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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번째 편지 - 좋은 보고서를 작성하려면



"대표님.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보고서 쓰는 일이 너무 힘듭니다. 대표님은 보고서를 잘 쓰셨다고 들었는데 그 노하우를 저희에게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 신입직원과 이야기하던 중에 받은 돌발 부탁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검찰 시절 수많은 보고서를 쓰며 고민하였던 옛날 추억을 소환하여 강의 내용을 정리하고 지난 4월 1일 정말 작은 소규모 강의를 토크하듯 진행하였습니다. 불과 4명만 들었기에 나머지 직원들에게도 전할 겸 오늘 월요편지에 지상 중계하려 합니다.

"자 그러면 보고서 잘 쓰는 법 강의를 시작해 볼까요. 먼저 Play와 Work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봅시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Play에는 가치 추가가 없어도 되지만 Work에는 가치가 반드시 추가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Work을 자신만을 위한 Work과 타인을 위한 Work으로 구분해 보죠. 일기를 쓰는 일은 가치는 추가되었지만 나만을 위한 일이지요. 그러나 보고서는 어떤가요. 타인을 전제로 해서 작성하는 Work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고객의 유무입니다. 저는 검찰에서 한창 보고서를 쓸 때 그냥 잘 써야 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나 보고서는 반드시 고객이 있습니다. 그 고객에게 맞게 보고서를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고서를 클라이언트의 실무자가 보는 것이라면 전문용어를 많이 섞어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클라이언트의 CEO가 보는 것이라면 전문용어는 가급적 삼가는 것이 맞겠죠.

그런데 보고서 작성자는 그 보고서의 최종 고객이 누구인지 의식하지 않고 보고서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할 때 보고서를 고등학교 2학년생이 이해하게 쓰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모든 분야에 정통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첫째 고객이 누구인지 의식하고 보고서를 쓰기 바랍니다.

둘째 보고서를 작성하는 Tool에 대해 완벽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요즘 보고서를 아래아한글이나 워드로 쓰기도 하고 엑셀로 쓰기도 하고 파워포인트로 쓰기도 합니다. 각 소프트웨어의 사용법에 대해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서 사용법에 대한 책 한 권을 완전히 독파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자주 사용하는 용법만 이해하고 사용하지만 각 소프트웨어에는 생각하지 못한 각종의 용법이 있습니다. 이를 완벽하게 익히면 보고서를 더 쉽고 풍부하게 작성할 수 있습니다. 저도 1992년 7월 아래아한글 2.0이 출시되었을 때 며칠을 끙끙대며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셋째 나만의 단어 셋(set)을 만들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보고서를 오래 쓰다 보면 대개 쓰는 표현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이 쓴 보고서를 보면 새로운 표현이 있고 그 상황에 딱 맞는 비유를 쓰기도 합니다. 단어가 풍부해야 합니다.

저는 1989년 말 상사로부터 내년도 업무계획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몇 년 치를 훑어보니 그 표현이 그 표현이었습니다. 저는 법무부의 몇 년 치 신년 업무계획을 구해 모든 단어를 분석하였습니다.

"증강/ 확대/ 구축/ 정립/ 개선/ 혁신" 비슷한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이 부서별 연도별로 조금씩 달랐습니다. 저는 명사, 형용사, 동사 별로 모두 정리하였습니다. 500단어쯤 되더군요. 그것이 제 자산이 되었습니다.

넷째 보고서 표현을 공부하는 데는 신문이 최고입니다.

보고서를 잘 쓰려면 무엇을 공부하여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신문>이었습니다. 신문은 다양한 계층의 독자를 의식하고 기사를 씁니다. 초등학생부터 박사님까지 다양한 계층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쉽지만 재미있고 전달력 있는 문장으로는 신문이 최고입니다.

저는 몇 개의 신문을 중복해서 읽었습니다. 같은 내용을 어떻게 달리 표현하는지 공부한 것입니다. 특히 제목을 유의해서 보았습니다. 2011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였습니다. 그다음 날 모든 신문 1면 톱은 이 기사였습니다. 신문의 제목은 어땠을까요.

<이젠 잡스 없는 세상(경향신문)>, <'IT 세상'을 남기다(국민일보)>, <천국에 로그인, Steve Jobs(동아일보)>, <세상을 바꾼 남자 Logout(서울신문)> 등이 있었습니다. 모두 좋은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꼽은 1위는 <iSad>였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걸작 iPad를 연상케 하는 절묘한 추모 제목이었습니다. 조선일보의 작품입니다.

그래서 저는 보고서를 잘 쓰기 위해 이런 책을 읽었습니다. <신문을 아름답게>. 그 책에서 손꼽은 가장 아름다운 신문은 <USA TODAY>였습니다. 그래서 그 신문을 애독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섯째 보고서는 경쾌한 리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보고서는 그 하나로 작품입니다. 그래서 워드로 작성할 때는 줄 간격, 자간, 장편 등에 신경을 씁니다. 가급적 석 줄을 쓰고 줄을 바꿉니다. 명사형으로 끝맺음을 하는 것이 전통적 방식이나 요즘은 "합니다"를 넣기도 합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지요.

경쾌하려면 단문으로 써야 합니다. 중문과 복문은 사절입니다. 모든 문장을 끊어 쓰는 버릇을 길들여야 합니다. 예전에 검찰의 결정문이나 법원의 판결문은 수십 페이지 되는 것도 한 문장이었습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한자어도 가급적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파워포인트로 보고할 때는 한 장을 작품처럼 구성했습니다. 사진, 도표, 경구 등을 적절히 배치하여 지루하지 않게 하고, 문장도 두세 줄에 끝냈죠. 지금은 좀 자유롭지만 처음에는 글꼴에 엄청난 신경을 썼습니다.

여섯째 보고서는 흥미로워야 합니다.

예전에 지루한 보고를 할 때 조는 상사도 본 적이 있습니다. 보고를 받는 고객의 흥미를 유발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중요한 내용을 적절하게 배치하여야 합니다.

심리학의 "최대최후법칙(최대치와 최후치만 기억에 남는다는 법칙)"에 따라 저는 전체 보고 내용이 5개라면 2번과 5번에 중요한 것을 배치하였고 7개라면 3번과 7번에 중요 내용을 배치하였습니다.

잘못하여 보고받는 분에게 지적을 당하면서 끌려다니면 보고에 당황하게 되고 보고를 실패하게 됩니다. 보고에도 전략이 필요한 것이죠. 내가 보고를 주도하고, 보고받는 분을 마지막까지 궁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는 것입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는 반드시 낭독하고 녹음해 보기를 권합니다. 말이 씹히거나 버벅거리게 되면 문장을 고쳐야 합니다. 저는 여직원에게 읽어보라고 하고 들은 적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여직원에게 이해가 되는지, 재미가 있는지 등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보고서를 한 줄 한 줄 읽으며 보고하는 것은 하수가 하는 일입니다. 경쾌하게 읽는 문장과 눈으로만 보는 문장을 구분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읽는 문장은 밑줄을 그어, 보고받는 분의 눈을 유도하여야 합니다.

자 좀 이해가 되었나요.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여러분들도 좋은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을 거예요. 나도 오랜 시간 노력했고 중간중간 상사에게 많이 혼나기도 하였습니다. 당연한 과정이지요. 노력 없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는 것 꼭 명심하세요. 수고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4.5.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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