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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번째 편지 - 어떻게 책을 읽고 메모하시나요?



지난주 장관을 지낸 검찰 후배를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요즘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습니다. 책도 보고 영화도 본다고 하면서 그런데 책은 볼수록 허무해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책 제목만 기억에 남고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이런 책 읽기를 계속하여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 요즘은 책 읽기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의문이 비단 그 후배만이 갖는 의문일까요.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가지는 의문이고 허무함일 것입니다. 젊어서는 기억력이 좋으니 메모를 하지 않아도 머리에 남는 것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 그것도 없습니다.

제가 월요편지에 책 구절을 인용하는 것을 보고 몇 분들이 책 읽을 때 특별한 메모를 해두냐고 묻곤 하지만 저는 책 읽기를 할 때 전혀 별도의 메모를 하지 않습니다. 한다면 빨간 색연필로 좋은 대목에 밑줄만 칩니다.

그리고 그 밑줄은 나중에 전혀 보지 않지요. 그러면 뭐 하러 밑줄을 치냐고요. 그저 책 읽기의 습관일 뿐입니다. 이러니 기억이 나는 구절은 다시 찾아 인용할 수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저도 책 읽기를 하면서 이것이 평생의 숙제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읽은 것을 붙잡아 둘 수 있는지> 말입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메모법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후배처럼 그냥 포기하고 맙니다.

작년 10월 친구 조성하 전 동아일보 국장이 책 읽기에 대한 특별한 팁을 주었습니다. 그는 30년간 여행기자를 하였으니 메모가 가장 필요한 사람입니다. 평소에 보면 수첩을 가지고 늘 무엇인가를 메모합니다.

그런데 손글씨 메모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진, 동영상은 불가능합니다. 또 메모는 그 자체가 짐입니다. 노트북에 옮겨 적어야 하고 분류도 하여야 합니다. 핸드폰에 메모하여도 분류의 짐은 여전히 남습니다.

그런 문제를 안고 살던 그가 특별한 메모법을 찾은 것입니다. 네이버 밴드를 메모장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했습니다. 원래 밴드는 모임 관리에 적합한 앱입니다. 그것을 나름대로 활용한 것입니다.

저는 그 아이디어에 제 방법을 가미하여 책 읽기 메모에 밴드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3개월 정도 사용하였는데 최고입니다. 이렇게 활용합니다.

첫째 책 읽을 때 아무런 생각 없이 좋은 대목은 빨간 색연필로 줄을 칩니다.

둘째 책을 다 읽은 다음 첫 페이지부터 다시 훑으면서 색연필이 칠해진 부분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셋째 이미 다운받은 <네이버 밴드 앱>을 핸드폰에서 켭니다. 새 밴드를 만듭니다. 새 밴드 이름 입력란에 책 제목을 넣습니다. 그리고 그 밴드를 비공개 밴드로 설정합니다. 이러면 준비는 끝났습니다.

제가 처음 시도한 책은 승효상의 <묵상>입니다. 수도원을 여행한 일기입니다. 입력란에 첫 장의 제목을 적습니다. "제1일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넷째 다음 입력란에 사진을 첨부합니다. 당연히 제가 색연필 칠한 대목을 찍은 사진이지요. 한 장만 넣습니다. 그리고 그 대목에 대한 제 생각이 있으면 댓글 쓰기에 입력합니다.

다섯째 <묵상>의 첫 장에서 필립 그로닝 감독의 영화 <위대한 침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위대한 침묵>을 입력하니 여러 가지 동영상이 검색됩니다. 이것저것 보다가 <위대한 침묵, 장님 수사님의 '참 행복은 무엇인가?'에 대하여>를 밴드에 입력하고 싶어졌습니다.

동영상에 마우스를 놓고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면 <동영상 URL 복사>가 나옵니다. 이를 다시 클릭하여 밴드의 입력란에 붙여넣기를 하면 동영상도 밴드에 입력됩니다. 

 

 



 


여섯째 모든 내용을 입력하여 책 메모를 끝내면 밴드 제목을 수정합니다. <묵상(2020년 11월 2일 종료)>. 이렇게 하면 한 권의 메모가 끝납니다.

오늘 이 밴드를 다시 열어 빨간 색연필이 칠해진 책 페이지 사진을 보니 주옥같은 문장들이 있습니다. 밴드 책 메모법이 아니면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책 페이지들입니다. 그 문장 몇 개를 소개하겠습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은 건축가에게는 어쩔 수 없는 친구일 수밖에 없다. 하이데거는 건축가의 그런 경우를 '깊은 겨울밤 사나운 눈보라가 오두막 주위에 휘몰아치고 모든 것을 뒤덮는 때'라고 이르며, 그때야말로 '철학을 할 시간'이라고 위로했다."

제가 요즘 철학 책을 손에 잡는 이유가 외로움과 두려움 때문인가 봅니다.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 알지만 나는 시를 왜 쓰는지 안다."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보다 <왜 사느냐>는 질문을 자주 던져야 하는데 저도 언젠가부터 How에 집착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삶은 때로는 잔인한 청구서를 내민다. 홀로 이를 치르느라 눌러둔 슬픔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린다. 그러나 여행의 끝에 서면 나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여행이 가진 치유의 힘이다."

코로나19 시대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삶입니다. 이 삶은 우리에게 잔인한 청구서를 내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를 치르느라 눌러둔 슬픔이 터진 상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일한 치유법인 여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어찌 극복해야 할까요?

"위대한 침묵 영화의 모든 것에는 하나의 일관된 단어가 드러난다. 바로 <평화>이다. <평화>는 무엇일까요. '평' 平이란 글자는 물 위에 수초가 고만고만하게 떠 있는 모양이라고 합니다. 수평을 이룬다는 뜻이지요.

'화' 和는 벼 禾(화)와 입 口(구)를 합한 글자인데, 벼를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눈다는 뜻이어서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한자로 <평화>는 모두가 대응한 관계를 이루는 공평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서양의 <평화>는 다릅니다. '피스' peace 혹은 라틴어로 '파체' pace, 동사형은 '퍼시파이' pacify입니다. 그래서 '퍼시픽 오션' Pacific Ocean을 큰 평화의 바다라는 태평양 太平洋으로 번역해서 쓰지요.

그러나 '퍼시파이'의 원래 뜻은 '평정하다'입니다. 그 말은 남을 정복해서, 상대방을 무릎 꿇게 한 상태에서 얻어지는 게 <평화>라는 뜻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좀 유식해진 것 같습니다. 책 읽기가 주는 기쁨입니다. 밴드 책 메모법 덕분에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책 읽기를 하시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2.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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