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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번째 편지 - [탐색 explore]와 이용[exploit]



<이야기 하나>

친구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젠 만남을 가려서 하려고 해. 불편한 사람은 만나지 않을 거야. 새로운 사람 사귀는 것도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해. 기존에 아는 사람 중에서 내가 편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것, 그것만 하려고 해. 그게 안전하거든."

수년 전만 해도 각종 조찬모임을 쫓아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려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각종 모임의 출석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친구들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이야기 둘>

저는 언젠가부터 예전에 재미있게 본 영화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때문입니다. 어차피 월 정액을 내고 있으니 기왕에 본 영화를 다시 보는 부담이 없습니다.

새 영화는 재미를 보장하지 못하지만 이미 본 영화는 어느 정도의 재미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얼마 전 그의 영화 10편을 몰아치기로 보았습니다.

<이야기 셋>

점심과 저녁 약속 장소를 정할 때면 예전에는 새로운 맛집을 찾아다니곤 했었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미쉐린 가이드에 랭크된 식당을 새로이 가는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예전에 다니던 식당을 찾습니다.

메뉴도 맛있게 먹던 메뉴를 고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외국에 나가서도 젊었을 때와는 달리 사흘이 멀다 하고 한식을 찾곤 합니다. 입이 짧아졌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이 세 가지 이야기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책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를 읽고는 서로 똑같은 원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과학자들은 50년간 이 문제를 분석해 왔습니다.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을 <explore, 탐색>이라고 명명하였고, 기존에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것을 <exploit , 이용>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탐색>과 <이용>은 서로 상반됩니다. 탐색할 때는 자신이 새로 만난 것을 좋아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새로 만난 친구, 새로 고른 영화, 새로 찾은 식당을 내가 좋아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상당수 있습니다. 그런 반면, 만나면 편한 친구, 여러 번 본 영화, 언제나 맛있는 식당은 보증수표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만 찾다가는 평생 새로운 것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새로운 것 중에 최상의 것이 왕왕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어릴 때는 <탐색>을 더 선호하지만 나이가 들면 <이용>에 집중한다고 말합니다. 책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의 사교 범위는 나이가 들수록 거의 예외 없이 감소한다. 종전에는 그 이유를 나이가 들면서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즉, 삶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 로라 카스텐센은 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노인들이 사교 범위를 감소하는 쪽으로 '선택'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 감소가 평생 사교의 이점과 위험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인맥 관리 전략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의미 있었던 관계에 집중하는 것, <이용>이 새로운 관계를 찾아다니는 것, <탐색>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가족과 가까운 친구에 집중하게 된다."

이 책은 한 가지 더 알려 줍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에 따라 <탐색>과 <이용>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객관적으로 남은 시간'보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10일간한다고 하면 첫날이나 둘째 날은 새로운 식당을 찾고 처음 본 음식에 도전할 것입니다. <탐색>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식사는 이미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던 것을 먹으려 합니다. <이용>이지요.

저는 육십을 넘겼습니다. 인생을 10일간의 여행에 비유하면 이제 갓 절반을 넘겼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고, 이미 많은 친구들이 은퇴한 나이이니 8일이나 9일쯤 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여전히 <탐색>을 즐기고, 어떤 때는 <이용>을 고수할 것입니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제 느낌에 따른 인생 전략일 뿐입니다. 그러니 느낌대로 살렵니다.

그 느낌은 제 평생에 걸친 선택 과정의 산물입니다.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조근호라는 개체가 61년간 진화하며 축적한 DNA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지금 <탐색>과 <이용> 중에 어느 편이 더 강하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5.2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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