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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번째 편지 - Hillbilly의 Vance가 보여준 세상



주말에 본 영화 <힐빌리의 노래, Hillbilly Elegy>의 한 장면입니다.

예일대 로스쿨생 J. D. Vance는 아르바이트를 3개나 하지만 학비가 부족해 여름방학 동안 로펌에서 인턴쉽 자리를 구해야 합니다. 마침 로펌 대표들과 만날 수 있는 파티가 있습니다. 절호의 기회입니다.

Vance는 샤르도네와 쇼비뇽 블랑 중에 무엇을 할 것이냐는 종업원의 질문에 머뭇거리고, 자신이 입사하고 싶은 로펌 대표가 앉은 식탁에 앉기는 하였지만 수많은 포크와 나이프를 보고 당황하는 촌놈입니다.

Vance는 Ohio 주 Middletown 출신입니다. 세상은 그들을 Hillbilly, 촌뜨기라고 부릅니다. 로펌 대표에게 잘 보이려 하지만 뭔가 어색합니다. 그때 엄마가 마약 중독으로 입원했다는 누나의 전화를 받습니다.

누나는 지금 와 줄 수 없냐고 울먹입니다. 취업의 중요한 기회와 누나의 간절한 호소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식사 자리를 박차고 운전대를 잡고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자신의 과거가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영화는 예일대생 Vance의 현재와 Hillbilly Vance의 과거가 교차 편집되면서 Vance의 성장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Vance의 가족은 문제투성이입니다. 엄마는 이혼한 후 수없이 남자를 바꾸고 아들과 딸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Vance는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친구들과 도둑질도 하고 대마초도 피웁니다.

어느 날 엄마가 Vance를 심하게 폭행하여 경찰까지 출동하자 외할머니는 Vance를 자신이 키우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배급으로 살아야 하는 극빈층입니다. 그렇지만 Vance에게는 유일한 보호자입니다.

외할머니의 교육열 덕분에 Vance는 부랑아가 될 신세에서 마음잡고 공부하여 오하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합격하여 상류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과거가 그를 소환 한 것입니다.

2016년 6월 예일대 로스쿨생 J. D. Vance는 자신의 3대 가족사를 소설로 출간합니다. 이 영화는 그 소설을 영화화 한 것입니다. 이 영화는 가난에서 탈출하여 성공한 한 젊은이의 진부한 이야기 일수 있지만 저는 이 영화에서 많은 것을 읽어 낼 수 있었습니다.

첫째, Vance는 중요한 취업 기회를 포기하고 자신의 과거로 달려갑니다. 비록 외면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과거이지만 자신의 일부입니다. 마약 중독자가 된 엄마를 보고 미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합니다.

Vance는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경우와 정도는 다르지만 대한민국에서 소위 성공하였다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Vance입니다. 저도 한 사람의 Vance입니다. 본인 세대가 아니면 부모 세대가 Vance입니다.

어찌 보면 오늘의 성공한 대한민국 자체가 Vance입니다. 모든 Vance에게는 가난하고 무식하고 병든 가족이 있습니다. 그 가족이 때론 짐이지만 자신만은 그 짐이 되지 않으려고 그리도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Vance에게 가족은 자신의 일부입니다. 떼어 낼 수 없는 자신의 몸 일부입니다. 그래서 가족이 아플 때 자신도 아픈 것이고 가족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가족은 점점 자신을 파고듭니다.

대한민국이 겪는 계층 간의 갈등도 단순화시키면 Vance와 그 가족 간의 애증관계와 다를 바 없습니다. Vance는 마약중독자 엄마를 외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간호합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울컥하였습니다.

둘째, Vance가 부랑 청소년에서 탈출하여 예일대 로스쿨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외할머니 덕분입니다. 가게에서 계산기를 훔치다가 주인에게 잡힌 Vance를 데리고 오면서 외할머니는 눈물로 간곡히 호소합니다.

"기회가 중요한 거야. 노력하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도 않아. 나도 너희 엄마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행복하게 잘 살 줄 알았어. 하지만 여기저기 치이더니 결국 포기해 버리더라. 노력조차 그만뒀어. 하지만 너는 이제 선택해야 해. 성공하고 싶은지 아닌지."

이 말은 Vance에게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인생길에는 언제나 포기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함정에 빠지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노력하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아'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야 합니다.

[회복탄력성]을 연구한 에이미 워너 교수에 따르면 열악하고 힘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곧게 자란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그 아이를 철저하게 믿고 지켜주던 어른이 최소한 한 명 이상 있었다는 것입니다. Vance에게는 그 어른이 외할머니였습니다.

셋째, 고향 Middletown에는 여전히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Vance의 누나는 슈퍼 점원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을 못살게 군 엄마였지만 그 엄마를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Vance의 고향 친구들도 평범하지만 예일에는 없는 것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모두가 Vance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Vance는 오히려 예외적인 존재입니다. Vance가 되지 않았다고 실패한 인생도 아닙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 시절부터 한국 사회는 우리 모두 Vance가 되길 희망했습니다.

Vance만의 Vance만에 의한 Vance만을 위한 대한민국을 막연히 꿈꾸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영화 속 Vance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와 직면하고 그 과거가 안고 있는 숙명적 문제를 해결합니다.

대한민국의 Vance도 자신의 과거와 직면하고 그 과거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여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자신의 재산 절반을 사회에 기부한 젊은 스타트업 영웅들은 참다운 Vance입니다. 그런 Vance가 많아질 때 Vance와 그의 과거는 공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3.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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