. 아동 심리학자들은 엄마는 아이와 [조율]이 된 상태이고 아빠는 아직 아이와 [조율]이 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학문적으로 설명하면 아이들과 끝없는 시간을 보내며 얻는 이런 학습경험을 [조율]이라고 부릅니다.

아이와 엄마는 서로 애착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각종의 소통 방식을 사용합니다. 웃기도 하고 옹알이도 하고 몸짓도 합니다. 그 결과 서로를 믿게 되고 안정적 애착 관계를 형성합니다. 그 순간이 바로 조율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빠들은 그만큼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 아이와 조율되지 못한 것이지요.

저는 이 개념을 공부하고 성인들의 인간관계도 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서로 안정적 애착 관계를 가지려 합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정성껏 자신이 배운 애착을 위한 소통 방식으로 소통합니다.

자기 지식도 전달하고 농담도 하며 어색한 분위기도 해소하려 하고 자기과시를 하여 상대방이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소통 방식을 가지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동안 학습경험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그간 갓난아이 시절 엄마와 안정적 애착 관계를 가지기 위해 소통하던 시절부터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신도 모르게 터득한 방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방식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하여 하나하나 배우고 쌓아놓은 것일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그 소통 방식을 평가하지 말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 일 테니까요. 엄마가 아이의 소통 방식을 평가하지 않고 그 소통 방식을 이해하려고 애쓴 결과, 조율의 순간을 맞았던 것처럼 성인도 상대방과 소통할 때 그 소통 방식을 평가하지 말고 존중하며 차이를 애써 극복하면 결국 조율의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저는 아이를 키운 지 오래되어 조율의 순간을 맛본 경험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강아지를 키우며 이 조율의 순간을 매일 만납니다. 저의 강아지 이름은 [땡큐]입니다. 땡큐는 제가 집에 들어서면 저만 졸졸 쫓아다닙니다. 제가 방으로 들어서며 문을 닫아버리면 문을 발로 긁습니다. 땡큐의 몸부림에 문을 열어주면 여지없이 저에게 달려와 뒷발로 서서 앞발로 저를 긁습니다.

뭐 해달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땡큐가 뭘 원하는지 몰랐습니다. 조율이 안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몸을 쓰다듬어 달라는 의사 표현입니다. 제가 등을 쓰다듬어 주면 제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만족을 하면 이번에는 배를 긁어 달라고 발랑 드러눕습니다. 그의 요구에 따라 배를 긁어주면 점점 몸을 틀면서 이곳저곳을 고루 긁어달라는 의사표시를 합니다.

이렇게 1년여 지내다 보니 땡큐는 저와 안정적 애착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땡큐와 지낸 1년을 돌이켜 보면 그간 마찰도 꽤 있었습니다. 땡큐는 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많은 물건을 작살내었습니다. 돈으로 따져도 100만 원도 넘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돌려보내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또 언젠가는 자신이 눈 똥을 먹기도 하여 우리 가족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였지요.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땡큐가 우리 가족과 안정적 애착 관계를 가지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알고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관심을 보였더니 서서히 조율되어 이제는 땡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땡큐와 같을지 모릅니다. 사랑하려는 남녀 사이가 아니더라도 상사와 부하, 친구와 친구 사이에도 모두 안정적 애착의 기대를 가지고 상대방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순간에 안정적 애착관계가 형성될 수는 없습니다. 상대의 소통 방식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고 상당 기간 조율의 과정을 거쳐야 결국 조율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들의 인간관계에는 이런 노력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 스타일에 맞는 사람만 사귀려는 성향이 있었던 것이지요. 마치 백화점에서 제가 좋아하는 물건을 사듯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조율의 순간]이라는 개념을 배우고는 상대방의 소통 방식을 평가하기보다는 그의 소통 방식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 어떤 소통 방식이든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먼저 다가가 [애착]을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뀌자 세상이 훨씬 환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깨달음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번 주는 그런 재앙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7.16. 조근호 드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