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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번째 편지 - 000키즈



지난주 장안의 최대 화제는 <국민의 힘> 당 대표에 36세의 젊은 이준석 후보가 당선된 사실이었습니다. 저도 그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설마 설마 하다가 그 설마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모임에 가면 이준석 현상에 대해 모두가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저도 오늘 그와 관련된 한마디를 하려 합니다. 그러나 정치적 관점에서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월요편지에 걸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당 대표에는 국회의원 0선의 1985년생 이준석, 당 최고위원 1위에는 초선 1972년생 조수진, 2위에는 초선 1983년생 배현진이 당선되었습니다. 3, 4위는 3선, 재선의 중진이 차지했습니다.

0선과 초선이 앞자리를 모두 차지한 것입니다. 저는 그 세 사람의 이력을 들여다보다가 재미난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당 대표 이준석은 언론에서 <박근혜 키즈>로 지칭합니다. 키즈라는 표현이 36세의 정치인에게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별 거부감 없이 통용되고 있기에 저도 그 표현을 사용하겠습니다.

이준석 당 대표는 2011년 12월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비대위원으로 발탁되었습니다. 당시 함께 영입된 손수조 당시 미래세대위원장과 함께 '박근혜 키즈'로 불렸습니다. 즉,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정계에 입문한 것입니다.

배현진 최고위원은 2018년 3월 당시 자유한국당 당 대표 홍준표에 의해 같은 해 6월 13일 치러진 서울 송파 지역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로 영입되었습니다. 홍 전 대표는 배현진의 영입이 참 힘들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때부터 <홍준표 키즈>라고 불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역시 홍준표 전 대표에 의해 정계에 입문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박근혜 키즈>, <홍준표 키즈>는 언론에서 항상 쓰는 표현입니다. 그러면 조수진 최고위원은 어떻게 정계에 입문하였을까요. 그녀는 동아일보 법조 출입 기자였습니다.

검사를 한 저도 잘 아는 기자입니다. 똑똑하고 끈질기고 글 잘 쓰는 기자였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조 기자는 종편을 종회무진하며 각종 시사프로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쏟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전투력이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입니다.

이를 눈여겨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2020년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만들어진 비례위성정당 미래한국당 당 대표 한선교입니다. 그해 2월 말 고교 동창인 한 대표와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미래한국당 비례대표의 한 사람으로 조수진 기자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논리, 토론 능력, 전투력 등이 참 마음에 든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아는 기자라 몇 마디 하였습니다.

2020년 3월 15일 발표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조수진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순번 1번으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저는 한 대표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명단 순번이 조정되어 결국 5번을 받았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조수진 최고위원은 제가 아는 범위에서 보면 한 선교 전 대표에 의해 정계에 입문하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언론에서 조수진 최고위원을 <한선교 키즈>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키즈의 의미가 누군가에 의해 정계에 입문하였다는 것이라면 조수진 최고위원을 <한선교 키즈>라 불러도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이 사실을 들으시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키즈의 운명과 키즈를 발탁한 노정객들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되어 있습니다. 홍준표 전 대표는 탈당한 후 복당을 간절히 원하지만 아직 성사되지 못하고 무소속 신세입니다. 한선교 전 대표는 정계를 은퇴하였습니다.

반면 그들이 정계에 입문시킨 소위 '키즈'들은 국민의 힘 당 대표, 최고위원 1위,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노정객들은 비록 정계에서 몰락하거나 쇠락하거나 은퇴하였지만 그들이 발탁한 키즈들은 찬란한 별이 되어 그들을 발탁한 은인들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정객들의 안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시대는 저물고 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좋은 인재를 발탁한 그 안목 말입니다.

이런 일은 정파를 불문하고 늘 있어 왔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발탁해 정계에 입문시켰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낙연 전 총리를 정치에 입문시켰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전진하나 봅니다. 앞선 세대는 경험과 경륜을 총동원하여 다음 세대를 짊어지고 나갈 키즈들을 발탁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한 편의 영화가 떠오릅니다. 1976년 작 <스타탄생>입니다.

유명 가수 노먼 메인(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연기)은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지만 삶이 권태롭습니다. 그는 우연히 무명 가수 에스터(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연기)의 선천적 재질을 발견하여 자신의 상대역으로 발탁시킵니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됩니다.

그들은 결혼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에스터의 인기는 높아져 미국 최고의 가수가 되지만 노먼은 계속 추락합니다. 노먼은 에스터가 아카데미상을 타던 날 스포츠카를 과속으로 몰다 사고로 죽습니다.

학생시절 이 영화를 보았던 감동은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소재가 좋아서 이 영화는 계속 리메이크되었고, 2018년에는 브래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 주연의 '스타 이즈 본'으로 재탄생합니다.

물론 이번 정치 현상이 스타탄생과 단순 비교할 사항은 아니지만 저는 왠지 스타탄생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키즈를 발탁하였는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성장하여 조직이나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젊은 누군가를 발탁하여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제가 몸담았던 조직에서 조근호 키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역할을 못 한 셈이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름을 딴 키즈가 있으신가요.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젊은 세대를 눈여겨보고 장래가 촉망되는 그 누군가를 발탁해 주십시오. 저도 그럴 작정입니다.

나이 든 우리 세대가 미래를 위해 할 일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6.1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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