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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번째 편지 - 결혼 35주년의 밤



어제가 결혼 35주년이었습니다.

15년 전인 결혼 20주년 때는 친한 친구들에게 홈커밍데이 비슷한 함커밍데이라는 것을 제안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생각을 월요편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혼 20주년이 되는 해에 날을 잡아 이제는 구랑구부가 된 부부와 함 꾼 부부들 모두, 그리고 자식들까지 함께 모여 주인공 부부의 백년해로의 빌어주는 함커밍데이를 해보는 거야.

실제로 함을 준비하여 그 함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기원하는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넣으면 어떨까? 그런데 이렇게 함을 준비하여도 그 옛날처럼 함을 사라고 외칠 수는 없으니. 함커밍데이 모임을 하는 거야.>

실제로 그 무렵 결혼 20주년을 맞은 친구들은 제 극성에 모두 함커밍데이 행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2006년 2월 14일 저의 결혼 20주년 때는 사정이 있어 함커밍데이 행사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연기되었던 함커밍데이 행사는 5년 후인 2011년 2월 14일 결혼 25주년에 하였습니다. 친한 친구들을 불러 1부에서는 친구들이 저희 부부를 위해 준비한 선물과 함께 축하의 글을 읽어 주었습니다. 2부에서는 저희 부부 25주년을 돌아보는 사진 슬라이드쇼를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6년 2월 14일 결혼 30주년 때는 특별한 이벤트를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기록도 월요편지에는 빠짐없이 남아 있습니다. 이럴 때 월요편지는 참 유용합니다.

<2016년 2월 14일은 결혼 30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결혼 30주년을 어떻게 이벤트화할 것인지 올해 초부터 궁리하였습니다.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할까? 아니면 리마인드 신혼여행을 30년 전처럼 제주도로 갈까?

이런저런 고민 끝에 아내가 하고 싶어 하는 리마인드 웨딩 사진 촬영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쉽게 말해 '결혼 앨범'을 다시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다 늙어 주책없게 무슨 '결혼 앨범'이냐 하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이처럼 재미난 일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날은 30년 전 결혼식 날처럼 무척 추었습니다. 야외 촬영을 할 때는 드레스를 입은 아내는 오돌오돌 떨었습니다. 월요편지의 기록입니다.

<아내의 어깨에 소름이 돋습니다. 바들바들 떱니다. 입술도 파래지고 이러다가 감기 들 것 같습니다. 굳이 이런 식으로 촬영을 하여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지만 이것도 이벤트요, 추억입니다. 야외에서 세 군데 장소를 옮겨가며 2시간가량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날의 이벤트를 마치고 그 소회를 저는 월요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나니 저녁 8시입니다. 거의 10시간을 촬영한 것입니다. 지칠 만도 한데 원해서 한 일이라 아직도 힘이 남아돕니다. 이벤트는 이런 면이 있나 봅니다.

제 인생에 또 하나의 특별한 이벤트가 끝이 났습니다. 이 이벤트의 여운이 길지 않을 것임을 이미 잘 압니다. 저는 또 다른 이벤트를 꿈꿀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이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그리고 다시 5년, 어제 결혼 35주년을 맞은 것입니다. 20주년, 25주년, 30주년마다 이벤트를 준비하던 그 열정은 어디로 갔는지 이번에는 그저 덤덤하게 결혼 3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딸아이가 저녁을 맛있게 차려주고 정성스럽게 케이크도 준비해주어 그런대로 구색은 갖추었지만 뭔가 허전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 코로나19 때문에 마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이벤트를 계획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마음도 그저 덤덤하기만 합니다.

35년 오래 살았습니다. 27살에 결혼했으니 결혼하기 전에 산 세월보다 결혼하고 산 세월이 더 깁니다. 아내가 묻습니다. "우리 35년을 더 살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물론이지"라고 답했습니다.

몇 년 전 저희 부부가 존경하는 어느 부부의 결혼 50주년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추억도 월요편지는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축사를 위해 컴패션 사역을 하는 서정인 목사님이 단상에 섰습니다. "결혼하여 50년을 같이 산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 아시죠. 빌리 그래함 목사의 부인이 루스 벨 그래함입니다.

그분들이 결혼 50주년을 맞이했을 때 기자가 루스 벨 그래함에게 물었답니다. '살면서 이혼하고 싶을 때가 있으셨나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혼하고 싶을 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죽이고 싶을 때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날 행사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주인공 부인의 인사말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오늘 하얀 드레스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50년 전 결혼할 때는 순백의 하얀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50년을 살다 보니 이런저런 때가 많이 묻었습니다. 이 옷에 붙은 반짝이처럼 어떤 때는 벼락이 치기도 했지요. 그래서 이런 색깔 있는 옷을 입었습니다.">

15년 후 결혼 50주년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날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는 자제와 인내가 반드시 동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젊은 날에는 사랑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겼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35년을 같이 살고 나니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보다 아내를 먼저 앞세우고 생각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깨달음도 실천하려는 의지도 있지만 때때로 엇나가는 것이 사람이요, 인생입니다. 그때마다 숙고하고 또 숙고하렵니다. 부부생활은 그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처럼 싸워 이겨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도 35년의 세월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지금 시각 2월 15일 새벽 3시 17분.

결혼 35주년의 밤은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입니다. 딱히 무슨 걱정은 없지만 무엇인가 잠을 방해합니다. 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저는 결국 책상으로 향했고 월요편지를 쓰면서 마음을 정리하니 이제 잠을 다시 청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2.15.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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